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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판적일상 Dec 26. 2018

'소확행'의 유행이 슬프다.

우리는 왜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만을 추구해야 하는가

이십대 후반의 크리스마스는 좀 특별할 줄 알았다.


한참 어렸던 내가 느끼기에 이십대의 후반은 먼 나라 얘기였고, 그렇기에 그때의 나는 많은 것을 이루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게다가 어린 나에게 크리스마스는 참 즐겁고, 따뜻하고, 설레는 연례행사 같은 것이었다.


막상 스물 여덟의 크리스마스에 당도해서야, 그 모든 것이 허상이었음을 깊이 체감한다.


많은 사람들을 모아 아주 즐겁고, 휘황찬란한 파티를 벌이고, 고급스런 장소에서 와인이라도 한 잔 들고 풍미를 느끼며 야경을 감상하는 것으로 크리스마스를 누리게 될 줄 알았는데.


일단 평범한 이십대 후반은 별로 이룬 게 없다. 딱 굶어죽지 않고, 돈을 모아 이따금씩 조그마한 여유를 누릴 수준의 월급으로 매일을 보내고 있으며, 체력이나 감성도 십대, 이십대 초반과는 좀 다르다. 크리스마스라고 특별한 호사를 부리기엔 통장 사정이 그리 여의치는 않을 뿐더러, 내가 파티를 연다해도 대부분이 직장인인 주변인들이 자신들의 다른 계획은 차치하고 나의 파티에 시간을 모두 맞춰줄지도 의문이다.    





게다가 이제 크리스마스마다 느끼던 특유의 설레고 따뜻한 감정이 그리 느껴지지도 않는다. 크리스마스의 감성을 누리기 위해 유동인구가 많은 번화가로 나가는 일은 생각만 해도 번잡하고, 밖은 너무 춥다. 다음날이 평일이니, 내일의 출근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즐거운 일을 도모하기엔 스스로가 너무 즐겁지 않은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리하여, 나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평소 좋아하던 맛집에 가 삼겹살을 먹었고,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서 추억의 노래들을 부르며 밤을 보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엔 다음날의 출근을 생각하며, 늦잠을 펑펑자고 일어나 밀린 이불 빨래를 한 번 싹 하고는 뽀송한 이불을 덮고서 연말 시상식과 함께 집에 푹 늘어진 채 치맥으로 마무리 하는 소확행을 누렸다.


이런 풍경이 어쩐지 울적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만족스러운 양가의 감정이 든다. 상상으로만 생각했던 나의 미래에서 그 미래가 현실이 된 지금, 앞으로도 나는 내가 생각한 수많은 나의 미래들과 나의 현실에서 얼마나 많은 괴리를 갖게 될 것인가. 




'소확행'을 누리면서 만족하지만, 한 편으론 씁쓸한 이유는 내게 '소확행'이 정말 '최선'의 행복을 누리는 방법이 아니라, 지금 나의 현실에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것은, 나의 현실의 벽이 '최대치'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에 확실성을 담보할 수 없게 만들고 있으니까.


사실 이 단어가 만들어진 유래만 살펴보더라도 그렇다. 1986년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랑겔한스섬의 오후'에서 처음 등장한 이 단어는, 일본이 경제 호황을 누리고 있던 시기에 탄생했다. 이때에는 많은 이들이 물질적 가치에 탐닉하여 정신적 가치들이 전도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었다. 결국 시대적 배경을 고려한다면 '소확행'은 경제적 호황에 따른 물질적 가치 탐닉의 '대안'이자 하나의 '선택'으로, 소소할지라도 정신적인 '행복'의 가치를 우선하자는 의미에서 등장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과연 우리에게, 우리 청춘들에게 '소확행'이란 이야기가 하나의 '선택'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을까?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러 종류의, 수많은 크기의 행복 중 어느 것을 고를지 선택할 수 있는 여유의 영역이 아니라는 뜻이다. 오히려 지금 우리에게 소확행은 소확행'밖에' 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10년 전 5~6%였던 한국의 경제 성장률은 지난해 2.8%를 기록했고, 올해는 더 떨어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청년실업률은 매번 최악을 기록하고 있고, 20대 노동자 중 3분의 1은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등 일자리의 질 문제 역시 심각하다. 뿐만 아니라, 서울 1인 청년가구 3명 중 1명은 '지옥고(지하, 옥탑방, 고시원)'에 거주하고 있을 정도로 주거 빈곤 문제도 여전한 것이 현실이기에. 


그리하여, 현실에서 맞닥뜨려야 하는 실질적인 어려움에 대한 해결은 저 편으로 미뤄둔 채, 소소한 일상에서 만족을 누리는 것만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행복인 것 같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안정된 일자리를 갖고, 풍족한 비혼라이프를 꿈꾸기도 하고, 마음 편히 연애하기도, 결혼을 하고 싶다면 망설임 없이 결혼을 선택할 수도 있고, 아이를 낳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걱정 없이 아이를 낳고, 누구나 자신이 살 집을 장만할 수 있고... 이러한 많은 인생의 선택지들이 지금의 청년들에게는 '선택'할 수 없는 사치, 크지만 '불확실한' 행복이 되어버렸다.





지금도 나는 유럽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것을 늘 꿈꾸지만, 현실적인 상황에 최대한 타협해 나는 유럽 항공권 대신 3박 4일 동남아 여행권을 예매하며 소소한 행복감을 느낀다.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경치를 감상하며 여유를 누리고 싶지만, 그나마 집과 멀리 떨어진 동네의 예쁜 카페를 찾아 카페의 풍경을 감상하며 독서를 하는 것으로 소소한 행복을 누린다.


직장에 출근해 모니터를 통해 결단력 있게 직장을 그만두고, 세계일주를 떠난 용감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기사를 읽으며, 부러움에 빠지지만 차마 용기를 가지지는 못하는 것이 나의 현실이다. 그렇다고, 한 번 뿐인 흘러가는 인생인데 비관에만 빠져 살 수 없진 않은가. 결국 나의 '소확행'은, 현실의 벽 앞에 자칫 불행에 빠질 수 있는 내 삶을 조금이라도 행복하게 만들고자 하는 최선의 노력의 움직임인 것을.


지난주에는 야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 침대에 누워 보고 싶었던 영화를 틀어놓고 맥주를 마시는 것으로 소확행을 누렸다. 주말에는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경치를 감상하는 여유를 누리고 싶지만, 집과 떨어진 동네의 예쁜 카페를 찾아 독서를 하는 것으로 소확행을 누렸다.


이마저도 전 직장에선 누릴 수 없었던 소확행이었다. 주말에도 일을 해야 했으므로. 조금이라도 발전된 행복을 누리고 있는 것이라며 흐뭇해하기엔 현실이 어쩐지 씁쓸하다.





아직 수많은 인생의 관문을 채 치르지도 못 한 서른즈음에, 나는 느낀다. 앞으로도 내 삶에서 허상과 현실의 괴리가 부딪히는 일들은 허다할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중심을 잡으며 최대한의 타협점을 찾아가는 게 나의 과제다. 결국 그 과정이, 최대치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을 찾아가는 길일지도 모르니 당장의 나는 오늘도 열심히 '소확행'을 누릴 것이다. 


그러면서 마음 한편으로는 바란다. 소확행'밖에' 추구할 수 없는 것이 젊은 날의 행복의 전부가 되지는 않기를. 다소 불확실하더라도 거대한 행복을 누리는 것을 당연히 추구할 수 있는 것이 되어 소확행이 무수한 선택지 중 일부가 될 수 있는 날이 언젠가는 꼭 오기를. 그러기 위해 우리 사회가, 높은 수준의 '워라밸'이 갖춰진 사회, 누구든 쉽게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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