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때부터 친하게 지내는 s형으로부터 사진 몇 장을 받았다. 나의 대학시절을눈 부신 순간으로 만들어준 형 덕분에 잠시나마 타임머신을 타고 날았고한동안 감정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이래서 내가 더 바랄 게 없는 거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곁에 있는데 뭘 더 바라나)
그 날 처음 바람을 갈라 바람을 느끼는 희열을 느낀 나는 전 재산을 털어 형이 타던모델과 같은 모델인 '슈퍼캡'을 중고로 샀다. 내가 스쿠터 타는 모습을 보고 같은 모델을 따라 산 친구까지 해서 우린 '스쿠터 삼총사'라 불리었다. 불과 1년 만에 셋 중 둘이 스쿠터를 도난당해(둘 중 나도 포함이다ㅠ) 스쿠터 삼총사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지만, 셋이 스쿠터 타고 대학 정문을 함께 통과할 때의느낌은 지금도 내마음을 벅차게 한다.
저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뭐가 달라졌을까? 확답할 수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저 때나 지금이나, 나는내가 살고픈 대로, 남 눈치 안 보고 살았다. 저 사진이 이를 증명한다.시계를 십수 년 전으로 돌려보자.
내가 스쿠터를 타고 다닐 때즈음하여 내가 다니던 대학교에 과외가 유행했다.과외 한두 개로 다른 친구들이 한 달 내내 아르바이트해야 벌 수 있는 돈을 버는 친구들이 생겼고, 그중 몇몇은 회사원이나 만질 수 있는 돈을 벌기도 했다. 학교에 자동차 타는 친구들이 늘어갔다.
나라고 그 친구들을 보며 혹하지 않았을까? 나도 과외해서 돈 좀 만져볼까? 하지만나에겐 스스로에게 한 약속이 있었다.
'지금 할 수 없는 걸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후회한다. 지금은 지금 아니면 할 수 없는 경험들을 마음껏 해보자'
후회라는 감정을 지구 상에서 가장 쓸 데 없는 감정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과외 같은 일은 나중에 언제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지금아니면 경험할 수 없는 일용직 노동직 시장을 기웃거렸다. 일당은 4만 원이었다. (나중에 용역회사에서 만원을 소개비로 떼먹은 걸 알게 됐다. 이런 게 바로 착취구조구나. 그렇게 사회에 눈을 떴다)과외하는 친구들처럼 돈 많이 벌고 좋은 차를 타진 못했지만, 힘든 일을 마치고 4만 원이 든 봉투를 받을 때, 일 마치고 스쿠터 위에 올라 바람을 가를 때만큼은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사회학과 심리학에서 지금껏 연구한 결과를 한 문장으로 줄이면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라지? 이 말이 딱 맞는 게, 지금도 난 저 때와 달라진 게 없다.
그때나 지금이나 좋은 집, 좋은 차 따위엔 관심 없다. 그래서 집과 차를 동시에 가질 수 있는 캠핑카에 사는지도 모르겠다. 캠핑카에 산다고 하면 집, 차는 따로 있는 줄 알고 내가부자인 줄 아는 사람도 있던데 캠핑카는 내가 소유한 첫 집이자, 첫 차이다.
집과 차를 단번에 사다니, 이거야말로 1타 쌍피아닌가. 하하.
소유물을 기준으로 하면 난 가진 게 별로 없지만, 마음의 품을 기준으로 하면누구보다 부자다.
오늘도 나는 캠핑카를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고 왔다. 다른 뜻은 없다. 주말엔 안 타니까 누구든 쓰라고 빌려주는 거다. (단, 운전은 안하는 조건) 물론 공짜다.어제도아는 형이 자기 아들이 캠핑카에 타보고 싶어 한다길래일부러 공항 근처 경치 좋은 곳에 세워두고 왔다.거기 세워두고 공항까지 한 시간을 걸어왔고또 오늘 밤 제주에 내려가면 공항에서 한 시간을 걸어가야 하지만 난 걷는 걸 좋아하니 상관없다.
주말에 세워둘 테니 부담 없이 타라고 하면 새 캠핑카를 부담돼서 어찌 타냐고 하는 사람도 있다. 난 한마디만 덧붙인다.
"그냥 막 써도 돼요.저 아시잖아요. 창문만 부수지 마요."
이건 진심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소유욕이 별로 없고 사물에 대한 애정이 없다.(차를 아꼈다면 캠핑카 산 지 두 달이 넘었는데 세차 한번 안 했을 리가...) 내 곁에 있는 누군가가 나로 인해 행복한 추억 하나 만들 수 있다면 그걸로 됐다. 그러니 이 글을 본, 날 아는 누군가가 마음이 바뀌었다면 주말에 캠핑카 빌려달라고 말해주길...
"브런치에서 네가 쓴 글 봤어. 나도 빌려줘." 이렇게.
(내 주위 사람 중 이 글을 볼 사람이 없다는 게 함정이다만ㅠ)
그런 꿈도 꿔 본다. 캠핑카를 해안도로 경치 좋은 곳에 세워놓고 문을 활짝 개방해놓는다. 캠핑카 안에는 커피도 있고, 간단한 요깃거리도 있다. 누구나 공짜로 잠시 쉬다 갈 수 있다.
단, 조건이 있다.
'여기서 나가면세상을 위해 좋은 일 하나는 해주셔야합니다.'
어떤 일이 일어날까? 사람들이 제 물건 아니라고 막 쓰고, 쓰레기나 버리고 가는 그런 일이 일어날까? 아니면 (실제로 확인은 못하겠지만) 여기서 좋은 추억을 얻고 간 사람들이 사막처럼 삭막한 이 세상에 습도를 더하는 일이 일어날까? 난 후자라 믿는다.
내가 진짜 히피가 되어 이 캠핑카에서 평생을 살게 되는 날이 오기전에,한 번은 실험해보고 싶다.그땐 여기에도 공고를 올려야겠다.
"범섬이 보이는 *동 *번지에 차를 세워두었습니다. 여기를 지나가게 되신다면 여기서 좋은 추억 듬뿍 가져가세요. 대신빠른 시일 내에 세상을 위해 좋은 일 하나만 해주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