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블로뉴 숲 속, 나는 유리 돛을 단 배 한 척을 만났다. 곡선을 따라 은빛으로 빛나는 그 배는, 마치 숲의 뮤즈들이 부르는 노래에 이끌려 길을 잃고 이곳에 닻을 내린 듯했다. 많은 이들이 그것을 미술관이라 부르겠지만, 내 눈엔 감정의 대양을 건너 미지의 예술 대륙을 향해 나아가는 항해선처럼 보였다. 루이 비통 미술관은 어쩌면 그런 여정을 시작하기 위한 정박지였는지도 모른다.
예술은 종종 너무 멀고 어렵게 느껴진다. 감정은 차오르는데, 길은 막막하다. 이곳은 그런 이들에게 조용히 다가와 마음의 문을 열어준다. 언어보다 먼저 울림을 건네는 공간, 감정의 나침반을 쥔 채 출항을 준비하는 배였다. 결국 그곳에 닿기 위해 필요한 것은 설명이 아니라 한 줄기 색, 말 없는 정적, 그리고 그 여정을 함께 건너려는 용기다. 파리의 빛을 머금은 유리 돛은 숲 속 깊은 곳에 또 하나의 세계를 펼쳐두고 있었고, 나는 어느새 그 안으로 이끌려 들어갔다.
나는 유리 돛처럼 빛나는 그 건물 안에서 마크 로스코의 그림들을 영접했다. 2024년 겨울, 루이 비통 미술관에서는 그의 대규모 회고전이 열렸다. 예전에는 단순한 추상화로만 보이던 그의 작품들이, 이 공간에서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색은 풍경처럼 펼쳐졌고, 말 없는 침묵은 마음 깊은 곳까지 퍼져나갔다. 초기 그가 상상했던 신화적 이미지부터, 말년의 색면 회화까지 115점의 작품이 층별로 전시되며 한 사람의 삶을 이야기하는 무대처럼 느껴졌다.
황금을 먼저 발견한 듯한 착각 속에, 나는 그의 붉은 그림에 이끌려 곧장 위층으로 올랐다. 붉은색과 회색이 먹물처럼 번지며 화면 위를 흐르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죽음을 통과한 피, 삶의 균열에서 새어 나온 고통 같았다. 장례식을 닮은 정적의 전시실. 그 색의 성역 앞에서 나는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한 채 멈춰 섰다. 손목에서 뚝뚝 떨어지는 피처럼, 눈물이 흘렀다. 왜 그랬을까! 말로 설명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단지 마음 깊은 어딘가를 건드리는 잊힌 기억의 진동이었다. 형체도, 서사도 없지만, 오히려 그 무형성 덕분에 더 본질에 가까웠다. 그것이 로스코의 힘이었다. 그는 모든 형상을 비워낸 채 색 하나로 인간의 삶을 이야기했다.
누구에게나 마음속에는 한 줄기의 색이 존재한다. 그것은 잃어버린 것, 오래 간직해 온 것, 그리고 다시 살아내야 할 어떤 감정의 근원이다. 로스코는 말했다.
“나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감정을 경험하는 데만 관심이 있다.”
나는 그 넓은 화면 앞에서 단순한 색이 아니라, 멈춰 있던 시간, 억눌러 둔 감정, 그리고 잊고 있던 나 자신을 바라보았다. 감정이 잦아들기를 기다리며 잠시 의자에 앉았고, 이내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1층으로 내려가 그의 초기 작품부터 보기 시작했다.
그의 초기 작업들 사이를 거닐다가, 작품 〈안티고네〉 앞에 발걸음을 멈췄다. 강렬한 색도, 선명한 형상도 없었다. 그러나 그 낯선 화면 앞에 선 순간, 마음은 이상할 만큼 복잡해졌다. 겹쳐진 얼굴들과 어긋난 신체, 뒤틀린 선들 속에서 그녀의 두려움과 고통, 신념이 동시에 읽혔다. 화면 아래쪽엔 기묘한 동물의 다리처럼 보이는 형상이 있었고, 누군가는 그것을 ‘제단’이라 불렀다. 로스코는 안티고네를 고대의 비극을 넘어 인간 내면의 고통과 말 없는 저항의 상징으로 해석했다. 고통과 희생이라는 보편적 감정을 자신의 언어로 새롭게 태어나게 했다. 그림 속 안티고네는 침묵하지만, 겹쳐진 얼굴과 어긋난 몸, 짓눌린 화면은 언어보다 깊이 그녀의 내면을 전달한다.
기억 속에서 《안티고네》의 줄거리를 떠올렸다. 테바이의 두 왕자, 에테오클레스와 폴리네이케스는 왕위를 두고 전쟁을 벌이다 서로를 죽인다. 삼촌 크레온은 에테오클레스를 예우하고, 반역자로 낙인찍힌 폴리네이케스의 장례를 금한다. 그러나 누이 안티고네는 신의 법을 따르겠다며 형의 시신을 몰래 묻고, 결국 체포되어 죽음의 동굴에 갇힌다. 그녀의 약혼자이자 크레온의 아들 하이몬은 그녀를 구하려 하지만 실패하고, 안티고네가 자결하자 그 역시 뒤따른다.
마크 로스코는 초기 회화에서 고대 신화와 고전 문학을 주요한 영감의 원천으로 삼았지만, 이 고전을 그대로 따르지는 않았다. 〈안티고네〉는 로스코가 형상의 회화를 떠나 색면 추상으로 나아가기 직전, 마지막으로 붙들고 있었던 서사이자 그림자였다. 그의 예술은 점점 단순해졌고, 결국에는 색만 남았다. 그는 이마저도 점차 덜어내기 시작한다. 얼굴은 사라지고, 선은 흐려지며, 이야기조차 증발한다. 마지막엔 그의 회화에는 색과 정적만이 남는다.
그날 우리는 전시를 마치고, 숙소에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팬 위에선 크림 파스타가 부드럽고 고소한 향을 퍼뜨리고 있었다. 버섯과 베이컨, 허브의 향이 크림 사이를 은근히 흐르며, 따뜻한 김이 공간을 감쌌다. 샐러드 위에는 올리브 오일에 정성스럽게 마리네 이드 된 스테이크가 두툼하게 올려져 있었다. 겉은 노릇하게 구워지고 속은 붉은 기운을 머금은 채 촉촉하게 살아 있었다. 잘게 자른 채소들 사이에 놓인 스테이크는 마치 중심을 잡는 축처럼 존재하고 있었다. 붉은 토마토의 싱그러움과 사과 조각의 산뜻한 단맛이 어우러지고, 스테이크의 깊고 진한 풍미가 은은한 산미를 타고 혀끝에 머물렀다. 와인 잔은 계속 비어 가고, 깊고 붉은 와인은 우리의 마음 깃을 적시며 가슴을 타고 천천히 내려갔다.
이 식탁 위에서 파스타도, 토마토도 더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소박한 식사 한 끼, 말없이 나눈 웃음으로 채워진 이 저녁은 마치 로스코의 그림 같았다. 겉으로는 단순했지만, 그 안에는 말로 다 전할 수 없는 감정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그 깊은 울림은 붉은색처럼 번지고, 향처럼 배어 식탁 위에 오래도록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