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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Oct 22. 2022

그해 겨울, 두 번의 면접

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


2018년, 두 번째 대학을 졸업한 지 만 3년이 지났다. 서른둘의 대졸이었던 나는 취직 시장에서 예전보다 더 생명력을 잃어갔다. 나의 이력서는 대기업 문을 두들기기엔 부족했고, 중소기업을 통과하기에는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졸업 직후, 대기업에만 몰래 보여주던 내 자기소개서는 바람을 탄 민들레 홀씨처럼 중소기업과 파견직에 이르기까지 널리 널리 흩뿌려졌다. 그리고 2018년 그해 겨울, 나는 두 번의 면접을 볼 수 있었다.


[두 번째 스무 살, 11학번 000]

27살, 남들보다 늦은 나이지만 저는 11학번으로 다시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편입 전, 저는 종합상사 경영기획팀에서 해외 실적과 경비를 담당했습니다.
모든 자료의 기본이 되는 이 업무를 맡으며 “내가 틀리면 전체가 틀린다”라는 사명감과 책임감을 길렀습니다. 종합상사에서 근무하며 성취감도 컸지만, 회계, 인사를 비롯한 전반적인 부분에서 저의 부족함도 많이 느꼈습니다. 그래서 부족한 역량을 발전시키기 위해 경영학부로 진학을 결심했습니다.
아침 5시 반, 학원가는 지하철 첫차 안에서도 틈틈이 영어단어를 외웠습니다. 매주 치러야 했던 평가시험은 압박감을 주었지만 부족한 부분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어 자극제가 됐습니다.
피곤하고 힘들었던 1년이었지만, 뚜렷한 목표 의식을 갖고 도전하는 모습에 스스로 뿌듯했던 한해였습니다.

편입에 성공하고 경영학부 진학 후, 전공 프로젝트와 공모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단순한 지식보다 저의 실무경험을 더해 볼 수 있는 안목을 키우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성적우수 장학생으로 선정됐고, 마케팅 동아리 친구들과 함께한 공모전에서 입선하면서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이 시기를 겪으며 바뀐 것은 학력이 아니라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세였습니다. 000에서 저의 노력하는 자세로 꾸준히 발전하는 직원이 되겠습니다.


[첫 번째 면접]


외국계 은행 파견직으로 일반 서무와 비서 업무를 맡는 자리였다. 편입 이후 처음 찾아온 대기업 면접 기회였다. 면접관 두 분은 매너도 좋았고 배려심도 넘쳤다. 내 이력서를 미리 숙지하고 질문했고, 내가 답변할 때도 온전히 집중하면서 경청했다. 공격적인 질문도 없어 내가 했던 업무나 편입에 대해 편히 이야기했다. 이 면접은 내가 봤던 수많은 면접 중 가장 따뜻했고, 나는 지원자로서 존중받고 있음을 느꼈다.


면접이 끝날 때쯤 면접관 중 한 분이 나는 이 자리에 차고 넘친다고, 이 자리가 아닌 더 좋은 자리에 가야 할 사람이라고 나를 치켜세워주셨다. 그동안 쌓였던 서러움과 낮은 자존감이 위로받아 눈물이 핑 돌았다. 목이 메고 코끝이 찡해져 대답 대신 염소 소리가 났다.


그리고 며칠 뒤 헤드헌터를 통해 탈락 문자를 받았다. 어쩜 헤드헌터는 퇴근 5분 전인 오후 5시 55분에 불합격 문자를 보냈을까? 그날 저녁 6시만 넘기면 합격에 대한 희망을 하루 더 품을 수 있었을 텐데.

사실 나도 전날까지는 합격을, 그날 오후는 탈락을 예감했다. 그 면접관은 나를 떨어뜨려 내가 더 좋은 자리에 가길 바랐던 걸까? 아니면 대기업 임직원답게 우아한 방법으로 나를 거절했던 걸까? 답답한 마음에 미친 사람처럼 6시부터 밤 11시까지 채용공고를 뒤져 또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기다렸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취준생은 모르는 번호의 전화를 무시할 수 없다. 오히려 면접 전화일지도 모르는 이 낯선 번호를 볼 때면 아드레날린이 분비된 듯 온몸이 각성 상태가 된다. 그러니 이 전화에 목소리를 가다듬고 최대한 친절하고 상냥하게 “여보세요”로 응답해야 한다. 긴장하며 받은 그 전화가 준비된 나의 여보세요를 듣더니 차갑게 ARS 기계음으로 대답했다. ‘아…… 스팸 전화였구나.’ 사람이 건 전화였다면 이 정도의 허탈감은 없었을 텐데. 스팸 전화에 희망을 담아 다정하게 받은 것이 어이없고 창피해 웃음이 나왔다. 스팸 전화에도 예의와 격이 있구나.

그날은 내게 전화를 건 누구에게라도 말하고 싶었다. ‘면접 전화일까 봐 당신의 전화를 설레게 받았다’고.


[두 번째 면접]


면접자는 서류 담당자와 실제 면접관들이 다를 때를 눈치챌 수 있다. 그럴 때면 면접자가 느끼는 면접 공기는 맵고, 답답하도록 매캐하다. 그 해 두 번째 면접이 그랬다.

내 이력서는 한 번도 보지 않고 자리에 앉은 면접관들은 나를 앞에 두고도 이력서에 코를 박고 읽기 바빴다. 그런 면접관들에게 제대로 된 면접 질문이 나올 리 없었다. 실망스러운 면접관 태도 덕분에 나는 오히려 긴장하지 않고 편히 면접을 볼 수 있었다.

아침 10시 이른 면접에 늦을까 봐 택시도 탔는데 택시비 9천 원이 아까웠다. 그날은 눈이 내렸는데 쌓이지는 못할 눈이었다. 그날의 내 우울함도 내릴지언정 쌓이지 않기를 바랐다.


내 전화는 며칠 동안 조용하기만 했고, 나는 내 전화와 같이 계속 집에 있었다. 이제 의미 없는 입사지원서는 그만 내고 싶었다. 어쩌다 한두 번씩 있었던 면접 기회 때문에 그 끈을 놓지 못했다. 전혜린의 수필 <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의 구절처럼 미리부터 잘 알고 있었으면서……


산다는 것이 기다림이라는 것을 더욱더 느낀다.
매일 눈을 뜨면 하루를 기다리게 된다.
무엇이 꼭 일어날 것만 같고,
기적같이 눈이 환히 뜨이는 정오가 올 것만 같고,
마술의 지팡이로 나의 일상생활이 전혀 다른 맛.
좀 더 긴장된, 풍요하고 충일함 가득하고 뒤끓는 맛을 가지게 되는 것을 매일 아침 기다리고 있다.
꼭 무슨 일이 있을 것만 같고, 무엇이 일어날 것만 같다.
아무 일도 안 일어날 줄은 미리부터 잘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전혜린 <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


아무 일도 안 일어날 것 같았던 두 번째 면접 덕분에 나는 2018년 2월,

6년 만에 직장인 건강보험에 다시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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