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려서부터 워낙 겁 많고 약하고 쉽게 도망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삶의 고난이 닥치는 매 순간마다 잠깐이라도 눈앞의 문제를 회피할 수 있는 도피처가 필요했다. 어떨 때는 게임이, 어떨 때는 만화가, 어떨 때는 소설이나 영화들이 그런 도피처가 되어 주었다. 이 도피처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이야기가 있다는 점이다.
거의 모든 이야기는 어떤 인물이 겪는 사건에 대한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어떻게 씻고 뭘 먹고 하는 현실 사건이 아니라 그 인물이 살면서 겪게 될 일 중 가장 위험하고 중대하고 결정적인 이야기적 사건을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는 필연적으로 어떤 인물의 삶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형태가 된다. 나에게 있어서 이야기란 ‘이 사람은 이렇게 살았다’ 하고 보여주거나 들려주는 매체이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까지 삶이 너무 힘들고 벅찰 때마다 이야기로 도피했다는 것은 ‘이 사람은 이렇게 살았다더라’를 보러 간 셈이다.
내 삶이 힘들 때마다 다른 이들의 삶을 엿보러 간 본능적인 행도의 동기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호기심과 발견 때문인 듯하다. 나와 이렇게나 다른 환경에서 이렇게나 다른 인물이 이렇게나 다른 사건을 겪는 걸 보는 것이 무척 흥미롭고, 그렇게나 다름에도 불구하고 깊이 이입할 수밖에 없는 데에서 삶의 궁극적인 근간이나 기본 작동원리는 똑같구나 하는 위안을 얻는다.
그 과정이 주는 즐거움에 빠져 한바탕 이야기 도피 타임을 가지고 현실로 돌아오면 시리도록 냉정한 나의 삶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이야기로 도피하기 전보다는 훨씬 더 삶을 겪어낼 의욕이 충전된 상태다.
어쩌면 이야기를 즐기는 행위가 삶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떤 목적이나 결과에 의한 것이 아니라 삶에 지치고 질려버렸을 때조차도 또 다른 삶을 찾아보려는 행위 자체가 삶을 직시하는 눈을 감지 않기 위한 본능적인 노력 일지도 모른다.
가끔 삶을 감당해 내기가 너무 벅차서 이야기가 간절히 필요한 밤이 있다. 지금까지 그런 밤을 수없이 많이 건너왔고 앞으로도 수없이 많이 건너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