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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피 지망생 Sep 24. 2020

쉼표

밴 라이프, 잠시만 안녕

! ?  , . ...

다양한 문장 부호 중에서 쉼표를 가장 좋아한다. 잠시 쉬어간다는 느낌이 좋고, 지금이 끝이 아니라는, 뒤에 뭔가가 이어질 거라는 기대감이 좋다. 때로 어떤 글에서는 쉼표를 찍어 읽는 이에게 호흡할 여유를 주려는(가독성을 높이려는) 글쓴이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기도 한다.


굳이 다른 문장 부호 단점을 들춰본다면 느낌표는 너무 강렬해서 달리 생각해볼 여지를 주지 않는다. 마치 '이게 확실해! 이것만이 답이야!'라고 말하는 듯하다. 물음표는 확실함이 부족하다는 면에서 우리 인생과 가장 닮아있지만, 밤안개처럼 모호하고 불안하다. 마침표에는 달리 생각해볼 여지도 있고 확실함도 있지만, 쉼표 같은 따뜻함은 없다.

무엇보다도 느낌표, 물음표, 마침표. 이 셋의 공통점은 문장을 '끝낸다'는 것이다.




인생이 하나의 문장이라면, 내 인생에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모든 것은 쉼표다, 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밴 라이프도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1년 사계절을 캠핑카에서 살아보는 걸 목표로 했기 때문에 일단 사계절을 살아본 다음 쉼표를 찍고, 마침표는 내가 내킬 때 찍으리라 다짐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내 발목을 잡기 전까지는 그랬다. 8월 코로나 재확산으로 아내와 아이들이 사는 지역의 어린이집이 장기간 휴원에 돌입했다. 혼자 아이 둘을 보며 대학원 수업을 들어야 하는 아내는, 아무래도 어린이집 휴원이 더 길어질 것 같으니 하루빨리 제주도로 이사 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다행히 아내가 다니는 대학원은 온라인으로 강의가 진행되고 있으니 2주마다 이뤄지는 교수와의 대면 미팅에만 참여할 수 있다면 불가능한 계획은 아니었다.


일주일 사이에 이사할 집 알아보기, 전세 계약, 두 자녀의 어린이집 옮기기, 이사 업체 선정, 이삿짐 싸기, 이사... 이 모든 게 이루어졌다. 나는 부지런히도 움직이며 그 짧은 시간에, 이 복잡한 들을, 일사천리로 해내는 아내를 보며 우리 사이를 설명할 때도 쉼표가 필요함을 느꼈다. 로게을러인 나, 참 부지런한 당신.


이때 즈음 캠핑카에 누워있으면 왠지 공허하고 쓸쓸한 마음이 들었다. 가족의 이사는 나의 밴 라이프에 쉼표를 찍을 때가 왔음을 의미했기 때문이었다. 유난히 덥고 습했던 여름을 캠핑카에서 견뎌내고 사계절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을과 겨울을 눈 앞에 두고 있는데, 남은 두 계절을 캠핑카에서 살아보지 못하게 되다니... 하지만 덕분에 더 이상 가족과 헤어지며 눈시울 붉힐 일은 없어졌으니, 이제는 혼자 하는 밴 라이프가 아닌 가족과 함께 떠나는 (간헐적) 밴 라이프를 이어가게 됐으니, 기분 좋게 쉼표를 찍으려한다,



쉼표를 찍기 전에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밴 라이프 이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뭐가 달라졌나?

지금의 나는 밴 라이프 살아보기 전의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기는 할까?솔직히 큰 차이는 모르겠다. 그때의 나나 지금의 나나 여전히 나는 나일 뿐이다.

그러나 한가지는 확실하다. 지난 반년의 밴 라이프를 통해 나는 나에 대해 보다 확실히 알게 됐다.


내 피에 여행자 DNA가 흐르고 있음을.

밴 라이프만큼 나와 찰떡인 라이프스타일없음을. (적어도 아직은 찾지 못했음을)

행복감을 유지하는 데 생각보다 많은 소유물이 필요하지 않음을.

가진 것 없이도 세상 다 가진 사람처럼 살아갈 수 있음을.

비우는 만큼, (나눌 수 있다면) 나누는 만큼, 행복해질 수 있음을.

혼자라면, 한 달 50만 원 정도의 돈으로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음을.

한전에서 제공하는 전기를 쓰지 않고도, 태양 얼마든지 전기를 만들어 살아갈 수 있음을.

단순하고 간소한 삶만이 나를 이 험한 세상으로부터 구원해줄 것을.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할 필요 없음을. 나답게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게 행복의 최우선 조건임을.

나의 존재로 다른 누군가를 행복하게 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한 존재의 의미는 없음을.

지금 이 순간에도 하늘에는 별이 떠있고, 바다에는 쉼 없이 파도가 치며, 숲에는 늘 새소리가 울림을. 이것들은 대자연의 신비에 감탄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의 눈과 귀에만 들어을.

인생은 결국 여행 같은 것임을.

언젠가는 다시 밴 라이프로 돌아가게 될 것을.

살아있는 순간순간 모든 것에 감사하며 살아가야 함을.

잠시 쉬어가지만 내 소풍은 계속된다.

끝이 아니기에 마침표는 찍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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