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지원했던 회사에서 탈락 통보를 받는 건 괴로운 일이다. 인사채용에는 급변하는 내부 상황, 갑작스러운 TO조정, 인사권자의 단순한 변덕 등 내 능력을 벗어난 다양한 변수가 존재한다는 것은 잘 안다. 하지만 그걸 알아도 탈락 통보를 받는 순간 나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하는 기분을 피할 수 없다. 아무리 ’이번에는 인연이 닿지 않아 아쉽게도...‘ 같은 미사여구로 꾸며도 ’아무튼 당신은 이곳에 쓸모가 없습니다.‘ 라는 말로 들린다. 어차피 탈락 통보인데 쿠션어를 잔뜩 도배하여 아리송하게 돌려 말하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어딘가 모르게 얄미운 마음도 든다.
그런 탈락 메일을 수없이 받아내며 어떻게든 일 자리를 찾아내 십년이 넘는 세월동안 어찌저찌 경력을 이어왔다. 그러다 어느날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이제는 탈락 메일을 받는게 아니라 써야하는 입장에 놓이게 되었다. 보통 탈락 메일은 인사팀에서 발송하는게 관례지만 그 당시 근무하던 회사가 워낙 소규모인데다 인사팀이 제대로 꾸려지지 않은 상태라 내가 쓸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내가 직접 면접을 보고 떨어트린 사람이니 내가 탈락 메일을 쓰는게 어찌보면 도리에 맞는 듯 하기도 해서 굳이 반발하지 않고 탈락 메일을 쓰기로 했다.
그런데 한 글자도 쓸 수가 없었다. 탈락 메일을 받는 순간의 고통을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떤 말을 어떻게 쓰든 키보드를 두드리는 한자 한자가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힐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눌렀다. 최대한 상처를 덜 주는 말로 탈락을 통보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머리가 새하얗게 변해서 어떤 말도 떠올릴 수 없었다.
그 순간 문득 내가 과거에 받았던 탈락 메일들이 떠올랐다. 그때 나는 어떻게 탈락을 통보 받았더라 하는 생각에 오래된 메일함을 뒤져서 탈락 메일들을 찾아냈다. 그 탈락 메일들을 다시 읽으며 조금 놀라고 말았다. 그 당시에는 이렇게 빙빙 돌려 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는데 막상 쓰는입장이 되어 읽어보니 어휘와 말투 하나하나가 받는 사람의 기분을 최대한 상하지 않게 고민해서 쓰여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메일들을 다시 읽으며 예의바르게 탈락을 통보하는 글쓰기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었다. 반복해서 읽어본 뒤에 구조를 참조하여 글을 쓰니 그제야 메일이 써지기 시작했다.
세심하게 문장을 다듬고 또 다듬은 후 ’이번에는 인연이 닿지 않아 아쉽게도...‘ 같은 관용구가 아니라 탈락하게 된 구체적 사유를 추가로 덧붙여서 겨우겨우 마무리를 지을 수 있었다. 메일을 전송하고 시계를 보니 몇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긴 한숨을 내쉬며 과거 나에게 탈락 메일을 써 주었던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그 당시 삐뚤어진 마음으로 가식적인 메일이라고 얄미워했던 내 태도를 진지하게 반성했다. 그 분들이 보내준 탈락 메일이 없었더라면 나는 분명 탈락 메일을 못 쓰거나 혹은 제대로 써내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탈락 메일에 쿠션을 두텁게 대어 어떻게든 상처를 덜 주는 글을 쓰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최선을 다했다고 해서 메일을 받은 분이 덜 상처받게 되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탈락 통보를 기분좋게 할 수 있는 방법 같은건 없다. 애초에 삶은 누군가에게 상처주는 일을 피하지 못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사회의 정글로 뛰어 든 이상 누군가를 상처입힐 각오 정도는 해두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상대방이 조금이라도 덜 상처 받을 수 있도록 고민한 시간이 무의미하다고는 생각하진 않는다.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린 시간들은 세상 어딘가에 차곡차곡 적립되어 결국 누군가의 마음을 이롭게 만드는 일에 쓰이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어쩌면 내 메일을 받은 분이 10년 뒤에 탈락을 통보하게 될 일이 생겼을 때 내 메일을 열어서 참고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