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코스 마라톤 완주기
때로는 술자리의 객기가 뜻밖의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후배 하나가 마라톤 대회 출전 경험담을 풀어 놓길래 나도 다음 대회에 나간다고 폭탄선언을 하고 말았다.
얼떨결에 하프마라톤대회 첫 출전! 마라톤이 쉬운 게 아님을 모르고 출전한 건 아니었지만, 생각보다 위기가 빨리 찾아왔다. 반환점을 돈 다음부터 다리가 내 맘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부터 영혼과 따로 노는 다리를 억지로 끌고 다니느라 사투를 벌여야 했다. 하프마라톤의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간, 나는 세상의 모든 마라토너들을 존경하기로 했다.
그날로 나는 마라톤 풀코스의 꿈을 접었다. 하프 코스를 뛰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풀코스를 뛰는 것은 얼마나 힘들까? 하프 코스를 뛰고 체력을 다 소진한 채로 돌아온 선수에게 ‘한 바퀴 더’를 외치는 게 풀코스 아닌가?
그러던 어느 날, 마라톤에 한 번도 나가본 적이 없는 친구 하나가 마라톤 대회에 같이 나가자고, 이왕 나가는 거 풀코스로 나가자고 꼬드겼다. 나는 하프코스를 뛰어봐서 아는데 풀코스는 아무나 뛰는 게 아니라고, 오르지 못할 나무는 넘보지도 말자고 진심으로 설득했다. 모르면 용감하다고 친구는 함께 하면 못할 게 없다는 진부한 표현을 들먹이며 펌프질을 멈추지 않았다.
그때 마라톤 대회의 날짜를 확인하지 않았다면 내 마음은 절대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웬걸? 일요일에 열리는 마라톤 대회의 다음 날이 휴일이었다! 풀코스를 뛴 다음 날 아픈 다리를 이끌고 힘겹게 직장에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몇십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기회임이 분명했다. 결국, 오랜 고민 끝에 친구와 함께 마라톤 풀코스 신청서를 제출했다. 남은 기간은 한 달, 대회 당일 풀코스 완주를 해내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뛰어라, 또 뛰어라, 그리고 뛰어라.
술 마시고 돌아온 날도 달렸고, 추워서 나가기 싫은 날도 달렸다. (대회는 3월 말에 열렸다) 뛰고 싶은 날도 달렸고, 뛰기 싫은 날도 달렸다. 계속 달리자 몸이 가벼워지는 게 느껴졌다. 대회를 2주 앞두고 친구와 같이 훈련을 하던 중 친구의 도가니가 닳아버렸다. 친구는 결국 중도 포기했고, 나 혼자만 남았다.
지금껏 훈련한 게 아까워서라도 나는 대회에 나가야 했다. 대회 1주일을 앞두고 컨디션 점검 삼아 우도 한 바퀴 반을 달려봤다. 더 달려도 될 만큼 체력이 남아있음을 확인하고 자신감이 붙었다.
드디어 대회 당일, 한 달 동안의 훈련 효과 덕분에 몸놀림이 가벼웠다. 중간에 러너스 하이가 느껴질 만큼 컨디션이 좋았다. 반환점을 돌았는데도 체력이 남아있다는 사실에 도취해 목표 기록을 대폭 당기고 페이스를 올렸다.
아니나 다를까 마라톤 초보들이 범하기 쉬운 페이스 오버. 30km 지점부터 위험 신호가 왔다. 나는 달린다고 생각하는데, 다리가 나가질 않았다. 그래도 지금껏 달려온 길보다 내가 가야 할 길이 더 짧다고 다독이며 힘든 레이스를 이어갔다. 마의 35km, 이미 마라톤 코스 옆으로 차들이 다니기 시작했고, 함께 뛰던 선수들 사이의 간격도 점점 벌어져 혼자 모든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다리뿐만 아니라 어깨, 허리 등 온몸이 아팠다. 마치 누가 뒤에서 잡아당기는 듯한 느낌, 중도 포기의 달콤한 유혹. 지구의 중력이 유독 나에게만 강하게 작용하는 듯했다.
그렇게 ‘자신과의 싸움’이 시작됐다. 흔히 마라톤을 이야기할 때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진부한 표현이지만 이보다 마라톤을 잘 드러내는 표현도 없는 듯하다. 마라톤은 결국 ‘포기하고 싶은 나와의 끝없는 싸움’이다. 특히 나처럼 기록이 목적이 아니고 완주 자체가 목적인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더 그렇다. 35km 지점부터는 1km 단위로 남은 거리가 표시됐다. (그 전에는 5km 단위로 이정표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제 얼마 안 남았으니 힘내라는 뜻으로 그랬으리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자꾸 고개를 내밀었다. 중도 포기를 선언하고 길가에 나앉으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달려온 거리가 아까웠고 다시 이런 기회가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포기하면 안 되는 이유를 만들어야 했다. 내가 여기서 포기하면 나는 마라톤에서 지는 게 아니라 내 인생에서 지는 거라고, 풀코스 마라톤을 뛰기로 했을 때 나 자신과 했던 약속, 그것 하나만큼은 꼭 지키자고 되뇌었다.
(그 약속이 무엇인지는 이 글의 끝에 공개하겠다)
그렇게 한 걸음씩 내디뎠지만, 점점 더 힘들어짐을 느낄 뿐이었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는 건지, 어디를 달리고 있는 건지도 모른 채 무의식적으로, 반사적으로, 관성적으로 뛰고 있을 때, ‘41.195km'라고 적힌 표지판이 보였다. 그동안 남은 거리를 알려주던 표지판만 보다가 내가 뛰어온 거리를 알려주는 표지판을 보자 없던 힘이 솟아났다.
‘그래도 기어이 여기까지 달려왔구나. 이제 1km 남았다. 여기서 포기하면 앞으로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포기도 쉬울 것이다. 결승선에서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달리자.’
그때였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표지판 옆에 계시던 한 아주머니께서 나를 보며 ‘힘내세요. 다 왔어요’ 라고 한마디 던졌을 뿐인데,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이미 지칠 대로 지쳐서 말랑말랑해진 감정이 지나가는 사람의 말 한마디에 사르르 녹아내리더니 눈물이 되어 흘렀다. 결국, 마지막 결승선은 무슨 사연 있는 사람처럼 눈물범벅이 되어 통과해야 했다. 더 이상 내게 남아있는 힘은 없었다. 결국 내가 이겼다.
다른 선수들에 비해 보잘 것 없는 기록이었음에도 내가 이겼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기 때문이었다. 내가 끝내 지켜낸, 나를 끝내 승리자로 만들어준 그 약속으로 글을 맺는다.
‘아무리 힘들어도 끝까지 걷지는 말자.’
* 몇 달 후, 마라톤 마니아로 알려진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책을 읽다가 하루키가 자기 묘비명에 새겨 넣겠다는 글을 보고 소름이 돋았다. 그가 묘비명에 새겨 넣겠다던 글이 내가 풀코스 마라톤에 도전하며 나 자신과 했던 약속과 무척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자신의 묘비명에 새겨 넣겠다고 했던 책의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다.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