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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구의식 Dec 03. 2022

03/ 크게 잘못된 건 없어요.

22/12/03 PM9:52

명상을 하면 몸이 내는 소리가 비로소 들리는 순간, 을 만난다. 깊은 집중 상태에 빠져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습관적으로 행하던 것들을 멈추면 불현듯 몸을 감지한다. 늘 움직이거나, 의식하지 못하지만 생각 중이거나(움직이면서 생각 중인 경우가 더 많지만), 무의식 상태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명상할 때만큼은 이 모든 걸 멈추고 나라는 존재를 관찰한다. 그러면 모른 채 흘려 들었던 몸의 신호가 잡히곤 하는 거다.


처음 명상을 하면, 주로 겪는 일 중 하나가 신체 부위의 통증을 느끼는 것이다. 명상을 지도해주시던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얘길 했었다. “원래 아팠던 거예요, 다른 일들에 신경 쓰거나 모르고 있거나 모르는 척 있었을 뿐이에요” 


내가 주로 느낀 통증은 목과 어깨의 뭉친 근육들이 내는 울그락 푸르락 소리였다. 딴딴하게 한 데 뭉쳐 컹컹 짖는 한 목소리를 내는 승모근.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보지 않고도, 만지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평소 늘 함께하는 어깨 뭉침은 “아, 피곤해, 라거나-몸이 굳었어-찌뿌둥해-머리가 무거워” 같은 뭉뚱그린 감각으로 받아들였었다. 잘 긴장하고 움츠려 드는 나는 몸을 인지할 때면 늘 어깨 통증이 있었다. 어깨가 뭉치지 않은 감각이란 어떤 것인지를 모르고 살았다. 


30대 초반, 고개를 돌릴 때에도 통증이 심해 일상생활이 불편해졌을 무렵, 이를 핑계로 퇴사 후 입원 치료를 받았다. 몇 주간 매일 침을 맞고, 물리치료와 도수치료, 재활운동을 하는 호사스러운 치료 후 승모근에 있던 돌멩이가 사라진 걸 알았다. 나는 그 동그랗고 딱딱한 신체부위가 원래 대부분의 인간들에게 있는 것인지 몹시 궁금했었는데, 그제야 특수한 일부 인간들에게 생기는 증상이라는 걸 알았다. 근육들이 화가 나면 돌처럼 한데 뭉칠 수 있군, 흥미로워. 


이후 다시 승모근이 단합하지 않게 나름의 신경을 쓰면서 지냈지만, 내 맘처럼 되지 않는 일 투성이 속에서 나는 다시 긴장하고, 움츠러들기를 반복했다. 곳곳의 한의원이나 정형외과를 다니는 걸 일상처럼 반복했다. 


요가를 하면서는 몸에 대한 이해도가 이전보다 많이 높아졌다. 그래도 마감에 임박해 원고를 오래 앉아 쓰거나, 집안일을 과하게 하거나, 이사처럼 어쩔 수 없이 무거운 걸 많이 들어야 하는 일이 생기면, 어깨 뭉침은 어김없이 일어났다. 그대로 두면 통증은 날개뼈로 갔다가 등을 타고 허리가 아프게 만들었고, 엉덩이나 골반, 심지어 손가락 관절, 발바닥 같은 곳으로 옮겨갔다. 


도시에서보다 병원 접근성이 떨어지는 서귀포에서 나는 자가 치유를 이어가다 결국 정형외과를 찾았다. 아구, 하시던 물리치료사 선생님은 올 수 있으면 자주 오라고 하셨다. 기본 진료비만 나오는 병원이었는데, 약간의 도수 치료와 성심성의껏 물리치료를 해주셔서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때 물리치료 선생님이 하셨던 말 중 마음에 오래 남는 얘기가 있었다. “원래 이런 분들이 있어요” 


그 말을 듣고는 마음이 턱, 편해진 기억. 


그때까지 나는 대체 나의 근육들이 왜 자꾸 단합하는 것인지, 나의 어떤 ‘잘못된’ 자세와 습관들 때문인 건지, ‘무엇을 고쳐야’ 하는 건지, 그러니까 


‘대체 내가 뭘 잘못한 것인지’ 


그 이유를 찾으려는데 많은 시간을 들이고 있었다. 한데 전문가가 말하길, 정확한 원인 없이 일상생활을 남들이랑 똑같이 하는데도 유독 더 이런 존재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 말은, 뭐랄까, “너가 특별히 잘못한 게 없어”라고 답해주는 것 같았다. 


맞다, 많은 시간 잘못된 것들을 찾아 헤매고, 바로잡기 위해 애를 쓰며 살았다. 잘못되지 않으려고 안 해야 하는 일 투성이었다. 반면 해야 하는 일을 정하기는 어려워했다. 뭘 해야 할지는 막막했고, 하면 안 되는 일을 지키느라 몸과 마음은 늘 바빴다. 


성격도 비슷했다. 나와 남의 잘못된 점을 찾느라, 더 좋은 방향으로 가려면 무얼 해야 하는지, 생각해볼 겨를은 없었다. 그저 비판하고 다그쳤다.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지 않으면 그다음으로 나아가질 못했다. 제자리로 오지 않고 자꾸만 휘어지는 종이 한 장을 똑바로 세우려고 질책하고 좌절했다. 그보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일, 안 해야 하는 일 대신, 좋은 방향으로 향하기 위해 실행해야 하는 것을 찾아 “하는” 것이 더 빨리 나아지는 방법이란 걸 명상과 철학, 성격학 등을 공부하다 뒤늦게 알게 된다. 빨리 알았으면 좋았을걸, 하는 마음을 빙그레 웃으며 다독여본다. 이제부터 하기에도 시간이 충분하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근육이 뭉치는 것도 그 이유를 찾아, 그걸 안 하려고 애쓰기보다 매일 스트레칭하고 운동하는 방법이 더 빨리 나아진다는 걸, 알게 됐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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