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밴 라이프를 시작했을 때, 나에겐 두려울 게 없었으나 막상 여름이 되자 두려운 게 하나 생겼다.
습도. 서귀포의 여름 습도는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이런 식의 습도가 일상다반사다.
습도가 낮은데 온도가 35도 이상이면 타 죽지만, 온도가 30도언저리라도 습도가 90 이상이면 쪄 죽는다. 경험상 기온이 높더라도 습도가 낮은 게 훨씬 낫다. 이런 날엔 최소한 그늘 아래 가면 시원하니까. 캠핑카 안에서는 더 그렇다. 더운 날 습도까지 높아버리면, 도망갈 데도 없다.
올해 유독 그런 날이 많았다. 장마가 끝났는데도 습도는 떨어질 줄 모르고 밤마다 열대야가 계속되자 밴 라이프를 지속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무더위에 하루 종일 마스크를 끼고 근무하다 보니 급격히 체력이 떨어지는 게 느껴졌고 결국 며칠 동안 부모님 집에서 쉬면서 뒷일을 도모하기로 했다. 뭔가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다. 진정 에어컨 없는 밴 라이프는 불가능한 걸까?
결론을 내렸다.산으로 가자!!
해발고도를 높여 중산간으로 올라가면 최소한 열대야는 없을 테니 살만하지 않을까? 사시사철 흐르는 계곡물이 있으니 밤에 여기서 씻으면 될테고..이거 어찌 이야기가 '나는 자연인이다' 로 흘러가려는 찰나,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에 무료 샤워장 푯말을 발견했다. 간만에 세금 낸 보람을 느낀다. 하하.
그 곳에서 잔 첫날 밤, 알게 됐다. 여름에도 밤에 자다가 추워서 깰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을. 역시 답은 자연 속에 있었다. 지속 가능한 밴 라이프, 그것은 다시 이렇게 현실이 됐다.
이제 나는 더위도, 습도도 두렵지 않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남긴 묘비명의 의미를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