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의 작의 사치
가난에 시달리던 20대 초반 무렵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1년간 했던 적이 있다.
편의점에서는 다양한 식품을 팔았었는데 그중에서도 하겐다즈 작은 컵은 일을 시작하고 나서 유독 눈에 띄었다.
손바닥의 절반밖에 안 되는 그 조그만 아이스크림 하나가 4천 원이 넘는다는 사실이 엄청나게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그렇게나 비싸고 작은 아이스크림이 꾸준히 계속 판매된다는 사실이었다. 왠지 어딘가 지쳐 보이는 어른들이 꾸준히 사 갔다.
도대체 어떤 맛이길래 하는 호기심에 한 번 사 먹어 보려는 생각도 했지만 역시 현재 내 재정 상태에서 저런 걸 사 먹는 건 과도한 사치에 과소비라는 생각이 들어 결국 아르바이트를 그만둘 때까지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다.
그 후 5-6년의 세월이 지나 가혹한 취준생의 터널을 뚫고 간신히 회사원이 되었다.
하지만 사회라는 정글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몇 배는 더 혹독했다.야근에 주말 출근을 밥 먹듯이 하며 모든 열정과 시간을 갈아 넣었건만회사의 재정 상태가 기울어져 월급이 밀리기 시작했다.그래도 언젠가 밀린 월급을 다 받을 수 있겠지 하는 순진한 생각으로 계속 다니다가 월세를 내기 어려울 정도까지 몰려서야 겨우겨우 퇴사를 할 수 있었다.
얼마 되지도 않는 짐을 챙겨 넣은 가방을 매고 마지막 퇴근을 하는 길에 갑자기 비가 내렸다. 우산이 없었던 나는 근처에 보이는 건물 입구로 헐레벌떡 뛰어가 비를 피했다. 그렇게 언제 그칠지 모를 비를 바라보고 있으니 내 신세가 처량하게 느껴졌다.
월급은 세 달이나 밀려 통장 잔고는 거의 비어있었고 신입직도 경력직도 아닌 이 애매한 경력으로 과연 다른 회사에 취직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몰려왔다. 당장 요번 달 월세부터가 걱정이었다. 눈앞이 깜깜해졌다. 마음이 모두 소진되어 도저히 밝은 미래를 떠올릴 수가 없었다.
그때 비를 피하고 있던 건물 안의 편의점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하겐다즈가 생각났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그만둔 지 6년이나 지났는데 나는 아직도 하겐다즈를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상태였다. 6년간 단 한 순간도 열심히 일하지 않은 적이 없건만 아직도 하겐다즈를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몹시도 억울했다.
그래서 우발적으로 편의점으로 들어가 하겐다즈 작은 컵 하나를 샀다. 하겐다즈는 여전히 너무나도 작고
결제하는 손이 덜덜 떨릴 정도로 비쌌다. 거의 한 끼 식사 가격과 맞먹는구나 하는 생각에 조금 후회가 되었다.
하지만 하겐다즈를 한 스푼 떠서 입에 넣는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다.
너무 맛있었다.
진한 우유의 풍미에 깊은 단맛이 그윽하게 혀 위로 퍼져 나갔다. 살아오며 이런저런 아이스크림을 많이도 먹어 봤지만 이건 확실히 달랐다. 같은 아이스크림이라고 부르면 실례가 아닌가 하는생각이 들 정도로 고급스러운 맛이었다.
맛에 홀린 채 순식간에 한 컵을 다 비운 후 숨을 크게 내쉬니 그제야 정신이 돌아왔다. 하겐다즈를 먹기 전보다 훨씬 더 기분이 좋고 머리도 맑아진 느낌이었다. 온몸에 긍정의 기운이 감돌았다. 저절로 이번 회사에서 했던 업무들을 어떻게 정리해서 어떻게 입사 지원을 할지 하는 로드맵이 세워졌다. 혈당치가 갑자기 올라가서 생긴 일시적 현상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그 감정 상승의 폭이 너무나도 컸다.
그 뒤 시간이 흘러 흘러 나는 어느새 1n년 차 직장인이 되고 하겐다즈 작은 컵은 4,900원이 되었다.
그때의 경험이 강하게 각인된 탓인지 요즘도 가끔 울적한 일이 생겨서 기분이 처질 때마다 하겐다즈를 사 먹곤 한다. 강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어쨌든 먹고 나면 먹기 전보다 확실하게 기분이 좋아진다.
여전히 하겐다즈는 비싸다.
저렇게 작은 컵을 4,900원 주고 사 먹는 것은 과소비에 사치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가만히 다시 생각해보면 아주 높은 확률로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는 조건으로 4,900원을 지불하는 것이면 그렇게 비싼 가격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마약이 아닌 이상 이렇게 극적인 효과를 볼 수 있는 식품은 거의 없다. 기분이 울적한 날 하겐다즈를 사 먹는 것은 가성비가 최고로 뛰어난 사치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