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씨네진 은영 Mar 25. 2024

나는  지루한 삶을 살고 있는가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

영화[리스본행 야간열차] 리뷰

빌 어거스트  감독/독일, 포르투갈,  스위스 /2014



삶이 외롭고, 허전하고, 권태롭고,  무료하고 심심할 때 지루함이 불청객으로 찾아온다. 그 감정이  찾아오면  호기심이 사라진다.  오직 과거의 나와 교류하고  현재의 나를 잊어버린다. 더 이상  기대할 것도 사랑할 것도  없어진다.  이때   우연히  나를 불러내는  수호신이 나타난다.  보이지 않는 나의 신들이 죽어가는  마음을 살려낸다.  기회가 왔을 때 뛰쳐나갈 용기만 있다면      지루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거다. 내 안에 존재하는 가능성을  0.0001%  사용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우연히 얻은 낯선 기차표 1장이  나를 움직이게 고  현재로 나를 끌어올릴 수 있다. 



영화에서  마주한  아름다운 리스본 풍경들이 낯설지 않다. 몇 년 전 포르투갈을 여행하면서 보았던 호시우 광장, 28번 트램, 리스본의 거리를 영화에서 만났다.  



리스본에 도착하자마자   한국인들에게 잘 알려진 해물밥 빠에야로 유명한 집 <우마>를 찾아갔었다.  이미 외국인들이 줄을 섰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이 되어버렸다. 허리가 구부러져있고 눈도 잘 보이지  않는 할머니 한 분, 할아버지 두 분이 서빙하고 요리한다. 어쨌든 기다려서 먹은 해물밥과 포르투갈 빵은  지금도  그 맛이 느껴진다. 유럽의 최서단 호가 을  버스와 기차를 타고 찾아갔으나 안개로 뒤덮여 바다를 보지 못하고 돌아오기도 했다.  여행은 실패 가미되어야 제 맛이 난다.  안갯 속에  젖어 형체도  알아볼 수 없었던 사진과  그 멀리 찾아간 곳에 10분도 머무르지 못하고 떠나 온 기억이 호가곶을 잊지 못하게 한다.  두려움 속에서 보았던  풍경은  자극으로 다가와  내 기억에  행복 상품으로  보관되어 있다.



영화 속 대사 중에 경험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우리는 생각보다  우리 안에 있는 것을 다 경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


우리가 우리의 경험을 다 꺼내지 못하고 죽지 않기 위해서는 내 안의  경작되지 않은 밭을 끌어내 놓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낯선 곳을 여행하고 색다른 영화도 보고 음악도  듣고 그림도 경험해야 한다.


오래전 비실용 학문이었던 독일어를 강의하면서 스스로  강의로부터 소외감을 느꼈을 때 독일로  떠났다. 돌아와 보니 제자리였으나 내 앞에 다가 온  세상은 아주 작았다. 여행에서 돌아올 때마다  현실적인 시간은  내 손바닥 위에 있었다.  독일로 떠났던  이유는 아주 사소했다,  강의할 때  신명이 나지 않았고 답답했기 때문이다. 그 사소함이 나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이 영화 대사 중에  인생은 생각보다 사소한  일로 결정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부분이 있다.  


''삶의 결정적인 순간은  항상  드라마틱하거나  크게 다가오지 않는다.''


갈수록 아주 작고 작은 일들이 오히려 중요해진다.  살아가면서 쌓아 둔 기대감들을 하나씩 내려놓고 있다.


좋았던 여행은  다녀와서 더 의미가 커진다. 영화에서 주인공 그레고리우스는  말한다


''실제 들판보다  그 표현이 더 푸르다.''라고..


이미 여행은 지나간 과거고 그 과거는 여기에 머물러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행은 우리의 기억을 아름답게 만든다. 죽을 때까지.



  

알람이 울리기 전

고서적이 둘러 쌓인 거실

흐릿한 조명 빛 아래

혼자 체스를 두고

혼자 차를 마시는

늙은 노신사가 보인다.


그  노신사는 학교에서 고전문헌학을 강의하고  생기 없는 삶을  혼자 살고 있는 그레고리우스다.  그는 폭우가 쏟아지던 어느 날, 우연히 다리 위에서 자살을 시도하는 여인을 구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빨간 코트 입은 여인은  떠나고 그에게 남은 건 그녀의 코트와 코트 속에 넣어 둔  리스본행 티켓, 책 한 권뿐이다.  그레고리우스는  순간 그 티켓으로 용기를 내어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오른다.  



기차에 올라 그녀가 남긴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의 저자 아마데우의 삶과 지성에 빠져든다. 인생이란  정해져 있는 대로 사는 것이라 생각해 왔던 그는 용기를 내서 리스본행 열차에 올라 일탈을 감행한다.




일상을 벗어나 리스본행 열차에 올라탄 '그레고리우스'의 선택은

새로운 삶의 변화를 가져다.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독일 출신의 파스칼 메르시어 베스트셀러 소설 '리스본행 야간열차'가 원작이다. 한 남자의 인생을 바꾼 기적 같은 여행을 담은 작품이다. 많은 사랑을 받았던 베스트셀러가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2회 수상에 빛나는 세계적인 거장 빌 어거스트 감독의 손에서 새롭게 탄생했다.  

개인적으로 빌 어거스트 감독의 <정복자 펠레>는  인생의 영화이기도 하다.


작가 메르시어는 “꼭 필요한 사건만이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결정적인 순간이 되는 거는 아니다. 실제로 운명이 결정되는 드라마틱한 순간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사소할 수 있다. ”라고 말합니다.

   


사소한 우연은 우연일까요? 이미 정해진 운명일까요?


   영화에서 리스본 기차역부터 호시우 광장, 고즈넉한 분위기의 트램, 아름다운 해안도로, 가스등이 켜진   야경 등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숨은 명소들이 등장한다. 시각적인 아름다움과 동시에 ‘그레고리우스’의 내적인 여정까지 표현할만한 가슴 벅찬 풍경을 영화 속에 담고 있다.  

 생각지도 못한 여행을 떠났지만 나 자신을 찾는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풍경만으로 가볍게 보기에는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심상치 않다. 영화 속에서 아마데우의 저서 <언어의 연금술사>는  '그레고리우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단지 꿈같은 바람일까?


지금 내 모습이 아닌 완전히 다른 삶을 선택하길 원한다면


'꼭 요란한 사건만이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결정적 순간이 되는 건 아니다.'


그는 여행을 하면서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도 시작하게 된다.  우연히 충동적으로 떠난 여행, 아무런 준비도 없이  옷가지와 휴대폰 그리고 그녀가 남긴 책과 빨간 코트만을 들고 여행을 시작했다.  여행을 시작하며  천천히 책을 읽어나가던 그에게 아마데우의 글은 그의 영혼에  말하기 시작한다. 책은  지금까지의 그의  삶을 흔들리게 다.    



아마데우의 무덤에는 다음과 같은 묘비명이 있다.

   

"우린 스스로의 뭔가를 뒤에 남기고 떠난다. 그렇기에 우리가 비록 떠나가 버린다고 해도 우리는 계속 거기에 머물 것이다. 그래서 우린 남긴 것을 다시 되찾기 위해서 오로지 다시 되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



뒤에 남긴 것이 무엇일까 그것이 무엇일까? 궁금하다. 뒤에 남긴  아마데우의 삶으로

뒤에 남은 사람들의 삶이  영향을 받는다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혁명은

혁명의 성공은 기쁨을 남겨주기보다는

남겨진 사람들에게 상처도 남긴다.

주앙은 고문의 후유증으로 요양원에 있고  그는 자기 때문에 피해를 입은 가족에게 죄책감을 느끼며 산다.

아마데우의 친구 조지도  아마데우에 대한 죄책감으로

스테파니도 아마데우에 대한 죄책감으로 살아간다.

혁명의 주역들과 가족들은  혁명 후 상처로 살아간다.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우연의 연속에서 주인공 그레고리우스가 카네이션 혁명 당시 의사로서  레지스탕스 활동을 한 아마데우 프라두라는 존재를  책을 통해  추적다.

주인공이 그의 삶을 알아가면서  그의 삶을 들여다보고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과정 속에서 사람들 간 감성적 갈등과  이성적 판단의 모호성,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역사적 사건이  얽힌다.  그 속에 놓인 존재들이  영웅적이고 혁명적이었다기보다는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  보잘것없는 존재로 나약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보여다. 혁명을 꿈꾸었으나 나약한 인간에 불과한 아마데우의 삶에서 친구 호르헤의 인생을, 주앙의 인생, 스테파니아의 인생도 알게 다.



그렇다면 아마데우가 진정으로 추구하던 삶이란 무엇이었을까요?


그들의 얽힌 삶에는 사랑도 중요다.

자신을 죽음에서 구해 준 오빠 아마데우를  오빠 이상으로  사랑하는 아드리안은 평생 독신으로 살고 있다.

친구 조지의 연인 스테파니를 사랑하게 된 아마데우는  혁명을 꿈꾸었던  친구 조지를 배반하고  다른 나라로  떠나려 하지만 실패한다.

그들은 소용돌이치는 역사 속에서 미약한 개인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껏 단조롭고  변화도 없이 살아오던  고르세우스에게 그들이 혁명가들로서 위대한 존재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뜨거운 열정과 사랑, 강인한 의지로 삶을 살아온 열정적 존재로 보인다. 아마데우의 죽음 이후에 남겨진 사람들의 삶을 접하고 리스본을 떠나는 고르세우스는  남을 것인지 떠날 것인지 고민한다.




사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인 부분은 아마데우와 스테파니가 스페인으로 넘어와서 둘이 차 안에서 이야기하는 장면다.  

 


 아마데우는 스테파니아에게  말한다


'이제 멀리 아마존으로 떠나 우리만의 세계에서 같은 공기, 같은 맛, 같은 느낌으로 살자'


 


 '네가 원하는 이것들은

너를 위해 원하는 거야


너는 내가 평생 해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걸

원하고 있어


그리고 난 준비되지 않았어'

  


스테파니는 아마데우가 원하는 삶에 동의하지 않다.  사랑이라는 감정에 합류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삶을 자신이 선택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녀의 선택에 박수를 보낸다.


세월이 흘러 대학에서 역사학을 가르치는 스테파니를 고르세우스가 만나 그 당시 이야기를 나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나이 든 스테파니  역할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화가 사비나로 출연했던 배우 레나 올린다. 여기에서 그녀는 세월 속에 묻어 둔 연인 아마데우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을 얼굴 표정에  다  담아서 표현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배우지만 그  장면  레나 올린의 연기는  존경하고 싶을 만큼 탁월했습니다.


'그가 원했던 여행은

그의 영혼을 향하는 거였어요

저한테 향하는 게 아니었어요.'




누군가 말하더군요  사는데 물질의 결핍보다 지성의 결핍이 더 불편하다고.  영화를 보며  소신대로 살아갔던 아마데우, 사랑함에도 자신의 삶을 더 사랑하는  쪽으로 선택한 스테파니, 아마데우의 책을 읽고 그의 삶을 자신의 성찰의 도구로 끌어들여 삶을 판단하는 고르세우스 그들에게 공통점이 있음을 발견했다.

 


 폴 발레리의 문구가 그들의 삶을 대신 말해준다.

    


'그대가 용기를 내어 생각하며 살지 않으면 머지않아 그대는 사는 대로 생각합니다.'



그렇다. 생각하는 삶은  자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자신에게 질문하며 답하는 삶이다.  이런 성찰의 시간을 갖지 않는다면  이  영화의 주인공이 살았던 그 시대 독재는 계속 진행되었을 것이고  혁명은 의무다라는 말도  실행하지 못했을 것이다.


<생각거리>

이 일탈이 여러분에게 는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요?


리스본의 풍경을 보시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요?


왜 그는 책의 글귀에 감동하고 있을까요?


지금까지 여러분의 지성을 울리는 그런 책들이 있었나요?



마지막 스테파니는 왜 아마데우를 따라가지 않았을까요? 마지막 장면을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영화리뷰

#리스본행 야간열차

이전 01화 가끔 잘못 탄 기차가 우리를 목적지에 데려다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