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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랑 친해져 볼까?

by 슈퍼엄마

학교 현장에서 만난 아이들 중에는 책이라면 표정부터 바뀌는, 책을 정말 싫어하는 아이들도 많지만 반면에 책을 정말 좋아하고 즐겨 읽는 아이들도 많다.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어떻게 책과 친해지게 된 걸까?

그 비법이 궁금해서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자주 물어본다.

"언제부터 책을 즐겨 읽었어?"

"어떤 책을 좋아해? 제일 재미있게 읽은 책은 뭐야?"

그러나 별다른 비법은 발견하지 못했다. 다만,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재미있게 읽은 책이 많았고, 책과 관련된 즐거운 경험들이 많았다. 생각해 보면 나도 마찬가지다.

어릴 적 부모님이 책을 읽으라고 강요한 적도 없었고, 독서 교육을 따로 시킨 적도 없다. 그러나 어릴 적에 엄마께서 외판원의 등쌀에 못 이겨 구매한 애니메이션 전집이 있었는데 그걸 무척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재미있게 읽은 책이 하나둘 늘어나고 책에서 위로받고, 감동받은 경험들이 하나둘 쌓이면서 책에 대해 긍정적인 마음이 커졌다. 친구들, 선후배들과 함께 한 독서 동아리 활동은 학창 시절 가장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런 즐거운 기억이 다시 책을 찾게 만들었다.


나는 수업시간에 아이들에게 그런 경험을 제공하고 싶었다. 말에게 물을 먹이지는 못하더라도 물가까지 끌고 갈 수는 있다. 거기까지가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어떻게 아이들을 물가로 끌고 갈 수가 있을까?


처음부터 '하루에 몇 권 읽기' 이렇게 강요를 하거나 '책 읽고 독후감 쓰기'같은 부담스러운 방법으로는 아이들이 책과 친해지기 어렵다. 그리고 '책 읽으면 뭘 해줄게' 이런 보상 행위는 오히려 아이들의 내적 동기를 낮춰 책 읽는 즐거움을 자체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쉽지만 효과가 확실했던 네 가지 방법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첫째 독서환경 만들어주기.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물어보면 집에도 책이 많다고 한다. 부모님이 책을 좋아하셔서 책 읽는 모습을 자주 본다고 하는 아이도 있다. 그만큼 환경이 중요하다. 그래서 국어시간에 도서관에 자주 데려간다. 도서관 활용 수업을 계획하기도 하고, 주 4회의 국어시간 중에 1시간은 따로 떼어서 독서시간으로 구성한다. 아이들은 교실보다 도서관에서 책 읽는 것을 선호한다. 도서관의 자유로운 분위기 때문인 듯하다. 요즘은 도서관보다 카페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많은 것도 그런 이유인 것 같다. 나 역시 카페에서 공부할 때 기분 전환도 되고 집중이 잘 되었던 경험이 있다. 그리고 도서관에 갔을 때 곁에 있던 친구가 "야 저 책 나 읽어봤는데 엄청 재밌어~" 하고 추천해 주면 슬쩍 관심을 보이며 책장을 넘겨보기도 한다.

꼭 도서관에 가지 않더라도 자투리 시간에 책을 볼 수 있도록 학급에서도 학급문고를 만들기도 한다. 커다란 여행가방 트렁트에 외판원처럼 책을 가득 담아 끌고 다니며 언제라도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수업이 좀 일찍 끝나는 날엔 트렁크를 활짝 열어 보이며 책을 읽자고 하면 관심을 보이며 책을 구경하고 뒤적이는 아이들이 생기곤 했다. 사람도 자주 보면 정들 듯이 그렇게 책과 정들기를 바랐다.

도서관에서 책 읽기

둘째, 읽고 싶은 책 스스로 선택하기

책을 좋아하는 나도 '중학생 필독서' , '00 대학 추천도서'에는 손이 잘 가지 않았다. 정말 좋은 책들인데 읽으라고 권해주면 갑자기 읽기 싫어지는 건 사춘기의 특성인가 보다. 그래서 책을 아이들이 직접 고르게 했다. 자신의 관심사와 수준에 맞는 도서를 선택했을 때 완독 확률도 높아지고 책 선택의 성공 경험이 늘어날수록 지속적인 독서로 이어질 확률 역시 높다. 인간은 자신이 선택할 것에 가치를 부여하고 스스로 책임지려고 한다는 심리학 근거도 있다. 그러나 독서 경험이 없는 아이들은 책을 고르는 것조차 어려워한다. 자기 수준에 맞지 않는 책을 고르거나 관심이 없는 영역의 책을 골라 읽으며 오히려 "책은 역시 나랑 안 맞아!!"라고 확인만 하고 책을 덮게 된다. 이런 경우는 몇 권을 골라주고 그중에 선택하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책을 골라본 경험이 없는 친구들에게 너무 많은 선택지는 오히려 독이 되었다. 그래서 내가 학생들의 수준에 잘 맞는 재미있는 책을 몇 권을 먼저 고른 다음에 그중에서 고르도록 했다. 이 방법은 엉뚱한 책을 골라와 실패할 확률을 낮춰주면서도 학생에게 선택권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효과적이었다. 특히 또래 친구들이 재미있게 읽었다는 책들을 잘 정리해 두었다가 목록으로 구성하면 효과가 좋았다.


셋째, 진입장벽은 낮을수록 좋다.

스몰스텝- 변화를 원한다면 그 실행은 아주 작고, 가볍고, 부담이 없는 것으로 시작하라는 것이다. 작게 시작하여 진입장벽을 낮추는 것이 중요하다.

처음부터 아이들에게 책 한 권을 들이밀기보다는 수업시작 전 10분 책 읽기, 하루 한 장 책 읽기처럼 ‘이 정도는 할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 심리적 거부감이 낮게 시작하는 것이 좋다. 처음에는 하루 1장만 읽어야지.. 하고 시작했으나 막상 읽다 보면 그보다 더 많이 읽게 된다. 겨우 그 정도로 무슨 변화가 있을까 싶겠지만 매일 10분 책 읽기를 몇 년 간 한끝에 책을 쓴 저자가 된 분도 있다.

또한 중학생에게 초등학생용 동화책이나 중학생도 재미있게 읽을 만한 그림책을 보여주기도 한다. 책이라면 어렵고 읽기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이 정도면 읽을 만하다'는 마음이 들 수 있도록 하면 선뜻 읽는 경우가 많고 의외로 재밌다는 반응도 많았다. 그러니 처음부터 무리한 욕심을 버리고 진입 장벽을 낮게 설정하자.


넷째, 친구와 함께 읽기

동료의 행동과 사고방식에 영향을 받아 개인의 행동이 변하는 것을 가리켜 동료효과라고 한다. 청소년 시기에 동료효과의 힘은 매우 크다. 친구랑 같이 읽으면 읽기 싫어 포기하고 싶다가도 친구의 다독임에 좀 더 읽어보기도 하고, 읽다가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서로 물어보고 설명해 주면서 읽어나가기도 한다.

실제로도 개인별 독서활동을 할 때보다 모둠별로 할 때 완독률이 더욱 높아졌다. 함께 읽는다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동기부여가 된다. 선생님의 열 마디보다 친구의 한마디가 더욱 효과가 큰 시기이다.


책과 친해지는 방법을 네 가지 이야기했는데 여기에는 세심한 배려와 관심, 관찰이 필요하다. 내가 독서 수업을 하면서 느낀 것은 책을 원래 싫어하는 아이는 없다는 것이다. 단지 책의 재미를 경험해보지 못한 아이가 있을 뿐이다. 재미있는 책을 읽어본 경험 자체가 매우 소중하다. 책 한 권을 재미있게 읽어본 경험이 있는 아이는 당장은 아니더라도 성인이 돼서도 그 좋았던 기억으로 다시 책을 찾는 어른이 될 수 있다. 또 그런 어른으로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자유분방한 소년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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