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핑은 장비빨

보드 바꾼 서린이, 눈이 번쩍!

by 담다리담

나로 말하자면 초보 서퍼 N년차다.

눈으로 귀로 보고 들은 건 많지만 막상 부릴 줄 아는 재주는 없는 그저 그런 초보다. 그런데 그런 초보일수록 장비빨을 챙기는 경향이 있다는 걸 알만한 분은 아실거다. 당연히 나도 그 중 하나. 비싼 돈 주고 사서 애지중지하던 첫보드가 어느날 갑자기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 실력이 늘지 않는 건 어쩌면 보드탓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처음으로 보드를 빌려타보았다.


그런데... 이렇게 큰 변화가 있을 줄이야..

이 날 금요일(휴가를 쓴 직장인!) 의 파도는 바람이 세서 아주 꿀렁꿀렁했다. 이렇게 바람이 세면 보통 잔 물결이 일고 파도에 힘이 빠져서 잡기가 어렵고 파도길이 잘 안난다. 때문에 평소라면 거의 한 시간에 하나도 못 잡아 타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금요일엔 그 파도에서도 파도가 그럭저럭 잘 잡히는 거다!! 평소라면 못 눌러탔을 것 같은 파도에서도 파도가 잡히는 거다! 사실은 파도가 보기만 이렇지 잘 잡히는 파도인건가? 라고 생각하며 아주 재밌게 타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다음 날 두둥.. 진짜 전날 너무 패들 많이 해서 힘들어서 딱 한 시간만 타야지 하고 들어갔다. 그런데 웬걸.. 진짜 힘들어죽겠는데 파도가 잡혀서 어쩔 수 없이 타는 경험을 했다. 이럴수가. 진짜 잡는 족족 잡히는 거다. 내 인생에 이런 적은 없었다. 패들만 하면 삭삭 잡히는 파도가 너무너무 기분이 좋았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파도로 헥헥거리면서 돌아갔다.


아침 7시 입수했는데 정신차리니 11시.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과자 몇 개 집어넣고 몇 시간 더 탔다. 사람들이 왜 밥도 안 먹고 서핑하는 지 나는 오늘 처음 알았다. 이것이야말로 중독이다..! 글 쓰는 지금도 양양 가고 싶은 맘에 들썩들썩인다.


그 날의 파도는 딱 나 같은 초보가 라이딩 연습하기 좋은 파도였다. 언제 또 올지 모르니 정신 못차리고 탔다. 파란 햇살 아래 바람도 안 불고 새로 산 수트도 너무 가볍고 물도 얕아서 발고 닿고.. 파도 만만하고.. 모든 박자가 이렇게 잘 맞을 수가 없었다.


보드 하나 바꾸었을 뿐인데 이렇게 내 모든 서핑 경험이 바뀐다고?? 보드를 팔아버리려고 보니 기존에 내 보드가 나에게 너무 짧은 것이었다. 보드가 짧으면 초보들은 파도 잡기가 훨씬 힘들다고 한다. 과거의 초밥서퍼(=나)는 그저 들고다니기 편하다는 생각으로 9.0피트를 샀었다. 그런데 롱보드를 타려 보니 나에게 맞는 보드는 최소 9.2였다. 지금 나에게 잘맞은 이 새로운 롱보드는 9.4였다.


보드는 잘못이 없었다. 그저 너무 짧은 걸 샀었을 뿐. 그렇지만 거의 2년의 세월이 너무너무 아까웠다. 홧김에 그 날 당장 보드를 팔아버렸다. 올린 지 한 시간도 안 돼 팔렸는데 막상 팔고 나니까 헐값에 팔아서 후회가 됐다. 나의 마음이란 나도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새 보드를 사서 너무 기쁘다! 당장 다음주도 가고 싶어서 마음이 드릉드릉한다. 서핑인생 phase2가 열린 느낌이랄까. 이전에 못 탔던 만큼 새보드로 더 많이 타야지!! 신난다!!

새보드 들고 바다로 가는 나
거의 2년을 함께했던 내 보드, 안녕!!
동호해변에 만난 귀여운 강쥐.. 내 손을 잡고 안 놓아줬다. 사람아닐까?
완벽한 날씨와 완벽한 강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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