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이란 말이 무서울 때가 있었다. ’목표를 크게 세워 도전하라‘라는 말이 ‘물구나무를 서서 줄넘기를 하라(?)‘와 같이 무시무시하게 느껴지던 때였다. 그것은 마치 아무리 손을 뻗고 점프를 해도 저건 절대 닿을 리 없겠다는 확신이 드는 어렸을 적 ’구름다리‘ 같은 느낌이었다. 아니, 정말 하늘 위를 떠다니는 ‘구름‘같았을지도. 말 그대로 내 손에 절대 닿지 않는 허무한 단어들이었다. 그런데 무서운 건 이렇게 허무함이 강해질수록 자기 불신 역시 배로 세진다는 것이다. ‘내가 그걸 할 수 있을까?’, ‘이건 아무리 열심히 해도 못 해.’ ‘이미 저들과 나는 출발부터가 다른 걸.‘ 핑계란 건 찾기 시작하면 얼마든지 수백 개를 찾을 수 있는 요술 주머니 같은 것이다. 할 수 있는 이유보다 할 수 없는 이유가 많아지면 사람은 더 이상 무언가를 시도조차 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도전하지 않고 그저 안전한 곳에 머물기만 하면 행복할까? 매일 부모님 집에 얹혀살며, 늦잠 자고 일어나 오늘의 일용할 양식을 한 끼 먹고, 좋아하는 숏폼 영상을 몇 시간 보는 것만으로도 인생이 행복할 수 있을까? 불행하게도 인간은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고통과 권태 사이를 시계추처럼 움직이는‘ 존재이다. 지나친 권태는 절대로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다. 인간은 결국 무언가를 하고 결과를 이뤄내기를 원한다. 타고 태어나길 그렇게 생겨먹었다. 다만 두려움에 잠식되어 인간의 도전 욕구를 억누르고 살뿐이다.
결국 ‘도전’이란 말을 내 손에 닿을 정도로 낮추는 과정이 필요하다. 내가 즐겨 쓰는 방법은 ‘쓰는 단어’를 바꾸는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영향을 끼칠까 싶기도 하지만, 언어는 무의식과 닿아 있다. 만만한 단어들로 바꿔주는 것만으로도 그 무게를 덜어준다.
첫 번째, ‘도전’이란 말 대신 ‘시도’라는 말을 쓰는 것이다. ‘도전‘은 왠지 성공과 실패가 있을 것 같지만, ’시도‘는 그저 한 번 해보는 것이다. ‘그냥 맛만 한 번 보는 거야’라는 말로 스스로를 꼬드기는 마인드가 필요하다. 지레 겁먹지 않고 그저 시도하는 것만으로도 스스로를 칭찬한다. 이런 ‘시도’들이 모여 결국 무언가가 이루어진다.
두 번째, ‘합격’ 대신 ‘통과’라는 말을 쓴다. 말장난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에겐 이 둘에서 느껴지는 언어적 압박감은 엄연히 다르다. ’합격‘이란 말은 ‘시험, 검사, 심사 따위에서 일정한 조건을 갖추어 어떠한 ‘자격’이나 ‘지위’ 따위를 얻음‘을 뜻한다. 반대로 ’불합격‘이란 말은 나에게 저런 조건과, 자격이 없단 뜻이다. 뭔가 머리에 띠하나 두르고 사생결단의 마인드로 이뤄내야 하는 목적지 같은 느낌 아닌가. 그러나 ‘통과’는 ‘어떤 곳이나 때를 거쳐서 지나감‘이란 뜻처럼 목적지보다는 ’경유지‘의 느낌이 강하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또한 확실한 반대말이 없는 것 역시 나는 마음에 든다. 비통과? 불통과? 우리는 통과의 반대말에 익숙하지 않다. 왜냐하면 ‘통과’는 ‘시도’와 어울리는 말이기 때문이다. 여러 번 시도하여 한 번만 ‘통과’하면 된다. 이 ’여러 번‘이란 말이 심리적으로 훨씬 안정감을 준다.
세 번째, 목표를 세울 때는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 세운다. 나는 목표를 세울 때 ‘oo시험에 합격한다’가 아닌 ‘시험 전까지 3번 완독 한다’와 같이 내가 할 수 있는 일로만 목표를 세운다. ‘도전’의 불안은 내가 결정할 수 없는 외부의 요인들로 인해 생긴다. 나는 도전의 ‘결과‘ 역시 내가 결정할 수 없는 외부 요인으로 놓는다. 많은 사람들이 ’결과‘를 나의 노력하에 결정될 수 있는 ’내부 요인‘으로 놓지만, 인생은 그렇게 내 맘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은 계획하고 노력하는 거기까지다. 열심히 해도 잘 안 될 수 있다. 열심히 하지 않았는데 운 좋게 좋은 결과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니 결과는 ’외부 요인‘이 맞다. 나는 그저 내가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다.
이상으로 나의 ‘도전에 대한 두려움 속이기’ 스킬들을 살펴봤다. 누군가는 과거의 나처럼 아직도 ’도전‘이란 말이 너무 멀게만 느껴질지 모르겠다. 그러나 일단 멱살 잡고 끌고 내려와 보면 생각보다 만만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 막연한 두려움을 없애는 것. 일단 멱살을 한 번 잡아보자고 생각하는 것. 일단은 그 용기만 있으면 된다. 그렇게 도전이 만만해질 때, 나는 그 누구보다 많은 것을 해낼 수 있는 사람임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많이 지기를. 부디 용기를 내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