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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포건달 Aug 21. 2024

FW #39, 북가좌동(22.37km)

누적거리: 2130.87km, 누적시간: 430시간 37분

표지사진: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2동(거북골로 22길)



나는 어렸을 때부터 떡볶이를 너무나 좋아했다. 하지만 엄마의 떡볶이는 기억에 별로 없다.



고백

엄마의 음식 솜씨는 대한민국 제일가는 솜씨이다(이건 진심이다). 하지만, 솔직히 엄마가 해 주신 떡볶이는 그다지 맛이 없었다(이것도 진심이다). 정말 맛있게 먹었던 기억은 오락실에 가서 실컷 놀고 난 후 집으로 돌아가는 중, 급하게 사 먹었던 포장마차 떡볶이였다. 100원에 열개, 그래서 200원어치만 먹어도 배가 엄청 불렀었다. 혼나기 전에 들어갔어야 했는데도, 숭덩숭덩 20개를 다 먹고 일어나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서른아홉 번째 동네는 어디로 가야 하나?


갈 곳 찾기

걷다 보면, 매번 어느 동네를 갈까 고민을 한다. 맛집을 찾아서 결정할 때도 많다. 떡볶이를 좋아하는 나는, 지역에서 소문난 떡볶이 집을 찾아 동네를 결정한 적도 벌써 여러 번이다. 충정로의 ‘철길떡볶이’, 강남역의 ‘이쁜 할머니네 떡볶이’, 남가좌동 ‘신흥떡볶이’, 문정동의 ‘골목떡볶이’, 이수동 ‘애플하우스’, 정릉동 ‘숭덕분식’ 그리고 부평의 ‘모녀떡볶이’까지. 실제 소문만큼 다 맛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순위를 매기자면 ‘모녀떡볶이‘가 제일이었다.


검색을 했다. ‘떡볶이, 어디가 맛집이야?’ 그동안 내가 안 가봤던 동네를 중심으로 찾아봤다. ‘북가좌동? 가좌동의 북쪽이지?’ 처음 가 보는 동네였다. 북가좌동 최고의 떡볶이집은 ‘맛있는 집’이라고 나왔다. 상호명이 ‘맛있는 집’이다. 사진을 보니 반지하 주택건물인데, 일단 여기를 목표로 해서 전체 코스를 디자인했다.


떡볶이를 먹으러 가는 일은 중요했다. 결국 나를 그 동네로 인도하니까. 걷다 보면 그대로 직진하는 경우는 없다. 좁은 골목이 나오면 일부러 비집어 들어가 보고, 내천이 나오면 괜히 저기까지 돌아가서 사진을 찍어 온다. 한발 한발 그 동네를 밟다 보면, ‘언젠가는 누군가 들어주겠지’ 하면서 수십 년을 내내 외면받았던 땅바닥의 이야기들이 내 귀에 들어온다. 누구나 시인이 되는 순간이다.

계획: 마포 > 서울함공원 > 북가좌동 ‘맛있는 집’ > 가좌역 > 경의선숲길 > 마포 집으로 이어지는 총 15.6km



내가 미친 듯이 걷는 이유

집을 나섰다. 딸아이는 학원에 가고, 아내는 성당엘 갔다. 이제는 주일에 내가 나가든 말든, 아내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 처음에 약속했던 1년간의 걷기 프로젝트가 이제 4개월도 채 남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딱 1년만 하고, 그만둔다고 다짐을 했었다. 하지만 그만둘 수가 있나? 걷기를 멈출 마음은 없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오히려 이제는 가족을 걷기의 세계로 인도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정적인 아내를 움직일 수 있을까? 딸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요즘은 늘 걸으면서 그 생각이다. 아무래도 내 DNA의 절반을 갖고 있는 딸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미친 듯이 걸으면 내게 어떤 변화가 올까?


정말 순수했다. 목표는 없었다. 얼마큼을 걷겠다, 내 몸무게의 몇 kg을 빼겠다... 심지어는 이렇게 글을 쓰게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그저 1년을 미친 듯이 걸으면 무엇이 변해 있을까가 너무 궁금했다. 그래서 시작했고, 정말 미친 듯이 걸어왔던 것 같다. 이제 1년이 되기까지 4개월이 채 남지 않았다. 기록으로 보자면 2000km가 훌쩍 넘는다. 이때까지도 나는 무엇이 내게 주어지고 있는지, 변화되고 있는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대교와 천을 지나 북가좌동으로

한강 나들목을 빠져나와 성산대교 방면으로 걸었다. 요즘 날씨가 계속 잿빛이었는데, 오늘은 태양빛이 은은하다. 여의도 건물들도 오래간만에 한강물로 세수를 한다. 자기의 비친 모습을 보고 좋아한다. 아직은 날이 싸늘하지만 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서강대교북단, 밤섬 너머 여의도 파크원 건물과 IFC몰이 한강물과 마주한다. 그 앞으로 오리떼가 여유롭다
서강대교를 지나 양화대교로 - 겨울 나무들이 낙엽때를 한껏 벗기고, 새 봄을 기다린다
상수동 당인리 발전소 굴뚝에서 수증기가 한껏 피어오른다. 각 집에 따듯한 물을 제공하겠다고 제 몸에 한껏 불을 지피고, 남은 영혼을 구름에 태운다.


양화대교 남단에 이르면 머리에 삿갓을 쓴 듯한 교회 하나가 언덕 위에 우뚝 서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천주교회의 ‘절두산 순교 성지’이다.


나는 결혼 전, 천주교 신자가 되기 위해 약 7개월간 천주교 교리 교육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 명동성당의 수녀님께서 교육생들을 이곳 절두산 성지에 순례를 목적으로 데리고 온 적이 있었는데, 그게 벌써 17년 전 일이다. 그 뒤로는 한 번도 절두산 성지에 따로 와 본 적은 없었고, 이렇게 한강고수부지를 걸을 때마다 옛 추억을 떠올리고는 한다.


원래 절두산은 ‘머리가 잘린 산’의 의미 이전에 한강에서 가장 경치가 아름다운 언덕 중 하나였었다. 머리에 삿갓을 쓴 천주교회가 매우 인상적이다. 밤에 보는 교회의 모습은 엄중함을 넘어, 고즈넉한 온화함으로 세상을 풍요롭게 한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면서 때로는 잊었던 기도를 하고는 한다. ’평화를 빕니다‘

서울 마포구 합정동 - 절두산 순교성지의 낮과 밤



양화대교북단을 지나 이제 성산대교로 향한다. 성산대교에 이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서울함 공원의 ’서울함‘이다. 1985년 건조되어 취역한 대한민국 최초의 국산 호위함이다. 저 멀리서도 웅장한데, 가까이서 보면 그 정교함에 감탄하게 된다. 길이는 100미터가 넘고 승조원도 최대 105명까지 태울 수가 있다. 사실 난, 그 위까지 올라가 보지는 못했다. 유료인 이유도 있고, 걷는 데에 집중하다 보면 그냥 지나쳐버리기 일쑤다.

서울함 공원 내, 서울함의 낮과 밤


성산대교 남단을 지나면 곧바로 한강으로 합류하는 ‘홍제천’을 만난다. 홍제천을 따라 약 700여 미터를 올라가면 불광천과 합류하는 성산교에 이르게 된다. 그동안은 홍제천을 따라 연희동이나 서대문까지 걸어가 보았지만, 오늘은 홍제천과 합류하는 불광천을 따라 빠져나갔다. 지상에서만 보았던 서울월드컵경기장을 불광천 아래에서 올려다보니 새롭다. 불광천변을 따라 한참을 걸어 6호선 ‘증산역’까지 온 뒤, 불광천 도로 위로 올라왔다. 이제 북가좌동 마을로 들어가야 한다.

성산교 교량 아래, 홍제천변과 불광천변의 갈림길이다
서울시 서대문구 북가좌1동, 불광천변을 따라 운동하는 노인분들이 많다. 동네가 대체로 오래되었고 어르신들이 많이 사시는 편이다
백로 한마리가 겨울이 가는 것을 아쉬워하듯 서 있다. 증산역 부근에서 돌다리를 건너 불광천길로 올라왔다


‘맛있는 집’을 찾아서

오늘의 목적지인 ‘맛있는 집’은, 북가좌2동 내 빼곡히 들어찬 주택들 한가운데에 있다. 핸드폰으로 동네를 이리저리 굴려가며 주소를 쫓아갔다. 북가좌2동 대부분의 도로명은 ‘거북골로’ 불리는데, 이는 조선후기 종실인사 화산군 이연의 신도비(花山君 李渷 神道碑,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41호), 거북이돌상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또한 북가좌2동은 동네 전체에 다세대 주택이 밀집하여 있고 관내에 초중고등학교가 하나도 없다. 돌아다니다 보니 여기가 저기 같고, 저기가 여기 같고. 골목마다 한결같다.

북가좌2동, 서부운수종합자가정비업소. 도로명은 거북골로 이다


한참을 헤매어도 ‘맛있는 집’은 쉽게 발견되지 않았다. 다시 걸어온 길을 돌아가는 중에 반지하 주택 건물에 간판도 없는, 불 꺼진 음식점을 하나 발견했다. 맛은 있는데, 간판은 없는 ‘맛있는 집’이었다.


아뿔싸! 문을 닫았네?

닭 대신 꿩?

불도 꺼져있고 간판도 없이 반지하에 있다 보니 그냥 지나쳤던 거다. 오늘 쉬는 날도 아니고, 왜 쉬는지 문에 적혀 있지도 않았다. 분명 인터넷 정보에는 ‘연중무휴‘로 되어 있었다. 갑자기 기운이 쭈욱 빠졌다. 걸어온 길은 그렇다 쳐도, 메인 미션 하나가 없어지니 살짝 멘붕이 온다.

서울 서대문구 거북골로20길 55 지하 1층, ‘맛있는 집’은 안으로 들어가 있어 자칫 지나치기 쉽다


아쉽지만 떡볶이 시식은 여기서 포기해야 했다. 북가좌2동을 이리저리 돌았다. 정말 특이한 게 별반 없는 동네다. 장방형으로 구획이 일정하게 나뉘어져 있고 그 안으로 다세대 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꼬맹이 학교가 없어서인지, 동네 전체가 조용하다. 어쩐지 애들이 눈에 잘 보이지도 않더라. 하는 수 없이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오후 12시가 넘어가니 배가 한없이 고파지기 시작했다.


동네를 막 빠져나오려는 순간, 음식점 간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뭐랄까, 정말 수수한데 엄청 호기심이 생기는 메뉴? 일본 라멘집이다. 정보도 없이 와서 들어갈까 말까 하다가,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갔다. 그리고 나는 인생 라멘을 만났다.

[팩트체크, 서울 북가좌동 ‘도조라멘‘]



집으로 가는 길

북가좌동을 나와 불광천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오전에 왔던 길로 돌아간다. 다시 월드컵경기장을 지나 홍제천과 만나는 갈림길에서, 나는 이제 ‘홍제천’을 따라 걸었다. 날씨가 좋으니 예전에 걸었던 길도 새롭다. 가좌역의 사천교까지 와서 이제 동교동, 그리고 홍대 앞으로 건너간다. 동교동의 유명 카페에 들러 커피 한잔을 하고 싶었다. 그 순간 딸아이의 전화가 걸려왔다.


아빠! 언제 와?

“어! 아빠 이제 들어가고 있어!. 조금만 기다려. 맛있는 거 사 갈게 “

전화를 끊고 커피 마실 생각을 접었다. 그리고 방금 전에 지나쳤던 도넛 가게를 들어갔다. 내가 먹을 음식이 아님에도 한가득 사 들고 나왔다. 아빠가 떡볶이를 먹지 못한 하루를, 딸아이가 도넛을 먹는 하루로 만드는 것도 괜찮을 듯 싶었다. 사실 처음 사 가는 ‘올드페리도넛‘은 진작 유명하다고 알고는 있어서, 내심 기뻐할 딸아이 모습에 마음이 좋았다. 집을 떠나온 아침보다, 집으로 가는 길이 더욱 반갑다.

홍제천에서 나와 마포구 동교동으로 들어섰다. 꼭 가보고 싶었던 커피집이 있다
동교동에서 가장 유명하다고 해서 찾아 온, 그러나 이미 문을 닫은 ‘이미커피’
동교동 ‘딥커피’. 여기 커피라도 마시려고 흘끗 대는데, 전화가 울린다
처음 와 본, ‘올드페리도넛’ 연남점
잔뜩 사 들고 돌아가는 길이 행복하다


- 끝


대흥동 > 서울함공원 > 불광천 > 증산역 > 북가좌2동 > 홍제천 > 동교동 > 연남동> 대흥동으로 이어지는 총 거리 22.37km, 28,202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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