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황도 05화

배신의 딱지

황도 5

by 고미젤리

어느 날, 재건축 아파트에 입주하고도 한참이 지났을 때, 이모는 제법 큰 청산금을 받게 되었다. 옥이 이모는 생각지 않은 목돈이 생기자 바로 용수를 떠올렸다. 비록 아들의 마지막 말이 ‘연락하지 말라’는 선언이었지만, 어쩌면 돈으로, 아니 돈이라면 용수의 마음이 좀 누그러지지 않을까, 자신의 효용이 증명되지 않을까 기대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모는 용수의 계좌번호를 몰랐다. 핸드폰 번호는 알고 있었지만 차단당한 상태여서 문자도 전화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모는 나에게 부탁한다고 말했다. 용수에게 연락해서 상황을 설명하고 계좌를 받아내 달라고 했다.


그동안 방관자이자 경청자로서의 내 역할이 갑자기 중재자가 되었다.




이 부담스러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하며 언니에게 전화했다. 언니는 안 그래도 옥이 이모 전화 자기도 몇 번 받았다고, 이제 귀찮아서 안 받는다고 했다. 언니는 이모가 이상하지 않냐고 되물으며 나보고 자꾸 받아주지 말라고도 덧붙였다. 직장 다니는 언니가 제때 전화를 못 받을 수도 있는데, 그때마다 이모는 문자 폭탄을 던졌다는 것이다.


‘내 전화를 피하는 거니?’

‘내가 뭐 잘못했니?’


언니가 일부러 피한 게 아니라고, 일하느라 못 받았다고 몇 번 말했지만, 이런 강박적인 문자는 계속 이어졌다고 했다.


하긴 나도 이런 일을 몇 번 겪었다. 사과할 일도 아닌데 미안하다고 몇 번을 말했는지도 모르겠다. 이모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배신을 많이 당해서 그렇다고 변명했다. 심지어 이모가 기르던 강아지조차 자신을 배신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만 꼬리를 친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댔다.


이런 이모에게 못하겠다, 하기 싫다 말한다면 나는 이모의 또 다른 ‘배신’의 딱지가 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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