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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비와 고인물

by 또랭


얼마 전 운동을 시작했다. 저마다 ‘갓생’을 살고, ’오운완‘을 증명하는 시대에 살면서도 끝끝내 모른 척했던 것이 운동이었는데, 마흔이라는 나이 앞에서 결국 항복하고야 말았다. 사실 이것이 첫 도전은 아니었다. 20대 때, 나의 새해 이벤트는 헬스장 등록이었다. 물론 그 끝은 내내 코빼기도 안 비치다가 등록 기간이 끝날 때쯤 수줍게 등장해 락커에서 운동화를 빼가는 것의 반복이었지만 말이다. “헬스는 처음이세요?”라는 건장한 트레이너의 말에 “아.. 뭐.. 처음은 아닌데…”라고 이도 저도 아닌 대답을 하자, 트레이너는 ‘또 그런 유형이군’이란 눈빛으로 나를 쓱 바라보았다.


그렇게 헬스장 등록 첫날, 그동안의 기억을 떠올려 보니, 항상 첫날은 의욕만 넘쳐 오버하다가 다음 날, 몸살을 핑계로 운동을 안 가는 패턴이 반복되었음을 깨달았다. 첫날은 무조건 가볍게, 맛보기만 하고 오자고 다짐하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리모델링 후 새롭게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곳이라, 나처럼 눈치만 슬슬 보는 사람들이 꽤나 많았다. 나 역시 쭈뼛대다가 몸 푸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은 한 어머님 옆에 슬쩍 가서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그동안 어디서 주워들은 각종 스트레칭 자세를 떠올리며 일단 몸을 비비적거렸는데, 몸이 제대로 풀린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스트레칭을 마치고 뭘 해야 하나 두리번거리다가 눈앞에 보이는 러닝 머신부터 뛰어보기로 했다. 그나마 안면이 있는 기구라고는 그것밖에 없었다. 몇 번 삐그덕거리긴 했으나 별일 없이 30분 걷기는 성공하였다. 이제 집엘 갈까 하다가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슬쩍 봐둔 팔 운동 기구 앞에 섰다. 대충 모양 맞춰 손을 끼우고는 앞으로 팔을 모았다. 원래 걸려있던 추 두 개는 자존심상 그대로 두었다. 팔이 달달 떨리는 거 보니 팔 어딘가가 운동이 되고 있는 것 같긴 했다. 앞에 P.T 교육을 하고 있던 트레이너 선생님의 시선이 느껴졌다. ‘아이고, 저거 저렇게 하는 거 아닌데.’라는 눈빛이라도 보내는 것 같아 애써 못 본 척했다. 그래도 그 와중에 12개씩 3세트를 마치고 내려왔다.


그렇게 나는 헬린이가 되었다. 유튜브를 보며 운동기구 사용법을 익히기도 했지만, 문제는 우리 헬스장에 그 운동 기구가 어디 있는지, 이게, 그게 맞는지 확신이 없었다. 그렇게 나의 헬스장 입문기는 말 그대로 엉망진창이었다. 사실 나는 이런 엉망진창의 과도기를 잘 버티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실수하고 부족한 내 모습을 보이는 것이 창피하기도 하고, 결과가 바로바로 나오지 않으면 금방 절망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이제 제법 그 어설프고 어색한 시간들을 잘 견뎌낸다. ‘뉴비’의 마인드를 장착하게 된 것이다.


처음은 원래, 엉망진창이다. 어설프고 어색한 것이 당연하다. 그동안 나를 괴롭힌 생각은 ‘할 거면 이 정도는 돼야지.’, ‘이 정도가 아니면 안 하는 게 낫지.’였다. ‘뉴비’지만 ‘고인물’처럼 되고 싶다는 ‘추구미’만 컸던 것이다. 하지만 ‘뉴비’와 ‘고인물‘의 갭은 오로지 시간과 노력으로만 채워진다. 어쩌면 그 수많은 시간과 노력들을 건너뛰고 그들과 같은 결과만을 원하는 것은 제법 날강도 같은 마인드일지 모른다. 나는 겸허히 고인물들이 지나온 시간과 노력을 존경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 역시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그들의 세계로 나아가기로 했다. 그게 무엇이든, 나는 점점 그들을 닮아갈 것이다. 그 하나의 믿음만 있으면 ‘뉴비’가 되는 것이 조금은 쉬워진다.


‘구리게 하자. 무조건 거지같이 해야지.’ 이것이 내가 무언가를 시작할 때 처음 다짐하는 말들이다. 자기 비하는 아니고, 저 정도로 이야기해놓으면 확실히 시작의 무게를 줄일 수 있다. 구리게 하는 건 뭐, 자신 있으니까. 애초에 시작이라는 건 ‘잘하는 것‘보다 ’그냥 한다‘에 의미가 있다. 나는 그렇게 자꾸 쪼그라들려는 시작을 억지로라도 힘주어 펴고 또 편다.


헬스를 시작한 지 한 달. 부끄러워서 매번 도망가기 바빴는데 처음으로 헬스장 샤워실을 사용해 봤다. 제법 헬스인다운데? 싶어 내심 뿌듯했다. 그렇게 나는 또 새로운 고인물이 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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