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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연 Feb 18. 2020

보고의 언어 : 세 종류의 악당을 피하기

인지적 구두쇠, 필터, 복잡성 선호


첫 번째 파트(소통) 중 #보고의 언어 부문입니다.


“상대방에게 정확한 언어로 소통하는 것은 무척 까다로운 일입니다. 세 가지 악당이 기세등등하게 막고 있거든요.    

악당들의 이름은 ‘모두 다른 필터, 인지적 구두쇠, 모호함 선호' 입니다.

일의 언어를 배울 때는이 악당들과 싸울 각오를 단단히 하셔야 합니다.”


# 정확히 소통하는 건 꽤 어려운 일입니다


송배전 손실률(Transmission and Distribution Loss Factor)이라는 전력 용어가 있습니다. 전기가 A에서 B로 이동할 때 중간에 사라지는 비율을 나타냅니다. 예를 들어, 발전소에서 100만큼 전기를 보냈는데, 우리 집에 30만 도착했다면 손실률은 70%입니다. 손실률이 높으면 발전소에서 아무리 풍부한, 양질의 전력을 보내도 길바닥에 대부분 버려집니다.


직장에서도 이런 낭비는 흔하게 일어납니다. 우리는 매일 머릿속 생각을 상사에게, 부서원에게, 고객에게 쉴새 없이 말합니다. 그런데 이 송배전에 자꾸만 오류가 생깁니다. 열심히 노력한 성과가 허무하게 버려지는 겁니다. 손실률이 50%라면 업무의 절반이 날아가는 수준입니다.


   “에이, 설마 소통 오류 때문에 50%나 손해 보겠어요?”     


상대방의 의도를 정확히 모른 상태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다가 중간쯤에  ‘아니, 제가 얘기한 건 그게 아니고.’ 라는 식의 핀잔과 함께 전면 재수정하는 일은 흔한 일입니다. 그 전까지의 노력은 제로가 되는 거죠.


외국인 대상의 치킨 페스티벌을 위해 막내 직원에게 치킨 구매를 시켰더니, 가장 요즘 유행인 극강의 매운맛 치킨을 준비하는(외국인은 입도 못대는) 웃픈 상황 같은 일도 종종 벌어집니다. 외국인이란 단어를 제대로 듣지 않았거나 외국인이 매운맛을 못 먹는다는 지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작은 소통 오류 하나로 담당자의 몇 주간의 노력이 한순간에 날아가는 겁니다.

네가 범인이구나 (사진 : 웹툰 용이 산다)


이처럼 소통 오류는 무척이나 비쌉니다. 고생해서 쌓은 노력을 한순간에 날아가게 만드는 파괴력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아래의 질문을 늘 고민해야 합니다.


  어떻게 머릿속 생각을
상대방에게 단순하고 정확하게 얘기하지?    


도대체가 쉽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혼란을 일으키는 악당들이 기세등등하게 온갖 곳에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 소통을 막는 악당 3총사 : 필터, 인지적 구두쇠, 모호함 선호     


첫 번째 악당(Villain) : 모두가 다른 필터

  

첫 번째 악당은 사람마다 다른 필터입니다. 인지과학에 따르면 우리는 정보를 처리할 때 원석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자기의 경험과 지식에 비추어 해석하고, 기억하며, 판단합니다. 그러니 같은 말을 들어도 사람마다 다른 해석을 내리게 됩니다. 문제는 여기에서 결정적인 소통의 오류가 생겨난다는 겁니다.


다음은 길 위에 우주선 모양의 아이콘이 길 위에 세 개가 나란히 있는 그림입니다.


어느 우주선이 앞에 있는지 맞춰보시겠어요?                     

* 출처 : EBS 다큐멘터리 동과 서


 <EBS 다큐멘터리 동과 서>에 따르면 동양인은 가장 크게 보이는 우주선을 앞에 있다고 얘기하고, 서양인은 가장 작게 보이는 우주선을 앞에 있다고 얘기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똑같은 정보를 보더라도 자라온 문화에 따라 정확히 반대의 해석을 하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가장 앞에 있는 우주선이 A 고객사의 제품입니다’라는 식으로 얘기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누구는 가장 큰 우주선을, 누구는 가장 작은 우주선을 보고서 고개를 끄덕일 겁니다. 심각한 오류가 생겨나는 거죠. 나중에 제품을 받아본 고객이 약속과 다르다며 컴플레인을 할 겁니다. 우리는 ‘정확’하게 말했다고 확신하겠지만 말입니다.      

일을 그렇게 망쳐놓고...웃어? (사진 : 픽사베이)

두 번째 악당(Villain) : 인지적 구두쇠 cognitive miser     


두 번째 악당은 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입니다. 이 개념은 미국의 수잔 피스크 교수와 셸리 테일러 교수가 1984년에 발표한 후 유명해졌습니다. 구두쇠가 ‘돈’을 아끼듯이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아끼는 경향이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바른 판단을 내리려면 주의 깊게 관찰하고, 정보를 꼼꼼하게 수집하고, 우선순위를 매기는 등의 일을 해야 하는데, 이런 과정은 뇌에 부담을 주는 일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웬만해서는 골치 아프게 생각하는 걸 가능한 한 피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인지적 구두쇠를 매일 일터에서 목격합니다. 많은 사람, 특히 우리의 상사와 클라이언트는 우리의 얘기를 집중해서 듣지 않는 게 습관이 되어 있습니다. 그들에게 ‘을’인 우리와의 대화는 기본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분류됩니다. 무심하게 듣다가 중요한 얘기가 나오면 그때 집중하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심지어 소비자는 더 구두쇠입니다. 소비자와 소통하는 사람은 상사나 클라이언트가 ‘그나마 듣는 척’이라도 하던 것과는 달리, ‘아예 안 듣고 있는’ 끝판왕을 경험하게 됩니다.      

가면하고 헬멧 때문에 못 들었어 (사진 : 픽사베이)

세 번째 악당(Villain) : 모호함과 복잡성의 선호     


세 번째 악당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는 사실 모호함과 복잡성을 좋아합니다. 아니라며 펄쩍 뛰지만, 진실이 그렇습니다. 단순하고 명확하게 얘기하는 것보다 흐릿하고 모호하게 말하는 게 훨씬 쉽고 마음이 편하기 때문입니다.     


  Q : 예산이 얼마 듭니까?


  A : 3억 원 정도 듭니다(단순/명확)

  B : 꽤 들 것 같습니다(복잡/모호)     


  Q. 이번에 어떤 컨셉으로 할 건가요?


  A : 최근 P 사의 광고 보셨죠? 그것처럼 유머 코드로 할 생각입니다. 20대 호응이 좋더라고요(단순/명확)

  B : 젊은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취향으로 하려고요(복잡/모호)     


 A처럼 단순하고 명확하게 말하는 것보다 B처럼 모호하게 말하는 게 훨씬 쉽습니다. B는 제대로 몰라도 할 수 있는 대답이며 결국 아무 말도 안 한 셈이기 때문에 나중에 트집잡힐 일도 없기 때문이죠. 그러니 의도적으로 이 악당과 싸우지 않으면 우리는 자꾸만 모호하게 말하는 자신을 발견할 겁니다.



자, 이제 여러분은 일의 언어를 배우기로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말씀드린 세 종류의 악당들과 싸울 각오를 단단히 하고 시작하시길 바랍니다.


용사여. 힘을 내세요.     

“내가 무슨 말을 했느냐가 아니라 상대방이 무슨 말을 들었느냐가 중요하다”     
 
피터 드러커(경영학의 거장)     

일하는 사람의 언어 도구로 '진짜 워라밸'을 얻고 싶으신 분께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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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잘하는 사람은 단순하게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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