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시절 친했던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네 앞에 여러 가지 맛의 쿠키가 든 상자가 있다고 쳐 봐. 너는 무슨 쿠키부터 먹어? 가장 맛있는 쿠키를 마지막까지 남겨 두고 맛없는 것부터 먹어? 아님 맛있는 거 먼저 먹어?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맛없는 쿠키부터 먹겠다고 대답했다.
맛있는 것은 가장 마지막까지 아껴뒀다 먹어야
더 맛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친구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대답했다.
나는 가장 맛있는 것부터 먹어. 원래 가장 배가 고플 때 음식이 제일 맛있는 법인데 맛없는 걸로 배 채우고 나서 배부를 때 맛있는 쿠키를 먹으면 너무 아깝잖아. 맛있는 건 제일 맛있을 때 먹어야지.
지금껏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던 나는
친구의 그 말에 어안이 벙벙했다.
좋은 건 나중으로 미룰수록 좋다고 배웠는데
굳이 미루지 않고 지금 쟁취하는 방법도 있음을
처음으로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이 질문은 살면서 곱씹어 보는
중요한 질문이 되었다.
인생도 쿠키 상자와 다르지 않아 보였다.
맛있는 쿠키를 지금 먹는 게 좋을까?
아님 남겨두는 것이 좋을까?
남겨 두면 나중에 몰아서 먹는 것은 가능할까?
애초에 맛없는 쿠키를 안 먹는 것은 불가능할까?
근데 그거 수제 쿠킨가?
비싼 건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이 이어졌고
나는 혼자 머릿속으로
쿠키를 먹었다 뱉었다를 반복하며
'쿠키 상자 인생론'을 완성시키기 위해
안 굴러가는 머리를 굴렸다.
맛있는 쿠키를 먼저 먹을 것인지,
나중에 먹을 것인지,
욜로(YOLO)가 맞는지,
근면성실과 절약이 맞는지는
사실 아직 결론 내리지 못했다.
아끼면 똥이 되기도 하고,
덮어놓고 쓰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하기도 하는 것이
인생인데 어찌 감히
어느 한쪽이 맞다고 할 수 있겠는가.
나부터도 소확행이라며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은 쉽게 사지만
반찬 값은 아껴보겠다고 동네 마트 세일할 때
눈에 불을 켜고 전단지를 살펴본다.
글 쓰는 건 밤새우며 할 수 있지만
집안일은 청소 하나 하는 것도 자꾸 미루게 된다.
사람 인생, 그렇게 정 없이 딱 떨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이라는 쿠키 상자에
맛있는 쿠키와 맛없는 쿠키가 함께 들어있는 것은 변함이 없다.
친구가 말한 것처럼
내가 먼저 고를 수 있으면 참 좋겠지만
대부분의 쿠키는 우리에게 랜덤으로 주어진다.
고난과 시련, 인내해야 할 모든 것들은
쏙쏙 뽑아 쓰레기 통에 버려버릴 수 있다면
참으로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런 맛없는 쿠키들도
꼭꼭 씹어 삼켜야만 한다.
그래서 우리가 던져야 하는 질문은
무슨 쿠키를 먼저 먹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모든 쿠키를 즐기면서 먹을 수 있을까'가
되어야 한다.
맛없는 쿠키까지 즐겁게 먹을 수 있다면
어떤 쿠키가 나올지 몰라
불안에 떠는 날들은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찾은 최고의 방법은
상황을 바꿀 수 없으니
상황에 대한 나의 감정을 바꾸는 것이다.
'두려움'과 '호기심'은 한 끗 차이이다.
맛없는 쿠키를 먹는 두려움을
호기심으로만 바꿀 수 있다면
인생은 한층 재밌어진다.
소설 '해리포터'에는 주인공들이 자주 먹는
재밌는 간식이 나온다.
바로 알록달록한 색깔만큼 다양한 맛이 나는
젤리빈들이 그것이다.
원래 아이들이 좋아하는 달콤한 맛도 있지만
코딱지 맛, 구토 맛, 지렁이 맛 같은
돈 주고는 절대 안 사 먹을 맛의
젤리빈들도 함께 들어있다.
뽑기 운이 상당히 필요한 이 젤리빈은
어떤 맛이 나올지 모른다는 점에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든 이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소설에서만 존재하던 이 젤리빈은
많은 사람들의 요구로 실제로도 만들어졌는데
'버터비어'와 함께 해리포터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젤리를 살 때
'지렁이 맛' 젤리밖에 없어
어쩔 수 없이 사는 것과
호기심을 가지고 일부러
'지렁이 맛' 젤리를 사는 것은
천지 차이이다.
인생은 늘 힘들고
억지로 참아내야 할 것들만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고난과 실패 역시 하나의 경험이었다며
웃어넘기고 다음을 준비하는 사람과는
성과를 비롯해 모든 면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젤리빈이든, 쿠키든
드럽게 맛없는 걸 뽑으면 혀만 괴롭지만
인생은 드럽게 힘든 고난을 뽑으면
적어도 마음의 성장과 교훈,
크게는 엄청난 성취와 보상이 기다린다.
이쯤 되면 인생 쿠키는
제법 남는 장사다.
또 하나 다행인 것은
우리의 쿠키 상자가 열려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맛있는 쿠키는 더욱 맛있게,
맛없는 쿠키도 즐겁게 먹는 모습을 보이면
주변에서 자꾸 맛있는 쿠키를 더 넣어준다.
여전히 우리는 쿠키를 랜덤으로 뽑지만
전보다 맛있는 쿠키를 뽑을 확률은 더욱 올라간다.
누군가는 그걸 운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쿠키 먹방을 제대로 하는 나에게 보이는
주변 사람의 신뢰로 보기도 한다.
인생을 제대로 멋지게 살아내는 사람에게
사람들은 더 큰 신뢰와 보상으로
그를 응원한다.
오늘 어떤 쿠키가 나오든
너무 두려움에 떨지 말자.
내가 좋아하는 쿠키라면
충분히 음미하며 즐겁게 먹으면 되고,
싫어하는 쿠키더라도
일단 한번 씹어보자.
의외로 먹고 나면
오랫동안 생각나는 맛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여러 맛을 경험하면
제법 좋아하는 쿠키들이 많아져
어떤 쿠키든 즐기며 먹을 수 있다.
두려움을 호기심으로 바꾸고
일단 주어진 쿠키를
크게 한 입 베어 물어보자.
P.S
오랜만에 다시 만난 친구에게
쿠키 상자 질문은
나에게 매우 심오한 질문이었다고 고백하자,
친구는 그저
엄청 배가 고플 때까지 기다렸다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얘기를 한 건데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냐고
나보다 더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