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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발작 버튼 찾기

by 또랭

얼마 전 동생과 술 한잔을 걸치며 이야기를 나눴다. 언제나 빠지지 않고 나오는 ‘나의 극심했던 사춘기 이야기’가 이번에도 나왔다. 동생은 늘 부모님과 대립하는 나를 보며 중간에 껴서 얼마나 마음이 아슬아슬했는지에 대해 237번째 이야기하는 중이었다. 이제는 나도 제법 여유가 생겼는지 웃으면서 ‘그래 네가 고생이 많았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런데 부모님의 입장을 대변해 이야기하던 동생이 스치듯 한 말, “근데 언니도 그때 좀 끈기가 없었어. 그러니까 엄마 아빠도 화가 나지.”라는 말에 나는 그야말로 눈이 뒤집힐 것 같았다. 여유롭게 웃던 모습은 어디 가고, ‘끈기가 없었다고? 그게 끈기만으로 되는 일 같아? 그때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그만큼 하는 것도 난 죽을 만큼 힘들었다고!!’라고 킹콩처럼 부르짖고 싶었다. 가까스로 참고 ‘그건 그렇게 쉽게 말할 문제가 아니야.’라고 마무리했지만, 그 욱하고 올라오던 감정이 또 생경해 나는 며칠 동안 이 감정에 대해 생각했다.


그건 그동안 내가 찾지 못했던 ‘마음의 발작 버튼’이었다. 즉, 아직 해결하지 못한 나의 마음이었다. ‘발작 버튼’을 찾는 방법은 간단하다. 발작 버튼이 되는 단어나 주제를 듣거나 이야기하게 되면 눈물이 줄줄 난다. 내가 왜 우는지 모르겠는데도 눈물이 펑펑 쏟아진다. 그게 아니면 분노한다. 내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줄줄이 대며 변명한다. 며칠이고 그 말에 분이 풀리지 않는다. 나에겐 옛날에 ‘부모님’이 그러한 단어였다. 왜인지 나는 친구들과 부모님 이야기를 하면 억울함에 눈물이 줄줄 나왔다. 남들은 부모님의 사랑, 희생에 감사해서 눈물이 났다면 나는 보다 복잡한 감정에 눈물이 쏟아졌다. 엉켜져 있는 감정들이 해결되지 못한 채, 파블로프의 개처럼 ’ 가족‘, ‘부모님’ 이런 단어를 들으면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쏟아져 나왔던 것이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감정의 실타래를 잘 풀고 나니 더 이상 나는 ’ 가족 이야기‘에 눈물을 흘리지 않게 됐다. 내가 가장 크고도, 아픈 ‘발작 버튼’을 없앤 순간이었다.


‘성실’ ‘끈기’는 내가 아직 발견하지 못했던 버튼이었다. 생각해 보면 ‘오래동안 공부했지만 시험에 실패한 자‘에게 ’성실‘과 ’끈기’는 옷 속에 들어있는 바늘 같은 단어이다. 있는 지 몰랐는데 이리저리 뒹굴다 보면 한 번씩 깊게 찔리는 치명적인 단어. 그래서 나는 동생의 그 말에 폐부를 깊숙이 찔렸나 보다. 다행히 나는 그 치료의 단계가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해 주고 돌봐주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 감정을 모르는 것이 가장 힘든 것이지, 알고 나면 충분히 치료가 가능하다.


대화를 하다 보면 나는 다른 사람의 ‘발작 버튼’을 발견하는 순간도 생긴다. 누군가에게는 그게 ‘학력’이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전업 주부’였다. 꽤나 발작을 많이 해본 사람으로서 나는 그들의 발작 버튼을 통해 그들의 깊은 슬픔을 만나기도 한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듯이 풀지 못한 감정의 실타래를 발견하는 일은 어찌 보면 그것을 풀 수 있는 기회이다. 그러니 혹시나 나에게 그 버튼을 발견한다면 기뻐하며 그 감정을 많이 돌봐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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