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플백 30일]매일 현대미술 감상하기 20일차
2020년 가을, 카카오플백의 30일 프로젝트 '매일 현대미술 감상하기' 매니저로 참여하면서 '오늘의 주제'로 소개한 작품, 작가, 이야기들.
오늘은 미술품 구매에 대한 기본 정보들을 풀어보겠습니다. 전문가가 아닌 순전히 개인적인 의견과 정보라는 것을 유의해주세요!
첫 작품 구매는 무명이어도, 일단 사보는 경험이 중요!
첫 번째 작품 구매가 가장 어렵죠? 첫 번째 작품은 뭐가 되었든, 구매했다는 것만으로도 큰 기쁨이 됩니다. 내 마음에 끌리는 작품을 ‘그냥’ 사세요. 제가 처음 구매한 작품은 영국 플리마켓에서 무명 아티스트가 핀홀 카메라로 찍은 사진 작품입니다. 10만원-15만원 가량 했는데, 한국에 와 액자를 맞춰 놓으니 분위기가 있더라고요. 오랫동안 회사 책상 위에 올려두었습니다.
잡동사니 플리마켓이 별로라면, 을지 아트페어 같은 행사도 첫 구매처로는 유용합니다. 런던에는 어포더블 아트페어(Affordable Art Fair)라는 행사가 매년 5월에 열리는데요. 올해는 코로나 때문인지 온라인으로 열렸네요. ‘어포더블’ 단어 뜻 그대로 '대중이 취향에 따라 쉽게 구매할 수 있는 가격 수준입니다. 우리나라 돈으로 50만원에서 최고 1천만원의 작품만을 판매하는 장터에요.(1천만원 이상 작품은 판매 금지)
모든 작품에 가격대가 표시되고 구매 후에는 바로 집으로 가져갈 수 있도록 현장에서 작품을 포장해줍니다. 런던에서 시작했지만 전세계 도시 곳곳에서 열리고 있고, 2015년, 2016년 한국 DDP에서도 어포더블 아트페어가 열린 적이 있습니다.
이런 장소는 작품 선택부터 구매까지 매우 편리하지만, 알려진 작가의 작품을 만난다거나 선호하는 작가를 선택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어요.
구매의 첫 걸음, 호감가는 작가 이름 외우기
크고 작은 전시를 다니다 보면 차츰 눈에 익은 작가들이 생기게 됩니다. 보통 국립현대미술관이나 서울시립미술관 같은 지자체와 정부에서 지원하는 대형 미술관에서는 그룹전, 또는 젊은 작가전을 매년 열어요. 여러 작가들의 작품이 함께 전시되는데, 이 때 눈에 들어오는 작품은 작가의 이름을 외워두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미술 전시와 관련된 소식을 전하는 소셜 계정들도 몇 개 팔로우 하시고요. 신진 작가들의 개인전은 주로 작은 갤러리에서 열리곤 합니다. 호감가는 작가의 개인전이 열린다면 그 갤러리를 방문해보시는 게 중요합니다.
갤러리는 대체 무슨 일을 하는 거지?
갤러리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좋은 작가를 발굴하고 또 작품 활동이 꾸준히 이어지도록 지원하는 일입니다. 대표적인 일이 홍보, 후원, 판매죠.
해외에서 작품을 대관하는 기획 전시가 아닌 다음에야 대부분의 작은 갤러리들이 별도의 전시 입장료를 받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미술 애호가들이 전시장을 찾아 작품을 보고, 구매나 후원으로까지 이어지는 건 작가와 갤러리 모두에게 좋은 일인데요. 갤러리 대표 작가의 명성이 곧 갤러리의 명성이기 때문입니다.
갤러리에서 구매하기
갤러리에 가더라도 작품의 제목과 연도는 적혀 있지만, 가격은 없잖아요. 저도 눈여겨 본 작가의 개인전에 갔지만 구매는 엄두가 나지 않더라고요. 갤러리에는 보통 데스크에 ‘프라이스 리스트*’를 갖고 있기 마련입니다. 직원에게 물어보면 된다지만, 저 역시 소심해서 한번도 직접 물은 적은 없습니다.
다만 관심있는 작품을 기억해두었다가 갤러리에 전화를 걸어 물어본 적은 있습니다. 구매 가능한지, 가격은 얼마인지요. 예상보다 친절하게 바로 답변해줍니다.
+
프라이스 리스트(아래 사진 참고)를 받을 경우, 이 리스트에는 종종 스티커가 붙어있곤 하는데요. 빨간 스티커는 '이미 작품이 판매되었다'는 뜻이고, 파란색 스티커는 누군가가 '작품 구매를 고려하고 있다(Hold)'는 의미입니다. 마켓이나 갤러리에 같은 의미로 액자 옆 스티커가 붙여 있기도 합니다.
참고로 'PoR' 혹은 'PoA'라고 쓰여져 있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각각 'Price on Request', 'Price on Application'이라는 뜻이다. 구매 의사가 있으면 가격을 문의해 달라는 뜻이에요.
갤러리와 부동산중개소는 개념적으로 비슷합니다.
작품보다 작가 이름을 외워두라고 했는데요. 작가가 같아도 작품에 따라, 갤러리에 따라 호당 가격 시세가 달라집니다. 호당 가격은 평당 단가(?) 같은 것인데요. 1호짜리 엽서 사이즈를 기준으로 매긴 가격입니다. 그림 크기가 커지면 가격이 비싸진다는 뜻이기도 한데, 호당 가격이 높을 수록 비싼 작가라는 인식이 있어요.
또 한 가지 알아둬야 할 것은, 미술작품은 정찰제가 아닙니다. 갤러리마다 크게는 20%까지 차이가 나요. 그래서 직접 작품을 보고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도 갤러리마다 발품을 팔며 정보를 수집하는 게 좋습니다. (경매와 갤러리 가격은 또 다르죠)
제 지인의 미술품 구매 첫 작품은 2호짜리 유화였는데요. 원래 좋아하는 작가였고, 색감이 마음에 들어서 갤러리에 전화로 문의했다고 합니다. 보통 작품 가격의 50%는 갤러리, 50%는 작가에게 돌아갑니다. 가격대가 억대 이상으로 갈 경우에는 수수료가 작가와 협의하여 조금씩 조정된다고 하네요.
절반이나 갤러리에 수수료를 낸다는 것이 의아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죠. 하지만 갤러리 입장에서는 신진 작가를 발굴하고, 작품을 대신 보관하는 것은 물론 홍보를 위해 전시나 이벤트 등을 기획하고 주요 컬렉터들에게는 술과 음식을 대접하기도 합니다. 또 작품에 어울리는 액자 유형을 정해 제작하고 컬렉터에게 필요한 경우 작가를 인사시키거나 서명도 받아주는 등의 서비스를 대행합니다.
한 갤러리에서 두 작품 이상을 구매하면 이후에는 큐레이터가 종종 작품을 소개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갤러리 수수료를 할인해주기도 하고요. 저는 회화나 판화 작품을 구매하는데, 액자 형태가 보관에 가장 편리한 이유도 있습니다. 기분에 따라 한 작품씩 걸어두고 나머지는 포장해 두고 있습니다. 작품 구매가 꾸준히 이어지기 위해서는, 매일 보면서 즐기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작품 구매시 세금은?
예술품으로 분류되는 그림, 판화 및 조각 등에는 관세뿐 아니라 부가가치세도 부과되지 않습니다. 이는 미국, EU, 일본 등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관세가 부과되지 않는다고 수입 신고가 생략되는 것은 아니므로 해외 갤러리에서 구매할 경우에는 신고서 작성을 반드시 하셔야 합니다.
또, 비록 예술가가 디자인하였거나 창작하였다 하더라도 상업적 성격을 띤 대량 생산 작품은 오리지널 예술품으로 분류하지 않습니다. 즉, 상업적 성격을 갖춰 다량으로 만들어진 도자기인 경우 예술품이 아닌 도자재의 제품으로 분류되어 관세 8%가 부과된다는 점도 알아두세요.
어떤 작품을 구매해야 할까? (이건 순전히 개인적인 의견이니 참고만 하세요.)
물론 내 눈에 좋은 작품이 최고입니다. 앞서 말한대로 작품을 집에 두고 보면서 만족감이 들어야만 꾸준히 작품 구매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서도 어떤 작품이 더 가치있는가를 묻는다면 제가 생각하는 기준은 대략 아래 정도입니다.
작품성. 최고의 딜러이자 갤러리스트인 제프리 다이치는 “본인이 이해할 수 없는 작품을 사라”고 한 다큐에서 조언한 적이 있어요. 보자 마자 누구나 쉽게 아름답다고 느끼는 작품들은 가치가 높지 않다고 말합니다. 볼 때 마다 작품의 느낌이 달라지고, 보는 사람마다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야말로 소장 가치가 가장 높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희소성. 디자인 면에서 유용해 보이는 작품들은 광고나 아트 상품으로 소진되는 경우도 많아요. 대중적인 노출이 많아지면 금방 피로해지고, 사람들은 그 작품의 스타일을 지루하게 느끼게 됩니다. 그런 작품들은 원작을 갖고 있어도 가치가 더이상 올라가지는 않아요.
안정성. 작가 활동을 계속하는 작가의 작품을 구매하세요. 젊은 작가들은 작가로 데뷔를 하더라도 어떤 이유에서든 작가 활동을 중단하는 경우가 있어요. 저 같은 월급쟁이들은 신진 작가의 작품을 살 가능성이 높은데요. 중견 작가 이상으로 꾸준히 활동해야 작품 세계가 완성되거나 알려질 가능성이 높고, 그래야만 초기의 작품들도 조명을 받을 수 있습니다. 즉, 가치가 높아질 가능성이 생기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