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잠시 멈춤
임신과 출산 경험에 비하면,
뭐 그리 힘들겠나 싶었다.
평소 폐경기가 오면 의연하게 맞으리라 생각했다. 그런 일로 나 자신을 괴롭히고 싶지는 않다고 말해왔다. 머리를 꼿꼿이 들고 당당하게 폐경에 대비하는 고상한 내 모습을 상상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중년, 잠시 멈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몰랐다
누구도 말해 주지 않았던 폐경기
환영 할 일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열네 살부터 26일 주기로 400번 이상 치러온 출혈이 멈추는 것을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목이 뒤틀리는 듯한 통증 때문에 허구한 날 누워 지내고 몇 번이나 입원할 만큼 유난히도 힘든 임신과 출산에 분연히 맞섰던 것처럼, 언젠가 찾아올 폐경기도 거뜬히 감당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임신과 출산 경험에 비하면, 뭐 그리 힘들겠나 싶었다.
자궁근종과 수술로 맞게 된
단도직입적인 사건
나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폐경을 맞았다. 괜스레 미안해하는 의사들에게 그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의사들이 내 자궁을 절개하고, 감귤 한 봉지 정도의 무게가 나가는 수많은 자궁근종과 함께 난소들까지 들어낸 후에. 나는 마흔아홉 살을 코앞에 두고 생식 기능을 잃은 충격에 빠졌다. 수술 동의서에 서명하기 위해 잠시나마 끌어 모았던 일말의 자존감(두려움으로 가득 찬 마음을 이렇게 표현해도 된다면)은 산산조각 나서 병원 바닥으로 흩어졌다.
여성은 저마다
모두 다른 폐경을 맞는다
폐경기 전조 증상이 모든 여성에게 뚜렷이 나타나는 건 아니다. 어떤 여성들은 폐경이 시작되면서 미묘하게 체력이 고갈되어간다는 느낌만 받을 수도 있다. 그런 여성들에게 폐경은 정지라기보다는 감속에 가깝다. 투석기로 휙 내던져지는 것이 아니라 부드럽게 새 집으로 이끌려 가는 것처럼, 일순간에 완전히 멈추는 것이 아니라 은연중에 서서히 줄어드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단계적으로 폐경이 진행되는 여성들에게는 충격이 좀 더 느지막이 찾아온다. 직접적인 지진은 피하되, 좀 더 충격이 적은 지진 여파를 겪게 되는 것이다.
폐경은 직업적 성취, 엄마 노릇,
배우자 역할, 친구 관계 등을 위협하며
끊임없이 시끄러운 요구들을 해댔다.
폐경이란
귀찮은 일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힘겹고 성가신 상태가
계속되는 것
그것은 내가 이미 중년기에 접어들어 묘기를 부리듯 불안하게 이끌어가던 모든 것, 그러니까 직업적 성취, 엄마 노릇, 배우자 역할, 친구 관계 등을 위협하며 끊임없이 시끄러운 요구들을 해댔다. 폐경이란 귀찮은 일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몹시 힘겹고 성가신 상태가 계속되는 것이었다. 그런 사실을 알아차리기 무섭게 엄청난 괴력이 나를 뒤흔들었다.
저자 소개: 마리나 벤저민
저널리즘, 글쓰기, 가족 이야기, 회고록을 비롯하여 다양한 논픽션 분야의 글과 저서를 발표하고 있는 작가이자 저널리스트. 《이브닝 스탠다드》와 《뉴 스테이츠먼》에서 아트디렉터로 활동하면서 영국 유수의 신문에 다양한 주제의 글을 기고해왔으며, 최근에는 디지털 잡지 《이온》의 선임에디터로 일하고 있다.
‘쉰’을 바라보면서 나이 듦에 대한 진솔한 생각을 담아낸 『중년, 잠시 멈춤』은 젊음, 에너지, 성욕, 외모, 부모님, 미래에 대한 자신의 경험담을 풀어놓는다. 쉰을 앞둔 나이에 잃게 된 것들과 중년의 고민을 그리는 한편, 인생의 전환기에 새로운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오롯이 담아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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