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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연주 Aug 29. 2021

카라 워커의 설탕

[카카오플백 30일]매일 현대미술 감상하기 5일차

2020년 가을, 카카오플백의 30일 프로젝트 '매일 현대미술 감상하기' 매니저로 참여하면서 '오늘의 주제'로 소개한 작품, 작가, 이야기들. 


오늘은 ‘어떤 이야기는 왜 더 알려지지 않는가’에 대한 예술가의 질문입니다.  


브루클린 강변에는 도미노 슈가라는 오래된 설탕 창고이자 공장이 있는데요. 캐리비안해 인근에서 모아진 설탕의 원재료인 원당이 이곳에서 정제되고 포장되었다고 합니다. 미국 작가인 카라 워커(Kara Walker)는 운영 중단을 앞둔 이 설탕 창고에 ‘Subtlety’라는 타이틀의 전시를 엽니다.  



'Subtlety'라는 단어는 설탕이 수입품으로 고가이던 시절 백인 부자들이 부를 과시하기 위해 테이블에 올려두던 설탕 조각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물론 지금은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설탕이 되었죠. 당시에나 지금이나 설탕이 널리 보급된 데는 서양의 기술과 자본, 원주민과 아동의 값싼 노동력이 결합되었기 때문인데요. 


카라 워커는 특히 원주민과 아동 노동 착취에 대한 문제 의식을 설탕을 이용해 설탕 창고에서 본인의 방식으로 시각화했습니다. 전시장의 모든 작품은 설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설탕 아기(Sugar Baby)’는 설탕으로 조각을 만들고 거기에 설탕을 추출하고 남은 담황색의 액체를 부어 제작되었는데요. 마치 사탕수수 재배지에서 노동하는 7, 8살 흑인 아이의 실물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아직도 많은 농장에서 10대 전후의 아이들이 하루 9시간 노동에 시달리며 사탕수수를 추수한다고 합니다. 


이 작품은 전시 기간동안 재료의 특성 때문에 녹아 내리며 차츰 무너지게 되는데요. 마치 검은 피를 흘리고 얼굴이나 손이 뭉개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 전시의 메인 작품은 ‘A Subtlety 또는 웅장한 설탕 아기(the Marvelous Sugar Baby)’라는 타이틀의 10.5m 설탕 조각인데요. 작가의 얼굴을 닮은 흑인 여성이 두 팔을 앞으로 내밀고 있는 자세가 마치 스핑크스를 연상시킵니다. 이집트의 스핑크스는 당시 수많은 노예와 포로들에 의해 만들어진 조형물이잖아요. 

 


이 대형 조각 주변에 함께 설치된 다양한 ‘설탕 아기’들을 함께 보고 있노라면 밭에서부터 세계의 부엌으로 운반되어 온 설탕의 이면에 있는 어두운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또 설탕의 달콤함은 사탕수수뿐 아니라 커피 재배지와 카카오(초콜릿) 농장도 연상시키죠. 작가는 공간, 시각, 후각을 모두 자극하면서 소외된 사람들의 어려운 이야기를 폭로합니다.  



전시를 마친 후 이 공장은 문을 닫았습니다.   



카라워커의 인스타그램 채널에서 더 많은 작품을 보실 수 있어요. 

https://www.instagram.com/kara_walker_offi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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