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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피 지망생 Aug 19. 2022

이번 생에 마지막은 아니잖아요

숨은 제주를 발견하는 재주 5  - 소왕물

날씨가 제법 선선해졌다. 지난 주만 해도 제주도 열대야 발생 일수가 역대 최다 기록을 갈아치울 기세였는데 하늘도 우리가 불쌍했는지 뜻밖의 비를 선물해주셨다. 영화 「쇼생크 탈출」의 주인공처럼 하늘님의 선물을 두 팔 벌려 받아 들고 싶은 마음 간절했으나, 나도 이제 나이가 나이인지라. 비가 너무 많이 오기도 했고...

그나저나 즘 하늘이 자꾸 선을 넘는다. 적당히 비를 나눠서 스프링클러처럼 뿌려줘야 하는데 하루 종일 특대형 바가지이거나 먹어라 퍼부어대시니... 지구온난화로 힘든 거는 알겠는데...거, 수위조절 좀 합시다.


날씨가 더 선선해지면 물놀이도 못할 것 같아서 두 딸을 데리고 올해 마지막 물놀이를 떠났다.

"오늘이 올해 마지막 물놀이가 될 것 같아."

단비가 되받아다.

"올해 마지막이지 이번 생에 마지막은 아니잖아요"

시니컬한 어른이 마지막을 논할 때, 마지막이라는 단어로 경계가 그어져버린 세계 그 너머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상상력이란. 이거야말로 BTS(beyond the scene)다.


마지막은 반드시 아름다워야 한다. 어차피 기억은 마지막이 결정하니까. 아무리 이야기 흐름이 좋은 영화도 결말이 별로면 뒷맛이 개운치 않은 영화로 기억남고, 2시간 동안 지루하던 영화도 마지막에 뒤통수 후리는 반전 하나면 기막힌 영화로 남는다. 2022 물놀이 기억 폴더의 마지막 파일을 장식해 줄 마지막 장소로 어디가 좋을까?

그래, 그곳으로 가자. 왠지 그곳에 가면 우리끼리 즐겁게 올해를 매듭지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올해 제주도가 유독 가물었기에 여기서 물놀이를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들었지만, 폭우 다음날이니 물이 차있을 거란 확신을 갖고 일단은 가보기로 했다.(8월 초에 답사차 이곳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이곳을 처음 안 게 7~8년 전이었는데 처음으로 이곳의 맨바닥을 봤다. 뭔가 지구 내부에 우리가 모르는 변화가 진행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짜잔- 제주도 최고의 천연 수영장이자 나의 물놀이 1.5픽 '소왕물' 되시겠다. (왜 1픽이 아니냐면 여기만큼 좋은 곳을 최근에 발견해서 그렇다) 이젠 인터넷에서 꽤 알려져서 나까지 소왕물 홍보대사가 되고 싶진 않으나, 어차피 조회수도 안나오는 브런치인데 굳이 들려주시고 긴 글까지 읽어주시는 분들께 황송한 마음 감출 수 없던 차, 가진 게 없어 드릴 건 없으나 어느 멋진 날의 기억은 선물해드릴 수 있지 않을까 하여 공유하는 바이다.


가보니 놀랍게도 우리뿐이었다. 시에서 파견된 안전요원 두 분만 라디오를 틀어놓고 부채질로 더위를 날려 보내고 계셨다. 1인 1안전요원이라니. 안전하게 수영하기 딱 좋은 날씨구나-.


짐을 푸는 사이 서귀포 잠수함 1호와 2호는 이미 출항 신고도 없이 출항 해버렸고,

잠수함 1호는 그새 목적지에 닿았다.

2호는 갑자기 다이빙을 하겠다고 했다. (참고로 2호는 여섯 살이다) 막상 다이빙대에 서니 겁이 났는지 손을 잡아주라고 했다. 그리고는...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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