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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Oct 22. 2022

보통날(평일)

일주일의 법칙


평범한 보통날. 무미건조한 주중은 반짝이는 주말을 감싼 종이 완충재 같다. 선물 같은 주말을 지킬 수만 있다면, 아무렇게나 구겨져 있어도 상관없는 월화수목금.

하루살이처럼 오늘의 평온이 세상 전부인 평일, 단 하나의 바람. ‘어서 주말이 오기를’


월~금요일 중 온전히 내가 쓸 수 있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칼퇴근하더라도 이동시간, 점심시간, 준비시간을 다 합치면 노동을 위해 1일 12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그리고 남는 시간을 선뜻 내게 내어주기에는 내일 다시 시작되는 12시간의 노동이 가슴을 짓누른다.


출근 전날 밤은 시작이 어디인지 모를 생각의 실타래를 만지작거린다. 쓰러져 잠들기에는 아직 체력이 남아있고, 뭔가를 해낼 기력은 고갈된 상태다.

이 애매한 체력과 시간은 먹다 남은 과자처럼 먹자니 맛이 없고 버리자니 아깝다. 그래서 유튜브를 보거나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면서 시간을 죽인다. 아직 숨이 붙어 있는 평일을 천천히 그리고 지그시 깔고 앉는다. 시간이 지나 바닥에 붙을 정도로 하루가 납작해지면, ‘하는 수 없지’하며 그 위에 몸을 눕혀 내일을 기다린다.


반복되지만 미묘하게 다른 평일 분위기를 인터넷 밈 ‘직장인이 느끼는 요일별 감정’을 보고 알았다. 나조차 몰랐던 내 감정에 이제야 이름표를 붙일 수 있게 됐다. 덧붙이자면 1n 년 차 직장인이 느끼는 체감 요일은 늘 실제 요일 +1일이다.


월 - 고통
화 - 절망
수 - 인내
목 - 희망
금 - 환희
토 - 쾌락
일 - 두려움


지나버린 주말을 아쉬워하며 출근하는 고통의 월요일. 회의도 많고, 밀린 일도 많아 체감 근무 시간은 짧지만 남은 4일을 생각하니 고통스러운 하루.

어제 분명히 많이 일한 것 같지만 아직도 일에 치이는 절망의 화요일.

사흘은 일한 것 같은데 아직 이틀밖에 지나지 않은 것이 믿기지 않는 인내의 수요일.

준비된 체력은 이미 바닥이 났는데 아직 금요일이 아니라 ‘하루만 더’를 외치며 버텨보는 희망의 목요일.

마음은 이미 버선발로 주말을 마중 나갔고, 몸만 남아 사무실 자리를 지키는 환희의 금요일.

쾌락의 토요일이 지나면 두려움의 일요일이 찾아온다. 이쯤 되면 늘 예상했으나, 그 등장에 매번 놀라고 마는 바바리맨 같은 월요일. 월요일과 가장 멀어졌을 때가 다음 월요일과 가장 가까운 날이라는 일주일의 법칙.


예외 없이 다시 마주하는 고통의 월요일이면, 먼저 출근한 직장동료가 적당한 위로를 찾다가 아침 인사를 건넨다. “OO 씨 주말에 뭐 했어요?” 그 대답으로 시작되는 나의 주말에 대한 복기.


그리고 아무도 물어보지 않는 나의 주중. 특별하지 않은 나의 주중은 아무렇게나 방치돼도 괜찮은 걸까?

구겨진 하루에 풀을 먹이고, 달궈진 숨을 불어넣어 반듯하게 펴내고 싶다. 주말보다 2.5배 더 많은 내 보통날들이 평일(平日) 그 이름처럼 주말보다 더 고르고 빳빳하도록 지켜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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