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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가언니 May 23. 2024

휴가지로 한강을 택했다

세 번째 딩기대회 출전.

2023년 양양군수배 한국레이저챔피언십


이벤트처럼 일 년에 한 번씩 1인용 딩기요트 대회에 출전했다. 작년과 재작년에 양양에서 개최된 한국레이저챔피언십이 그것이다. 1인용 딩기요트 대회는 개인으로 참가하는 것이다 보니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할 수 있기도 하고, 양양이라는 장소가 주는 휴양지의 느낌, 그리고 남자친구와 함께 요트를 탄다는 의미에서 여름휴가 같은 이벤트이다. 게다가 2년 연속 수상까지 했으니, 올해도 당연히 가야 하지 않겠는가? 올해는 특별히 눈여겨보았던 양양의 설해원 리조트 예약까지 마쳐놓았다. 낮에는 요트 타고 밤에는 온천수영장에서 수영해야지!


그런데 갑자기 내가 활동하는 팀레이디스의 새만금컵 국제요트대회 출전이 결정되었다. 새만금컵 요트대회는 그동안 우리 팀이 출전하는 대회 리스트에는 포함되지 않았었는데, 이번에 J70 클래스가 별도로 생기고, 기타의 이유로 참가가 결정된 것이다.

 

(좌) 1인용 딩기요트 / (우) 팀용 킬보트 J70


나에게 새만금컵 킬보트 대회는 팀 훈련으로 갈고닦은 솜씨로 좋은 결과를 내야 하는 시험장이고, 양양 레이저협회장배 대회는 휴가지이다. 그렇다 보니 시험보다는 휴가를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긴 했으나, 두 대회를 고민하지는 않았다. 나는 팀 활동을 하는 사람이니까. 어렵게 예약했던 양양 리조트를 취소하고 나니 여름휴가 이벤트를 함께하지 못하게 된 남자친구에게 미안해졌다. 그래서 당장 이주 후에 열리는 서울특별시장배 요트대회에 함께 출전하기로 했다. 이렇게 즉흥적으로 얼렁뚱땅 양양 대신 한강으로 휴가!


팀으로 J24나 J70을 타고 한강에서 세일링을 한 적은 있었지만 혼자서 딩기요트를 타본 적은 없으니 걱정이 되긴 했다. 대회 이틀 전인 부처님 오신 날에는 비가 어찌나 많이 오고, 춥던지. 추위에 약한 나는 한강의 상황을 모르니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할지, 수위가 올라가서 위험해지면 어떻게 해야 할지 잔뜩 긴장한 채 망원한강공원에 도착했다. 2호선을 타고 합정역과 당산역 사이를 지나가며 보던 그곳이다.       


2021년 코리아세일링챔피언십/ 한강에서  대회중


이곳은 내가 이제껏 봐왔던 요트대회장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이다. 초등학생, 중학생부터 20대 초반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다른 요트대회는 시꺼먼 성인남자선수 90%에 시꺼먼 성인여자선수 10%가 보통인데, 여기에는 피부가 하얗고 요트복 차림이 아닌 일반인들, 그러니까 학부모도 많았다.


대회 대기장소


초등학생들이 자신의 요트를 스스로 정비하고, 장비를 세팅하고 있는 장면에 놀란 나를 보니, 으레 엄마들이 챙겨줄 것이라 편견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한 번 더 생각해 보니, 보트 세팅은 그날의 해상과 바람 상황에 따라 달라지니 엄마가 손 델 수 없는 특수한 영역으로 그건 불가능.


초등학생들은 능숙하게 요트에 올라타 대회 수역인 국회의사당 앞까지 거침없이 나갔다. 그 장면을 멍하니 보고서야 나는 움츠렸던 어깨를 펴고


“초등학생도 혼자 나가는데, 내가 뭐 하고 있는 거지? 언제까지 초보티를 내며 도움을 받을 거야?”


라고 생각하며 내 보트를 세팅하고 수역으로 나갔다. 초등학생들을 졸졸 따라서.


국회의사당 앞 대회수역


초등학생 선수들은 바람을 느끼고, 강의 물결을 읽으며 멀리서 오는 바람을 캐치해 냈다. 배 위에서 장난을 치다가 배가 뒤집어져 물에 빠져도 날쎄게 올라오며 깔깔깔 즐거웠다. 그 자유로움이 아름다워서 한참을 쳐다봤다. 문득 나도 한강에서 많이 놀았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고 한강변을 달리며 놀았다. 아파트단지와 이어진 한강 코스에서 시작해 하나, 둘, 셋, 이름 모를 교량을 세며 ‘오늘은 누가 빨리 다리 5개 먼저 갔다 오나’ 같은 것들을 하면서. 탁 트인 한강의 시원한 바람과, 계절마다 바뀌는 풍경이, 그리고 그 자연 안에서 노느라 키워진 체력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대회 전경


이번 대회는 ALT-7000이라는 킬보트뿐 아니라 1인용 딩기요트인 ILCA7, ILCA6, ILCA4, PICO, TOPAZ, 옵티미스트, IQFoil까지 총 8 종목의 요트가 함께 경기를 했다. 심지어 ILCA6, ILCA4, TOPAZ는 함께 스타트를 하고 게임을 하다 보니 그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유심히 관찰하기도 했다.


대화를 나눠본 중학생들은 덩치 큰 어린이 같았다. 온라인게임이나 숏폼 영상 시청 대신 자연에 온몸을 던져서 어우러지거나 부딪히며 에너지를 발산해서일까, 밝아보였다. 이 친구들은 사춘기도 무리 없이 지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혼자 엄마미소를 짓기도 했다. 반면 고등학생들은 전문선수여서 월등한 실력을 보여줬다. 우리 성인 동호인들이 배워야 할 정도로. 대학부에는 서울소재 대학 요트동아리 회원들이 참여했다.


시상식


강남과 강북을 잇는 한강의 폭이 1km 남짓이라고 한다. 파도나 조류가 없는 넓은 수역에서 막힘없이 불어오는 바람으로 요트를 타는 것은 편안했다. 한강 위에 떠 있으면 아래 위로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가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아무 소음이 들리지 않는다. 주변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목소리나 자전거 소리도 전혀 들리지 않고. 고요한 한강 한가운데에서 유유자적 강남과 강북의 전경을 둘러보고 있으니 신선놀음을 하고 있는 듯했다. 내 사소한 걱정들은 기우였고, 특별히 바람이 센 날이 아니었기에 사고나 어려움 없이 2024 서울특별시장배 요트대회 ILCA6 클래스에서 2등을 했다.

 

한강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니 최근 추진되는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나 ‘2030 리버시티, 서울’ 같은 것들이 잘 진행되어 더 많은 사람들이 자연과 함께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라인 게임보다 더 재미있는 요트 게임이 여기 있고, 한강 치맥보다 더 시원한 한강 세일링이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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