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주인은 나' 같은 문구가 유행했던 시절이 있었다. 유행이 좀 지나긴 했지만 요즘도 심심치 않게 보이는 스테디셀러 문구이다. 쓴 사람에게 물어본 적은 없지만 아마도 마음만 제대로 먹는다면 누구나 다 인생을 의도하는 바대로 이끌어 나갈 수 있다는 의미인 듯하다. 나도 한때는 저 말에 깊이 감명받아 내 인생을 내가 원하는 대로 개척해 나갈 거라는 생각으로 가슴이 부풀어 올랐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30대 후반이 된 지금에 와서 지나온 세월을 뒤돌아보면 삶이 내 마음 먹은 대로 흘러갔던 적이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이번에야말로 내 계획대로 흘러가는구나! 하는 감각을 잠깐이라도 느낄 때면 금방 예상도 못 했던 사건이 터져 삶은 계획이라는 노선을 탈선해버렸다.
요리를 좋아해서 식당을 차렸는데 요리에 재능이 없어서 식당은 망하고, 식당을 홍보하기 위해 전단지를 만들다가 이미지 편집에 센스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여 직업이 홍보물 디자이너가 되어 버리는 식의 느낌이다.
주인이라고 하면 뭔가에 대한 권한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나는 내 삶의 체험자이자 주체이긴 하지만 삶을 장학하고 지배할 수 있는 권한이 하나도 없는 걸 보면 주인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렇다면 주인은 도대체 누구인 걸까 하고 생각해보면 역시 몇 번을 생각해봐도 '먹고사니즘'인 것 같다.
진로의 분기점에서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할 때마다 먹고사니즘은 항상 그 선택에 큰 영향을 끼쳤다. 살아남을 수 있는 길, 생존에 더 유리한 방향을 향해 걸음을 내딛게 했다. 너무 지쳐서 주저앉아 버렸을 때도 반강제로 일어서게 했고,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 결정을 무한히 연기하려고 했을 때도 기어이 어느 한쪽 길을 고르게 만들었다.
그렇게 먹고사니즘에게 등을 떠 밀려 비탈길을 우당탕탕 굴러떨어지며 여기까지 왔다. 하마터면 죽을 뻔하지 않았냐고 살살 좀 밀라고 화를 냈던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게 등이 떠밀린 덕분에 내가 뭘 못하고 뭘 잘하고 생존하기 위해 어떤 걸 하는 것이 더 유리한지를 알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선택을 한 것도 그 모든 것들을 온전히 경험한 것도 나이기 때문에 내 인생의 주인은 나라고 간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시 등을 떠밀린 감각이 사라지지 않는다.
"분명히 내가 선택하긴 했지만...저 녀석이 등을 떠밀어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하는 기분이다.
과격하긴 하지만 스스로에 대해 더 깊이 알 수 있게 해주고 삶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더 풍부하게 만들어 준 점에 대해서는 고맙게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협상의 물꼬를 틀어 앞으로는 밀더라도 좀 살살 밀어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하지만 먹고사니즘은 앞으로도 분명 나를 있는 힘껏 비탈길로 거칠게 밀칠 것이다. 이 녀석은 원래 이런 녀석이다. 내가 많이 겪어봐서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