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틈으로 아침 햇살이 스며들 듯, 익숙한 국 냄새가 방 안을 천천히 채운다. 파리의 겨울 아침, 남의 나라 부엌에서 가방 속 깊숙이 넣어온 마른미역은 낯선 유럽의 공기 속에서 조용히 다시 숨을 틔운다. 식탁 위에는 샐러드와 감자볶음, 잔멸치, 나물무침이 소박하게 놓이고, 그 가운데 미역국 한 그릇이 자리를 잡는다. 이방인의 식탁 위, 낯선 그릇과 친숙한 음식들이 조심스레 섞이며, 그 부조화가 오히려 마음을 먹먹하게 만든다. 국경을 건너온 이 음식들은 타지에서 더욱 귀한 생명처럼 빛난다.
숟가락을 드니, 미역국이 조용히 묻는다. "여기서도 잘 견디고 있느냐"라고. 말없이 삼킨 국물 속에는 이미 따뜻한 위로가 배어 있었다. 오늘 아침은 문득 생일상과 산후조리를 위해 미역국을 끓이던 시간으로 나를 데려간다. 미역국은 내게 다시 말을 건넨다. 누군가를 위해 끓인 국은 환대이고, 나를 위해 끓여준 국은 위로라고. 파리바게트와 커피로 시작되는 파리지앵의 아침과는 사뭇 달랐지만, 한국에서 가져온 손맛은 이국의 공기 속에서 더 진하게 배어들었고,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그 맛은 결국 ‘집’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여행 5일째, 그렇게 이방인의 마음을 다독여 준 아침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베르사유 궁전으로 향했다. 숙소가 외곽에 있어 기차로 40분이면 도착했다. 겨울임에도 궁전 입구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었고, 꽃도 분수도 없었지만 오히려 궁전의 웅장함과 장식의 섬세함이 더 도드라졌다. 인파에 쓸리듯 관람을 이어갔지만, 마지막에 마주한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 앞에서 우리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자크 루이 다비드가 그린 이 대형 역사화는 압도적인 크기와 구도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원본은 루브르에, 복제본은 이곳 베르사유에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본관의 화려함을 뒤로하고 우리는 트리아농으로 향했다. 내가 꼭 만나고 싶었던 마리 레슈친스카 왕비의 초상화를 보기 위해서였다. 2022년, 한국에서 열린 베르사유 특별전에 이 작품이 왔지만, 그땐 미처 알지 못해 놓쳐버렸다. 그 아쉬움은 마음속에 오래 남았고, 이번 여행에서는 반드시 마주하고 싶었다.
트리아농에 닿자, 침묵하듯 서 있는 겨울 풍경이 펼쳐졌다. 문득 젊은 시절 베르사유를 여행했던 장면이 떠올랐다. 한낮의 햇살 아래 자전거를 타고 운하를 돌며, 짙은 초록 숲을 헤집고 다녔던 그날들. 그 기억은 울컥 그리움으로 밀려왔다. 나는 그리움을 숨처럼 삼킨 채, 오래도록 마음속에 품어왔던 마리 레슈친스카의 초상화를 찾아 바삐 안으로 들어섰다.
장 마르크 나티에, 「성경을 읽고 있는 마리 레슈친스카 왕비」, 1748, 베르사유 트리아농조용한 전시실 안, 마침내 마주한 마리 레슈친스카의 초상화는 겨울의 침묵 속에서 더욱 또렷하게 빛났다. 붉은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책을 들고 있었지만, 읽고 있지는 않았다. 시선은 멀리 향해 있었고, 입꼬리는 아주 미세하게 올라가 있었다. 담담한 그 표정은 말 없는 단단한 침묵처럼 다가왔고, 사색 중의 미소는 오래된 슬픔을 간직한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한참 동안 그 앞에 서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한국에서도 여러 번 들여다본 그림이지만, 오늘처럼 그 화려한 드레스 속에 가라앉은 침묵이 이토록 깊게 파고든 적은 없었다. 궁정의 화려한 무대에서 외면당하며 살아야 했던 그녀의 시간이 붉은 옷자락 아래 조용히 누워 있었다. 그 고요한 얼굴을 마주하며, 나 역시 언젠가 말없이 견딘 시간들을 떠올렸다.
수십 번 보았던 그녀의 붉은 드레스는 여전히 나를 감동시켰다. 권위와 체념이 하나의 무게로 공존하는 장면이었다. 붉은색은 일반적으로 힘과 생명을 상징하지만, 이 그림 속에서는 억눌린 감정과 체념의 무게로 다가왔다.
짙은 녹색 커튼은 그 붉음을 눌러 고요한 기운을 드리우고, 검정 베일은 단절과 슬픔의 기운을 암시했다. 그 사이 흰색 레이스는 그녀가 끝까지 놓지 않은 신념과 어머니로서의 정결함을 보여주었다. 그림은 말없이 전한다. 한 시대의 왕비이자, 묵묵한 인내로 삶을 버틴 한 여인이 여기 있다고.
무엇보다 그녀의 침묵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었던 사람은, 이 그림을 그린 화가 장 마르크 나티에(Jean-Marc Nattier, 1685–1766)였다. 그는 루이 15세 시대 프랑스 궁정의 대표적인 초상화가로, 귀족 여성들을 신화 속 여신처럼 이상화해 그리는 데 능했다. 다이애나나 플로라, 헤베처럼 변모한 여인들의 화려한 자태와 우아한 포즈, 부드러운 표정은 미덕과 신분을 드러내는 당시 미학의 전형이었다.
그러나 이 작품, 《성경을 읽고 있는 마리 레슈친스카 왕비》에서는 그런 장식적 과장이 사라진다. 나티에는 왕비를 미화하지 않는다. 그는 그녀의 고요한 신앙과 단단한 침묵, 보이지 않는 내면을 정직하게 담아낸다. 화려함보다 절제, 권력보다 고요함을 택한 이 그림은 단지 왕비의 초상이 아니라, 침묵과 체념 속에서도 품위를 지킨 한 존재의 얼굴이다.
마리 레슈친스카는 가난한 폴란드 귀족 출신으로 프랑스 왕비가 되었지만, 궁정에서는 늘 ‘가난한 나라의 공주’로 불리며 멸시받았다. 조용하고 헌신적인 그녀의 성격은 남편 루이 15세에게는 지루함으로 비춰졌고, 결국 수많은 정부들 사이에서 점점 고립되어 갔다. 그녀는 자신의 애착을 자녀들과 신앙에 옮겼다. 딸들에게 쏟은 애정은 단순한 모성애라기보다, 정서적 공백을 메우기 위한 방식이었는지도 모른다. 종교는 그녀를 버티게 한 마지막 피난처였다.
“왕의 마음을 붙잡고자 하지 않습니다. 다만 아이들을 잘 키우는 것이 제 의무입니다.”
그녀의 말은 단순한 체념이 아니라, 품위 있게 물러선 한 인간의 고요한 결심처럼 들렸다. 그림 속 책 아래 놓인 성경책처럼, 그녀의 삶은 침묵과 인내로 꿰맨 기도의 시간이었다.
트리아농의 이 작은 공간은 조용히 자기 자신을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을 선물처럼 내어주었다. 오래도록 마음속에 품어왔던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그 그림 한 점을 나의 스승으로 삼아, 침묵을 배우기로 했다. 돌아오는 길, 우리는 정류장 앞의 작은 선술집에 들렀다. 맥주 한 잔을 앞에 두고, 오늘의 여행을 조용히 정리했다.
“여행이란 낯선 풍경을 보는 일이기도 하지만, 조용한 시선을 마주치는 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