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름달 Oct 22. 2022

일요일, 경건한 밤을 걷다.

나의 위성


한 주를 시작하기 전, 일요일은 내게 경건함을 준다.

지나간 금요일, 토요일을 아쉬워하며, 다음 주 출근을 위해 숨 고르기가 필요한 날이다. 쓸데없이 에너지 쏟는 행동은 삼가고, 정신 사나운 마음을 가라앉혀 엄숙함을 찾는 것이 굳이 교회에 가지 않더라도 하루가 경건하다.


멀리 외출하기에는 조금 부담스럽고, 아무것도 안 하기에는 아까운 일주일의 끝이자, 일주일의 시작.

늦잠을 자기보다는 일찍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하고 싶다. 일찍 일어난다고 대단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남은 시간을 더 만끽하기 위해 눈을 떠야 한다.

일요일 아침 고정 프로그램 TV 동물농장, 서프라이즈, 출발 비디오 여행을 연속으로 보면 일일 퀘스트를 완수한 것만 같아 기분이 좋다. 20년째 방송되는 이 프로그램에 특별한 재미는 없지만, 적당히 평온하고 단조로워 좋다. 졸다 TV 보기를 반복하다 점심이 돼서 주문한 짜장면과 탕수육이 도착하면, 일요일 분위기가 더 살아난다.


다 먹은 그릇을 치우고 나면, 자꾸 남은 시간에 집착하게 된다. 학창 시절 시험을 볼 때도 그랬다. 시험 문제에 집중하면 될 것인데 남은 시간, 남은 문제에 마음이 더 쓰였다. 현재에 집중하기보다는 남은 것들을 재고 또 가늠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지금에 온전히 몰입하는 건 어떻게 하는 걸까?

걱정과 불안이 월요일과 함께 가까워지는데 어떻게 모르는 척할 수 있을까? 당장 대처할 방법은 없지만,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일요일은 종일 경건함 속에서 그런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저녁이 되면, 그 마음이 경건함의 한 복판을 가로질러 걸어간다. 예정된 형을 선고받은 사람처럼 주말이 지나면 다시 주중으로 끌려 나가야 한다. 허락된 주말의 자유를 그대로 만끽하기에는 바짝 쫓아온 월요일이 무섭고 두렵다.

결석 한번 없이 그 한복판에서 매번 스트레스받는 나를 엄마는 이해하지 못한다. 그걸 왜 쉬는 동안 걱정하냐고 내일 회사 가서 걱정하라고 한다.

남 이야기라 그렇게 말하나 싶다가도 맞는 말을 고깝게 듣는 내가 못난 거 같기도 하다. 나는 언제쯤이나 엄마처럼 강 건너 불구경하듯 일요일이 지는 것을 감정 없이 바라볼 수 있을까?


내 걱정과 우울은 위성과 같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그저 내 주위를 맴돈다. 지구 곁을 떠나지 못하는 달처럼 궤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지구에 비해 너무 큰 위성, 달처럼 내가 감당하기에 일요일, 이 어두운 그림자가 너무 크다.

하지만 오전까지 느긋하게 TV를 볼 수 있는 것, 점심 배달 비용을 낼 수 있는 것, 엄마의 더 큰 잔소리를 피할 수 있는 것, 모두 전부 일하고 있어 가능했다.


남들처럼 출근 준비로 바쁜 평일 아침, 매월 말 들어오는 월급, 내가 기를 쓰고 얻으려고 했던 이 평범함이 결국 나를 잠식시키는 밤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