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밴 라이프는 설렘의 연속이었고 지금도 캠핑카에 있을 때면 늘 그러한데,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설레던 순간은 새벽에 캠핑카 문을 여는 순간이었다. 콘크리트 집의 문을 열면 또 다른 콘크리트(주로 복도)가 날 막아서지만, 캠핑카의 문을 열면 바로 숲과 나무, 밤하늘이 보인다. 이렇게 캠핑카의 단 하나뿐인 문은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이자 속세(?)를 떠나 자연의 속살로 바로 들어가는 출구가 된다.
주로 숲 속이나 바닷가에 차를 세웠기 때문에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었고 덕분에 문을 열자마자 밤하늘 수많은 별들이 나를 감싸는 황홀한 경험을 몇 번 했다. 이런 경험을 몇 번 한 뒤로는,밤 추위에 못 이겨 일어날 때면 억지로라도 밤하늘에 별이 몇 개나 떴는지 바라보게 됐다.
제가 찍은 사진은 아닙니다요^^
우주,
그 속의 나.
나는 지금 이 순간, 살아서 우주의 별들을 바라본다...
밤하늘(우주)을 멍하고 바라보고 있으면 뭔가 뭉클한 감정이 저 밑에서부터 올라왔는데 그것은 바로 '살아있다는 실감'이었다. 살아있다는 실감이 들면 나는 졸리다가도 이내 잠이 깨어버리곤 했다. 나는 살아있기에 우주를 바라보며 사유에 잠긴다.
도대체 우주에 끝은 있을까? 끝이 있다면 어디가 끝이며 그 바깥은 어떤 모습일까? 우주가 처음부터 존재하지는 않았을 터, 우주가 존재하기 이전의 세계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이쯤 되면 철학과 종교가 생긴 이유를 알 것만도 같다) 과학자들의 이론대로 빅뱅에 의해 우주가 탄생한 거라면(우주라는 공간이 생긴 거라면) 수많은 별은 어떻게 생긴 걸까? 우주 속에는 도대체 몇 개의 별이 존재할까? 지구 상 모든 모래알 개수를 합쳐도 우주에 떠 있는 별의 개수랑은 비교할 수 없이 작다는데 도대체 우주는 얼마나 큰 걸까?
우주에 대한 사유는 이내 지구에 대한 사유로 확장된다. 우주 안에 지구처럼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행성이 존재할 확률, 이거야말로 기적과 같은 확률이다. 이 확률에 비하면 로또 1등은 확률도 아닌 게지.
기적과 같은 확률로 생명체가 살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추게 된 지구에 맨 처음 단세포 생물이란 게 생겨나고, 물고기, 파충류의 진화 과정을 거쳐 원시 인류가 호포 사피언스가 되고, 태초의 호모 사피언스가 지금의 내가 되기까지, 단 하나의 역사적 사실만 어긋났어도 지금의 나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 이라는 자각에 이르면 난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이유도 모르고 세상에 태어났으나, 지금의 나를 나로 맞이하여, 우주 속 나의 존재와 지금 이 순간의 의미를 느끼는 황홀감에 휩싸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그저 감사하다.
지금까지 우주의 공간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이젠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우주의 나이를 1년으로 압축하면, 인류는 12월 31일 밤 9시 45분에 등장해 직립보행을 시작하고 11시 59분 46초가 되어서야 기록을 남기는 역사를 남긴다. 우리의 일생은 길게 살아봐야 100년, 이는 우주 나이를 1년으로 잡을 때 0.15초쯤 된다고 한다. '눈 깜짝할 사이'란 표현은 이런 때 쓰는 거다. 이 찰나와 같은 스침 속에서 나는 어떤 의미를 남길 수 있을까? 내가 기적처럼 부여잡은 인생이라는 '기회'는 도대체 무슨 의미인 걸까?
그나저나 지금 내가 바라보는 저 별빛은 지금 별이 보낸 빛이 아니라 아주 오래전 별이 보낸 빛이라고 하던데, 지금 내가 보는 별 빛 중에는 그 빛을 보낸 별은 이미 폭발하고 사라진 경우도 있다고 하던데, 이쯤 되니 나도 저 별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별이 사라져도 별빛은 사라지지 않고 우주를 여행하듯, 나도 언젠가 이 땅에서 사라져도 다른 사람들에게 빛을 비춰줄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세상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존재로 남는 게 너무 큰 욕심이라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만이라도, 그런 존재로 남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그래서 가끔 딸에게 아빠가 언젠가 세상을 떠나도 저 별빛처럼 널 비출 테니, 언제까지고 늘 곁에 있을 테니, 지금처럼만 곁에 있어 달라고 애원하고는 하는데, 내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다름 아니다. 하루 한 번은 밤하늘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것이다. 저 밤하늘의 빛처럼 늘 곁에 있어주고픈 사람이 있음을 기억하길 바라는 것이다.
우리,
가끔씩은 밤하늘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자.
그런다고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 같진 않은데 최소한 주어진 것에 감사하는 사람은 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