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에 뜬 별

by 홍환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얘기지만 우리나라 대부분의 게임 회사들이 판교라는 이름의 도시에 위치하고 있다. 길을 한 블럭 건널 때마다 게임 회사가 나오고 어떤 빌딩에는 게임 회사가 너다섯 곳이나 입주하고 있거나 아예 빌딩 하나가 통채로 게임 회사인 곳도 있을 정도로 정말 많이 모여있다.


지금은 다른 지역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나도 판교에 있는 게임회사에 다녔던 적이 있다. 나에게 있어서 판교는 정말 기묘한 인상을 풍기는 곳이었다. 아침, 점심, 저녁에는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은데 집중 근무 시간대라 추정되는 4~5시 쯤에 나와보면 유령도시인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인적이 드물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고층 빌딩 숲처럼 만들어진 곳이라 건물 밖으로 나와도 이상하게 밖으로 나온 환기감이 들지 않는다. 분명 도시 이곳저곳에 휴게공간이 조성되어 있지만 일하다 잠시 한 숨 돌리러 건물 밖으로 나와도 회사 건물 안 휴게실에 있는 것 같은 기묘한 느낌이 든다.


판교에서 근무하던 시절 그 도시 전체가 사무실 처럼 느껴지는 감각을 썩 좋아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먹고 살아야 하고 나름의 자아실현도 해야했기에 열심히 회사를 다녔다.


판교에서의 직장 생활에서도 여느 곳들과 다름없이 몇 번인가 상처 받는 일이 있었고, 몇 번인가 보람있는 일이 있었고, 어쩔 수 없이 몇 개의 적대적인 인간관계를 만들고, 그리고 너무 좋아하는 분들을 만났다.


그러다가 이직을 하면서 판교를 떠났다가 개인적인 일로 몇 년 만에 다시 판교를 찾은 적이 있다. 도시 전체가 사무실인 것 같은 삭막함은 여전했지만 예전과는 다른 부분이 있었다.


이직이 잩은 게임 업계 특성상 아는 분들이 도시 전체에 퍼져 있었다. 한 블럭을 지날 때마다 아는 분이 근무 중인 건물이 나왔다. 아, 이곳에는 큰 도움 주셨던 그 감사한 분이... 아, 반대편에는 대판 싸운 적이 있는 그 분이... 하는 느낌으로 관계의 파편들이 흩어져 있었다.


그 날 개인적인 용무가 끝나고도 그 감각이 어딘가 아련하고 재미있어서 한참 동안 빌딩 숲을 걷다가 돌아왔다. 좋아하는 몇 분께 연락을 해볼까도 싶었지만 업무 중이실텐데 불시에 연락하는 것이 실례일 것 같아서 결국 아무한테도 연락하지 않고 그렇게 걷기만 하다가 돌아왔다. (아무도 만나진 않았지만 모든 분들이 근무하고 있는 건물을 다 지나쳐 오긴 했다.)


그 날의 경험 이후 삭막한 빌딩 숲 같던 판교의 인상이 많이 변했다.


"그래서 이제는 삭막하지 않나요?"하고 묻는다면 1초의 고민도 없이 "아니요. 완전 삭막합니다."라고 대답하겠지만 그 삭막한 숲 하늘에 무수히 많은 인연의 별들이 떠 있다.화창한 낮에는 보이지 않지만 마음을 가라앉히는 밤이 오면 선명하게 반짝이는 별들이 분명하게 떠 있다.


나에게 있어서 판교는 삭막한 빌딩 숲의 도시지만, 그 별들을 보면서 걸으면 때로는 슬프고 때로는 훈훈한 기억들을 떠올리며 인연의 역사를 더듬어 볼 수 있는 애틋한 별의 도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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