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 하나와 그리 크지 않은 캐리어 하나를 끌고 브리즈번 공항에 도착했다. 2007년 1월 군인 신분으로 시드니 킹스포드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여행자로 한국을 떠나왔고 다시 돌아갈 안전지대가 있었다. 하지만 그때로부터 2년 뒤인 2009년 3월 나는 브리즈번 입국장을 들어서며 온갖 생각들이 교차했다. 27살의 나이에 바로 취업준비를 계속해도 쉽지 않을 판에 취업 실패에 힘들어하는 나 자신과 마주하기 싫어 도피하다시피 선택한 곳이 이곳이었기 때문에 마음은 무거웠다. 하지만 실패를 실패로 규정하지 않고 단지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과정의 일부일 뿐이며 앞으로 20년 이상 직장생활을 하기 전 나에게 주는 20대의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을 하니 한편으로는 마음이 편해졌다.
호주에서 안정적인 정착과 어학 실력을 갖추기 위해 한국에서 미리 어학연수 코스를 운영 중인 브리즈번 캥거루 포인트에 위치한 Shafston College에서 나의 워홀 이야기는 시작된다. 호주의 생활비 중 거주 비용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할 정도로 비용이 많이 간다. 일반 가정집의 방 하나를 혼자 쓰게 되면 주당 200불 이상 지출되기 때문에 보통은 2명이서 나눠 생활을 한다. 하지만 나는 일반 가정집의 셰어하우스 대신 비싸기로 유명한 대학 기숙사를 선택했다. 어렴풋 기억하기로는 친구와 한방을 쓰는 옵션으로 주당 240불 정도로 기억한다. 셰어 하우스에 비하면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날 정도로 비쌌지만 3개월 간은 오로지 영어공부에 집중하겠다는 각오였다.
< 샵스톤 컬리지 전경과 브리즈번 강이 내려다 보이는 캠퍼스 앞마당, 3개월 동안 지냈던 컬리지 기숙사 모습 >
친구와 나는 샵스톤 컬리지에서 입학 첫날 General English 반 배정을 위해 Speaking 시험을 봐야 했다. 미군부대에서 근무하며 나름 영어 말하기에 자신 있었던 나였지만 호주식 영어발음과 긴장감으로 평소 실력이 나오지 못했고 결국 6단계 레벨 중 중간 등급(Intermediate level)을 받았다. 친구는 나보다 더 아래 단계의 반에 들어갔고 우리는 그렇게 각각 다른 반에서 어학연수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후 나는 레벨이 한 등급 더 올라갈 수 있었고 목표했던 IELTS 반으로 옮겨 시험대비를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 수 있었다.
샵스톤 컬리지는 단과대학으로 영주권 준비를 위해 전 세계에서 많은 유학생들이 찾는 대학 중 한 곳이다. 대학 입학조건인 IELTS 성적이 없거나 영어실력이 부족한 외국인 학생들을 위해 IETLS 외에도 토익, 토플, 캠브리지 코스 등 다양한 어학과정을 운영 중이었다. 물론 나같이 단기 어학연수를 위한 General English 과정도 있어서 워홀러 족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학교였다. 특히 캠퍼스는 그리 크지는 않지만 학교 앞마당에서 내려다보이는 브리즈번 강이 참 평화로워 보였고 기숙사가 본교 뒤편에 바로 위치한 덕분에 수업이 끝나고 안전하게 숙소로 귀가할 수 있어 워홀 초기에 안정적인 정착이 가능했다.
브리즈번 강이 흐르는 주변에는 주요 교통수단이었던 페리(주로 City Cat)를 타고 시내로 이동할 수 있는 선착장이 가까웠고 주변에 푸른 잔디밭과 녹음이 어우러진 공원이 있어 산책하기 좋았다. 특히 시내를 가기 위해 건너야 되는 스토리 브리지는 해가 진 저녁 시내 야경과 브리지 야경을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산책코스였다. 나는 저녁이면 함께 수업을 듣고 기숙사에서 지내던 친구들과 자주 산책을 즐기곤 했다.
< 내가 지내던 캥거루 포인트에서 브리즈번 시내를 오갈때 주로 이용했던 City Cat >
군에서 모은 월급은 운항관리사 준비와 배낭여행 등으로 대부분 써버리고 1000만원 가량 남은 돈으로 떠나온 호주였다. 비행기 티켓과 3개월 간의 수업료와 기숙사비용을 지출하니 남은 돈은 500만원도 남지 않은 상태에서 브리즈번 생활이 시작되었다. 2009년 당시 호주의 환율은 1100원이 넘는 상황에서 유학생들에게는 경제적으로 힘들었고 호주 달러를 버는 워홀러들에게는 천국 같은 곳이었다. 당연히 3개월간 수입 없이 지출만 해야 했던 나는 어학연수가 끝날 때쯤 수중에 남아있던 500만원도 순식간에 바닥이 났다. 어학연수가 끝남과 동시에 무조건 취업을 해야 되는 상황이 되었고 내가 목표했던 리조트 취업이 실패할 경우 당장 시티잡이라도 잡아야 될 판이었다.
여기서 잠시 워홀러들의 임금체계를 살펴보면 고용주가 호주 정부에 고용신고를 하고 합법적으로 세금을 내고 연금회사에 노동자의 연금을 가입해 주는 정규잡이 있는데 주로 워홀러들이 취직을 하고 싶어하는 현지 호텔이나 리조트가 대표적이다. 반면에 세금신고를 하지않고 연금가입을 해주지 않는 불법고용 형태의 캐시잡이 있는데 주로 시내의 식당들이 이에 포함된다. 당연히 정규잡보다는 캐시잡이 상대적으로 구하기 쉬우며 캐시잡은 시내의 한국인이나 아시아인 업주들이 대부분인데 정규잡에 비해 임금이 약 절반 수준이며 근무여건도 매우 열악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나는 3개월의 어학연수 내내 리조트 취업에 성공하고 Australian Dream을 실현하겠다는 목표를 다짐을 하며 영어공부와 취업준비에 최선을 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