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출근길 버스에서는 항상 잔다. 이 시간에 경기도에서 서울로 가는 광역버스를 타는 사정은 대부분 다 비슷해서 승객 대부분이 나처럼 잠을 잔다. 그래서 출근길 버스 안은 항상 고요함이 느껴질 정도로 조용하다.
하지만 가끔 스마트폰 메시지 알람을 꺼두지 않아서 계속 울리거나, 큰 목소리로 통화를 오래 하거나, 헤드폰 볼륨을 너무 크게 키워서 가사가 들릴 정도로 음악이 새 나오는 승객들이 등장하곤 한다. 그런 소음이 들릴 때마다 스트레스가 쌓여서 눈을 감고 있는데도 피로가 누적된다. 하지만 소리를 줄여달라고 부탁하는 건 엄청난 마음의 부담이기 때문에 대부분 그냥 참고 넘어간다. 나는 하루에 사용할 수 있는 사회성의 양이 얼마 안 되는 사람이라 아침부터 겨우 이런 일에 사회성을 소비해 버리면 회사 가서 쓸 것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다 얼마 전 특이한 소음을 만나게 되었다. 불규칙한 리듬으로 탁 타닥 탁 타닥 하고 뭔가를 두드리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다른 소음과 달리 유독 신경을 바짝 세우게 만들었다. 그 소리가 20분 넘게 들려오자 스트레스가 임계점에 도달하여 큰마음 먹고 소음원을 제거하자고 결심했다.
미어캣처럼 좌석에서 일어나 고개를 앞뒤로 샥샥 돌리며 소음을 유발하고 있는 사람을 유심히 찾았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소음을 발생시키는 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커튼 고정 핀 하나가 빠져서 버스가 흔들릴 때마다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였다. 소음 유발원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탁 타닥 거리는 소음은 계속 들려왔지만 이상하게도 더 이상 거슬리지 않았다. 그래서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꿀잠을 잘 수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회사로 걸어가는 동안 같은 소음인데 어째서 사람이 내는 게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순간부터 거슬리게 들리지 않았는지를 계속 생각해봤다. 눈이나 비를 향해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어쩔 수 없는 자연현상 이라고 받아 들였기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그렇다면 버스 안에서 들리는 다른 소음들도 자연현상이라고 생각해버리면 더 이상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닌가? 모든 것이 마음 먹기에 달려 있다는 원효대사 해골 물 계열의 깨달음을 얻는 순간이었다.
그 이후로 버스에서 소음이 들릴 때마다 항상 저것은 자연현상이다 하고 생각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그 어떤 소음도 더 이상 신경을 거슬리게 만들지 않았다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사람이 내는 소음인 것을 알고 있는 이상 그것을 자연현상처럼 인지하는 것은 불가능 했다. 비나 눈은 막을 수 없지만 사람은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그때의 깨달음이 무색할 정도로 다시 예전과 같이 잔잔한 소음 스트레스와 함께 출근을 하고 있다. 이론적으로 깨달음을 얻었다 해도 그것을 실생활에 적용하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인 듯하다. 원효대사님이 요즘 시대에 살아 계셔서 강연 같은 걸 다닌다고 가정했을 때 사회자가 갑자기 “자, 그럼 마지막으로 원효대사님의 해골 물 원샷 시연으로 강연을 마치겠습니다.” 처럼 진행하면 난색을 표하셨을 것이 틀림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