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년대 승무원 이야기 12
승무원으로 한 달 스케줄을 아무 생각 없이 따라다니다 보면 세월이 훌쩍 날아간다. 매 비행을 별 의미 없이 다니던 시절, 여행 가방을 싸는 것도 지쳐 아무 옷이나 대강 쑤셔 넣고 다녔다. 뭔가가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그냥 호텔 방에서 뒹굴뒹굴하고 밖에 안 나갈 때도 많아서 나는 별 어려움을 못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미국 뉴욕을 갔다. 아마 그전 비행이 더운 나라였던 것 같다. 한창 태닝에 빠져 있던 터라 내 가방 안은 반팔 티셔츠나 원피스 정도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렇게 계절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다 뉴욕에 떨어졌는데, 하필 그날의 뉴욕은 서울보다 더 추웠다. 그나마 출근때 입었던 코트를 그대로 챙겨왔던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냥 방에서 뒹굴뒹굴했으면 좋았을텐데 그날따라 여행 책자를 들썩이다가 구겐하임 미술관이 내 눈에 들어왔다. 미술에 관심이 있던 건 아니지만, 사진으로 보는 구겐하임 건물이 상당히 특이해 보여서 그냥 즉흥적으로 그런 생각을 떠올린 것이다.
(photo by 트립어드바이저)
‘결정했으면 바로 실행해야지.’ 나는 바로 길을 나섰다.
양말도 신지 않고 말이다.
사실 신고 싶어도 양말이 없었다.
‘양말쯤, 나가다 아무 데서나 하나 사신지.’라는 편한 생각으로 길을 나섰다. 문제는 신발도 그다지 보온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는 데 있다. 발가락까지 훤히 보이는 샌들은 아니었지만 뒤축이 없는 슬리퍼라서 나의 맨발이 그대로 보였다.
어쨌든 호기로운 마음으로 길을 나섰지만, 문을 연 상점은 보이지 않고, 발가락은 점점 감각을 잃어갔다. 전철을 타고 미술관에 갈 때까지 나는 양말을 찾지 못했다.
그렇게 당도한 구겐하임 미술관은 도자기를 굽기 위해 긴 진흙더미로 똬리를 쌓아 올린 듯, 나선형으로 돌아가는 외벽이 상당히 인상적인 건물이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미술관 안은 아주 따뜻했다.
이 넓은 공간에 나를 아는 사람도 하나 없고, 훈훈한 열기에 마음까지 가벼워진 나는 양말의 부재를 잊고 이 장소에 푹 빠졌다. 미술관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뺑뺑이 가운데 서서 위를 올려다보니 내가 세상의 중심이 된 듯, 모두가 나를 주목하는 것도 같았다.
나선형 통로를 오르면 여러 개의 전시실로 들어설 수 있었다. 미술을 잘 모르던 나도 알 수 있던 유명 작품도 많았다. 하지만 대가들의 작품에 기가 눌려 통로로 나왔을 때 나선형 통로와 점점 멀어지고 가까워지는 바닥과 천장을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출처: Guggenheim Museum New York)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갔는지도 모르고 돌아다니던 그때, 갑자기 발끝이 좀 간질간질하며 낯선 찌릿함이 느껴졌다. 발바닥이 후끈해지는 느낌도 들고 말이다. 화장실에 가서 신발을 벗어봤다. 발가락은 새빨갛고 통통한 고구마가 되어 있었다. ‘이게 동상이라는 건가.’ 혼자 결론 내렸다. 바로 며칠 전만 해도 무더운 햇살 아래 꼼지락거리며 모래놀이를 했던 발가락이었는데 이 무슨 날벼락인지, 내가 뉴욕의 겨울을 너무 무시했다.
뒤늦긴 했지만, 돌아오는 길에 아무 옷가게나 들어가 양말도 찾아 신긴 했다. 그래도 부어오른 발가락은 한동안 나를 괴롭혔다.
그래도 그날의 교훈으로 내 여행 가방에는 양말이 넘쳐나게 되었다. 어떤 게 새 양말이고 어떤 게 신던 거였는지 헛갈려서 매번 해외 호텔에 당도하면 모든 양말을 다 빨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날 그 ‘맨발의 투혼’이 빛났던 날 이후로 나는 양말 애호가, 수집가가 되었다.
그리고! 나에게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은 그 ‘맨발 투혼’이 어느 때보다 빛났던 장소로 지금까지 기억되고 있다.
발가락은 퉁퉁 부어 올랐어도, 제법 긴 시간 꼼지락거리며 미술에 빠졌던 몰입의 기억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