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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포걷달 Aug 07. 2024

FW #36, 부평(27.30km)

누적거리: 2028.15km, 누적시간: 410시간 13분

표지사진: 인천시 부개1동 ’숨어있는 철길‘


우리의 맛집은 어떤 모녀의 인생, 부평 ‘모녀떡볶이’를 찾아서


떡볶이 찾아 삼만리

얼마 전부터 서울 떡볶이 맛집 도장 깨기를 하던 와중에, 진정한 떡볶이는 서울이 아닌 부평에 있다는 첩보를 받았다. 그래서 서른여섯 번째 워킹 코스는 자연스럽게 부평으로 결정하였다.

“지금까정, 엉뚱한 곳에서 찾았구만요? “
회사 지인, 권지영의 말에 눈이 화들짝 떠졌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당가? 서울이 가장 큰 지역인디. 그래도 떡볶이 맛집은 서울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니당가?“
”아닌디요“ 권지영이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그거이 부평에 있지요. 모녀떡볶이라고 “
”모녀떡볶이? 여자 둘이서 하는 떡볶이집이란 말인가?“


그래. 나는 당장의 큰 정보 없이, 일단 부평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어느 동네를 파헤칠지 고민하고 있던 차에, 권지영이 말하는 ‘모녀떡볶이’도 먹어볼 겸 좋은 지역이라고 생각했다. 왕복으로 갔다가 돌아오기에는 꽤나 멀었다. 무려 48.8km. 아무래도 왕복은 무리일 듯싶다. 지난주 성수동 일정이 생각보다 힘이 들었던 관계로, 나는 아직 내 온몸의 젖산이 채 빠지지 않은 상태였다. 오늘은 편도로 다녀오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워킹 코스 계획: 마포 집 > 영등포 구로 > 시흥 > 부천 > 부평으로 이어지는 총 거리 24.2km의 편도 거리



마포대교를 건너 영등포로

여의도 일대가 훤히 보이는 마포대교에 올라섰다. 날씨는 흐리고 중간에 비가 올 수 있어 걱정은 되었다. 엄청 추운 날씨는 아니지만 혹시 모르니 두툼한 오리털 잠바를 입었다. 이상기온 탓일까? 2024년 1월, 올 겨울은 그리 춥지가 않다. 가끔 변덕을 부려 영하 10도까지 내려갈 때도 있지만, 대체로 영상 온도를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흐린날인데도 눈보다는 비가 많이 온다. 오늘도 왠지 비의 하루가 될 듯싶다. 그리고 역시, 우산은 없다.

마포대교 북단에서 바라 본, 여의도 전경. 왼쪽의 ’63빌딩‘과 오른쪽의 ‘파크원 빌딩‘이 항상 대치 상태를 이루고 있다. 크기보다는 빛깔이라고, 밀리지 않는다
내가 걸어온 날만큼, 마포대교도 수많은 얼룩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많은 인생을 지탱해온 영광의 상처다


마포대교를 걷다 보면 동상 하나가 나온다. 평소에도 ‘이 동상은 아마 자살 방지를 위해 기획된 동상일 거야’라는 생각을 했는데, 뒤늦게 검색해 보니 역시 그렇다. 이렇게 자기 인생을 한번 더 생각해 보라고 꼬집는 친구의 동상인데, 얼핏 보면 괴롭히는 모습 같기도 하다.


우울해 있는 친구를 보면 볼 하나를 꼬집어, ‘야! 정신 차려!’라고 나 또한 말할 것 같다. 동상은 그런 느낌이겠지 싶었다. 따듯한 말도 중요하고 따끔한 말도 중요하다. 때로는 그냥 뒤통수 한 대 치고, ‘야! 뭔 궁상이야! 밥이나 먹자.’라고 하는 동창 녀석의 툭 던지는 말이 위로가 될 때도 있다. 진짜 우울한 것은, 아무 말도 없는 그대와 내가 아니겠는가?

“여보게 친구야, 한번만 더 생각해 보게나”라고 적인 ‘한번만 더’ 동상


휴일의 여의도는 한층 더 을씨년스럽다. 한두 방울 비가 오더니 이내 눈이 되어 내린다. 붉은색 소매를 자랑하는 ‘파크원(더 현대 서울)’ 건물을 지나 영등포로 향했다. 이미 임무를 마친 따릉이들이 전경련 회관(現 한경협) 앞에서 일렬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저 끝에 보이는 광장아파트는 여의도가 개발된 세월만큼이나 오랜 나이를 자랑한다. 생김새도 유니크한 것이 멋스럽다.

여의도 옛 전경련회관 앞에 놓인 따릉이들. 겨울이라 이용자가 별로 없다
여의도 광장 아파트. 1978년에 지어졌는데, 작년 재건축이 확정되었다
여의도 ‘서울교’에도 겨울이 한창이다. 높은 미루나무 꼭대기에 커다란 까치집이 매달려 있다. 가장 로열층에서 가장 먼 곳을 바라보는 네가 참 부럽다


영등포를 지나 신도림으로 빠지니 다시 빗방울로 바뀐다. 크게 개의치 않고 빗방울을 벗 삼아 부평으로 걷는다. 지난 여름 가장 뜨거운 날, 나는 부천에서 마포까지 걸어온 적이 있다. 그리고 지금은 그 반대로 부평을 향해 걷는다. 이미 내가 걸어온 길을 다시 만나니 서로 반갑다. 처음 가는 부평길이 낯설지 않다.

영등포에서부터 구로까지, 공업사가 계속 들어 서 있다
녹슨 철조각이 얽히고 섥혀, 세월만큼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듯 하다



시와 시의 경계의 선은 항상 외롭다

고척 스카이 돔구장에 도착했다. 그 넓은 광장에 사람이 없다. 봄이 올 때까지, 누구라도 찾아오길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네가 마치 나와 같다.


외로움은 한순간이니까, 어깨를 세우렴

외로움은 한순간이다. 그러니까 어깨를 너무 낮출 필요는 없단다. 또 너의 시간이 오면 가장 떠들썩한 모습으로 뜨거운 계절을 보낼 테니까. 그렇게 서로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돔구장을 건너 이제 개봉을 지난다.

구로동 고척교에서 바라본 ‘고척스카이돔’, 겨울이라 그런지, 수척하다
스카이돔 광장에는 야구공을 실루엣으로 만든 멋진 조형이 세워져있다
고척스카이돔(Gocheok sky Dome)
고척동에 있는 대한민국 최초의 돔형 야구정. 2009년에 착공, 2015년에 완공되어 키움 히어로즈가 2016 시즌부터 사용 중인 홈구장이다


부천에서 마포로 걸어올 때에도 깨달았지만, 인천에서 마포, 다시 구리까지 이어지는 길은 여기 ‘경인로’만 따라가면 된다. 아주 쉽다.


사실 인천과 서울이 가깝기는 하나, 그 경계선 하나에 큰 차이가 있다. 시와 시의 경계선은, 이전에도 몇 번을 경험했지만 굉장히 조용하고, 쓸쓸하고 그리고 시의 모든 면에 있어서 가장 낙후되어 있다. 처음에는 몰랐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인천의 가장 경계선이 서울 바로 옆일지라도 그것은 인천의 가장 끝이었던 거다.


중심을 벗어나면 모든 것이 대체로 낡고 조용한 것이 비단 인천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행주대교의 서울과 고양시가 그랬고, 망우리고개의 서울과 구리가 그랬었고 그리고 양재의 끝과 대왕저수지를 거쳐 넘어가는 판교가 그랬던 것 같다. 그 경계의 선을 걸어서 왔다 갔다 하는 경험은 결코 쉽게 오는 일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묘한 기분을 낳는다.

오류IC. 여기 개봉에서 오류동으로 넘어가는, 저 터널을 지나는 데 왼쪽 길쪽이 막혀 있었다. 다시 돌아와서 오른쪽 길로 가는데도 힘이 빠진다. 나를 위한 안내판은 당연히 없었다


구로를 막 빠져나가면 역곡을 가기 전, 유한양행이 세운 고등학교와 대학교가 눈에 뜨인다. 워낙 좋은 기업으로 정평이 나 있어서인지, 여기 학원들도 왠지 믿음이 간다.

유한학원: 유한공업고등학교와 유한대학교가 서로 붙어 있다
유한양행 학교법인 유한학원
유한학원은 ‘유한공업고등학교’와 ‘유한대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평이 좋은 기업과 재단의 영향을 많이 받아, 분위기가 다소 거칠어지기 쉬운 공업특성화학교치고는 상당히 얌전하고 성실한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 - 나무위키



부평 가는 길, 비가 오니 낭만이다

이제 인천 권역으로 넘어왔다. 역곡, 소사를 지나 부천까지는 ‘경인로’ 대로변을 따라 계속 걷는다. 송내로 가기 전, 도로가 협소한 길로 빠졌다. 특히 부천에서 부평까지는 대로변이 아닌 인천 지하철 옆길로 샜더니, 발의 피로감이 아주 크게 다가온다. 길이 평평하지 않으면 약간의 각도 차이로 걷는 발의 중심이 무너진다.


오래 걸으면서 깨달은 것은, 평평한 길을 오래 걷는다고 무릎이 나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가장 큰 어려움은 역시 피로감에 따른 간과 신장의 문제이다. 그러니까 외부 요인보다 내부 요인에 따른 부상이 있을 수 있는데, 오래 걸어보지 않는 이상 잘 모를 수 있다.


어쩌면 이렇게 동네를 오래 걸으면서 사진과 글을 남기는 나는, 굉장히 유니크한 스토리를 갖고 있는 작가 중 한 명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그동안 나에게는 없었던 최초의 매혹이다.




너무 근사한 모녀 떡볶이

드디어 부평에 들어섰다. 소곤소곤 내리는 비를 다 맞고 왔더니, 강줄기 마냥 옷이 젖어 있다. 툴툴 털어버리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저 멀리 오늘의 목적지인 ‘모녀떡볶이’ 집이 보인다. 나이불문, 손님들이 참 많다. 다들 밖에서 대기를 타고 있다. ‘이런, 나처럼 멀리서 걸어온 손님에게 주는 특혜, 이런 것은 없을까?


식당 문 왼편은 매장 손님 줄, 오른편은 포장 손님 줄이다. 매장은 매우 협소하여 대 여섯 자리 손님 정도만 받을 수 있다. 그나마 혼자 온 지라, 저 끝 정수기 앞에 구석진 자리에 금방 들어가 앉을 수 있었다. 이제 드디어 서울이 아닌 인천 3대 떡볶이를 먹어 볼 수 있다.


떡볶이와 오뎅, 김말이와 만두를 주문한다. 이외 다른 것은 없다. 순대 정도가 있는데, 한참을 끓이고 있는 중이다. 금방 동이 난 듯싶다. 특히 여기 집은 만두가 유명한데, 나를 마지막으로 다음 손님은 무려 40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여러모로 멀리서 온 나를 배려하는 듯했다.


떡볶이 간은 센 편이다. 그러나 짠 듯 하지만 짜지는 않았다. 매워서 못 먹을 정도는 아니고, 그냥 맛있다. 분석하기도 어렵다. 이 맛은 너무나 독특해서, 무얼 넣었을지 감도 안 잡힌다.


그리고, 만두! 만두는 정말 예술이다. 야끼만두가 별거 있겠냐만은, 여기 야끼만두는 밀가루가 좋은 건지, 반죽을 잘한 건지. 아니면 방금 튀겨서인지 정말 맛있다.

진짜 야끼만두는 예술이다! 인생 만두다!


모녀떡볶이는 돌아가신 어머님 뒤로, 딸 두 명과 며느님이 운영하신다고 한다. 2대에 걸친 부평의 조그만 분식점의 일기가 그녀들의 삶과 희로애락으로 가득 차 있다. 37년간 모녀떡볶이를 찾는 모든 사람들의 행복을 곁들어 담았다.




부평의 밤을 마음에 담고 오다

먼 길을 걸어온 부평 모녀떡볶이에 아주 만족을 하고 금방 일어섰다. 다음 손님을 받아주는 일은, 먼저 온 손님이 알아서 눈치껏 일어나 주어야 가능한 일이다.


돌아가는 길이 어두워지고 있다. 발목이 시큰하다. 한 달 동안 주마다 40km씩 걸었더니 온 몸의 피곤이 가시질 않는다. 아무래도 오늘은 편도 여행이 당연했을 듯 싶다. 무리하면 다음 걷기가 불가능하니까.


누구나 가 봤을 부평을 여러 시의 경계를 가로질러 걸어온 이야기를 이쯤에서 마무리한다. 누군가에게는

미친 일을 나는 너무나 행복하게 맞이하고 있다. 그 행복을 글 몇 줄에 담아 전하기는 쉽지 않으리라. 그래서 글 한 줄 한 줄을 최선을 다한다.


돌아가는 광역버스를 검색하는데, 이미 온 거리가 밤 불빛으로 가득하다.



- 끝

마포 > 여의도 > 영등포 > 구로 > 개봉 > 소사 > 부천 > 송내 > 부평으로 이어지는 총 거리 27.3km, 33,273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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