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히피 지망생 Aug 21. 2022

한 번이 어렵지 그다음은 쉬울 거야

숨은 제주를 발견하는 재주 5-1

이 장면을 보고 눈시울이 시큰해지는 게 호르몬 때문만은 아니겠지. 아마도 작년 그날의 기억 때문일 다.


패들보드 위에 두 딸을 태우고 소왕물 곳곳을 누비던 그날, 첫째  딸(단비)물속으로 뛰어들고 싶다고 했다. 하고 싶으면 하는 거. 

"그래, 뛰어봐."

비는 이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생애 첫 다이빙이었다. 여덟 살짜리 아이가 주저 없이 물속으로 뛰어드는 모습을 지켜본 모두가 일제히 박수를 보냈다.

 

패들보드 위에는 노를 젓는 아빠를 제외하고 둘째(다온)만 남았다. 이내 시선은 다온이에게 쏠렸다. '설마 너도?', '언니는 여덟 살이니까 뛴 거고 넌 다섯 살이니까 다이빙하기엔 아직 어려', '하지만 뛰어내린다면 응원해줄게'. 사람들의 눈빛 속에 기대와 우려, 응원 등 다양한 감정 읽은 다온이는 잠시 갈등하더니 자기도 뛰어내리겠다고 했다.

"저도 뛰어내릴게요. 하나, 둘, 셋! 외쳐주세요."

모두가 하나 되어 외쳤다.

"하나, 둘, 셋!"


잠시 후 두가 폭소를 터뜨렸다. 점프를 하긴 했는데, 패들보드 위에 그대로 착지하고 만 것이다. 세계 유일무이의 제자리 다이빙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러고는 자기도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긴 알겠는데 정확히 뭐가 어떻게 잘못됐는지는 모르겠고, 사람들이 왜 웃는지는 더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작고 하얀 얼굴 위로 번지는 웃음을 보면 세상 누구도 따라 웃지 않고는 못 배길 개구진 표정이었다. 때로 어떤 장면은 굳이 Alt+s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바로 바탕화면에 저장된다. 그때 그 장면이 그랬다.  


사람들의 반응이 언니가 뛰어내렸을 때와 다르다는 걸 뒤늦게 인지한 둘째는 이후 몇 번을 더 시도했지만 제자리 다이빙만 반복했다. 나는 다이빙의 사전적 의미를 하나 하여 '제자리에서 바닥에 철퍼덕 앉는 행위'도 다이빙에 해당된다고 말해줬다. 사람들도 그 정도면 정말 용기 있는 도전이었다 말해줬다. 그런데도 둘째는 사람들의 눈빛에서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뛰어내린다면 박수쳐줄거야' 라는 기대를 기어이 감지해냈고, 마침내 뛰어내렸다.


물속으로 풍-덩. 다이빙의 사전적 정의에 걸맞은 완벽한 다이빙이었다.



처음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째는 쉽다. 세 번째는 더 쉽다. 한번 시도해본 것과 백 번 해본 것은 큰 차이가 없지만, 한번 시해본 것과 시도도 못해본 것 사이에는 무한의 차이가 존재한다. 그날 둘째의 다이빙에 쏟아진 사람들의 박수와 환호는 그런 의미에서 참으로 뭉클했다. '앞으로 살아갈 세상에서 넌 뭐든 해낼 수 있을 거야'라는 응원처럼 느껴져서.


그런 기억들은 무의식 속에 새겨진다. 새겨 것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작년 그날의 첫 다이빙 시도 끝에 얻어낸 성취감 다온이의 무의식에 새겨진 게 분명하다. 어제 다온이가 첫 다이빙에서 주저 없이 뛰어내렸다는 게 그 증거다.


[며칠 동안 서귀포에 많은 비가 내렸다. 소왕물에 물이 맑아져서, 갔다. 소왕물에서 스노클링을 했다. 아빠 신발 멀리 던지기 놀이도 했다.  그다음엔 다이빙을 했다. 아빠가 먼저 하고 내가 했다. 다이빙을 하는 순간 짜릿하고 시원하고 상쾌하고 기분 좋았다. 완벽한 다이빙이었다. 다온이도 다이빙을 했다.  처음에는 겁을 먹었지만 아빠가 옆에서 손을 잡아주자 용감하게 뛰었다. 멋지다고 생각했다. 아빠가 고마웠다]   2022.08.18 writen by 단비

이전 07화 이번 생에 마지막은 아니잖아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