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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랭 Apr 28. 2023

서랍 예찬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서랍

 이케아에 가 본 적이 있는가?

이케아의 주방 쇼룸을 자세하게 본 사람이라면 우리나라의 주방과 다른 점들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도기로 만든 주방 싱크대, 나무나 대리석으로 만든 싱크대 상판도 눈에 띄지만 내 눈에는 먼저 들어오는 것이 있다. 바로 서랍형으로 된 하부장이다.

 여닫이 형식의 문과 선반형으로 내부가 구성된 우리나라 대부분의 하부장과 달리 외국은 서랍형으로 이뤄진 하부장들이 많다. 나는 이케아에서 그 서랍들을 발견하면 홀린 듯이 달려가 하나하나 모두 열어보기 바쁘다. 특히나 내가 좋아하는 서랍은 주로 가장 아래에 위치한 것인데, 깊이가 훨씬 깊어 큰 냄비도 척척 담기고 그릇들도 많이 쌓을 수 있는 서랍이다. 나는 그 서랍들을 열어 그 아름다운 자태를 한동안 바라보고 서 있는다.(사람들은 이상하게 보겠지..)

 이 밖에도 서랍이 좋은 이유는 내 입장에서 3만 5천 개 정도 있지만, 오늘은 특별히 3가지만 꼽아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첫째, 확실한 분류에 최고

 정리는 각각의 물건에 집을 마련해 주는 것과 같다. 밖을 나가더라도 다시 돌아올 곳을 만들어 주는 것. 그런 점에서 나는 우리 집에 살고 있는 물건들 하나하나를 입주민이라고 생각하고 그들에게 살 집을 배정하고 꾸며준다.(이렇게 생각하면 물건들에 애정이 생기고 귀여워 보이기까지 한다.) 이때 서랍장은 물건들의 아파트가 된다. 서랍이라는 각 층을 18평형으로 할 건지, 24평형으로 할 건지, 확장을 할 건지, 안방을 크게 만들 건지 정해 각각의 집에 벽을 세워 구조를 만든다. 이것이 칸막이일 때도 있고, 작은 수납함이나 우유상자일 때도 있다. 그리고 비슷한 종류의 물건들을 한 가족으로 묶어 입주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집에 자잘한 물건들이 많다면 처음부터 서랍형으로 나온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 보기에도 좋고 정리하기도 쉽다. 작은 땅덩어리에 많은 인구를 수용하기엔 아파트만 한 것이 없는 것처럼.


둘째, 닫으면 아무도 모른다.

  갑자기 손님이 온다고 했을 때 나는 집정리를 30분 안에 마칠 수 있다. 일단 물건이 많이 없기도 하지만, 서랍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있기 때문이다. 서랍 앞 면이 투명으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서랍은 일단 열기 전까지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즉, 급하면 다 때려 넣기 가장 적절한 수납용품이란 뜻이다. 서랍 안까지 모두 반듯반듯하면 참 좋겠지만, 적어도 겉으로 보이는 거실이나 방만이라도 좀 깨끗했으면 좋겠다 싶을 때는 일단 서랍에 쑤셔 넣기라도 해 보자. 물론 중요한 건 서랍에 넣는 물건들에 개연성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바빠도 옷을 넣는 서랍에 장난감을 넣지는 말아야 된다. 나 역시 시간이 없거나 귀찮을 땐 일단 비슷한 물건끼리 한 곳에 몰아뒀다가 시간이 될 때 사탕 까먹듯이 야금야금 한 두 개씩 정리한다. ‘다 뒤집어엎겠다!! 오늘 너 죽고 나 죽자!!‘ 덤볐다가 집만 엉망이 되는 꼬락서니를 너무나도 많이 봤기 때문에, 나는 일단 분리해서 몰아놓고 하루에 서랍 하나, 상부장 한쪽만 정리하는 방식으로 정리한다.


셋째, 아몰랑. 그냥 예뻐

 사실 이 이유가 가장 크다. 그냥 개인 취향이다. 바구니에 같은 방향으로 줄지어진 과자들을 보는 것도 좋고, 무지개 색깔로 정리되어 있는 책을 봐도 신나지만, 역시 나는 서랍 정리가 가장 좋다. 서랍에 오밀조밀 작은 수납함들이 모여 있고 거기에 형태는 같지만 색깔만 다른 물건들이 쪼르르 들어있는 모습을 보면 들숨 날숨 ‘하악하악’ 쉬게 되는 것을 사랑한다고 표현하지 않으면 뭐라고 해야 할까. 알록달록 있어도 예쁘고, 내가 사랑하는 하얀색 물건들로 통일된 모습도 숨 막히게 좋다. 그렇게 내 맘에 쏙 들게 정리된 서랍은 하루에도 몇 번씩 그냥 열어 구경하다 닫기도 한다. 가끔 딸아이나 남편을 불러 구경하라고 강요도 한다.(물론 다들 영혼 없이 보고 간다.) 다른 사람들이 먹방을 보며 힐링하듯이 나는 서랍 안을 들여다보며 마음의 평화를 찾는다. 정리 덕후라고 스스로를 부르는 이유 역시, 잘 못해도, 엉망일 때도 많지만 역시 나는 이렇게 정리된 서랍 안을 볼 때 너무 행복하기 때문이다. 아 몰랑. 그냥 좋은 걸 어떡해.


 많은 사랑 고백 중 서랍을 향한 나의 이 사랑 고백이 누군가에게는(아니 대부분에게) 황당할 듯하다. 그렇지만 오늘도 나는 이 황당한 세레나데를 신나게 부르며 서랍을 연다. 이케아의 서랍 하부장을 가지는 그날을 기다리며.



작지만 있을 건 다 있는 나의 서랍들
냉장고 역시 서랍형 수납함을 사용했다. 이름하여 식재료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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