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뭐냐?'라고 묻는다면 나는 늘 그 사람을 생각하는 거라고 답한다.
사랑의 정의가 그렇다면 나는 지금 두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 헤어진 남자친구를 A, 34년 인생 가장 많이 사랑한 남자친구를 B라고 하겠다.
B는 연애에 최적화된 사람이었다. B는 주로 연상을 만났다고 했다. B의 전 여자친구들에게 감사할 정도로 그는 잘 만들어진 사람이었다. 눈치가 빨랐고, 소소한 이벤트를 잘 해주었다.
예를 들면 같이 술을 마시다가 화장실을 간다면서 대뜸 꽃다발을 사들고 왔다.
그의 집에 처음으로 요리를 해주러 간 적이 있었다. 그날도 그는 퇴근하면서 꽃을 사들고 왔다. ‘집에서 요리하는 자기 모습을 생각하니 빈손으로 갈 수 없었다.’ 다정하게 적힌 손 편지와 꽃다발을 건넸다.
주기적으로 꽃을 선물하는 센스는 물론 사람을 놀라게 하는 기획력도 있었다. 어느 날은 같이 방 탈출 게임을 하러 갔는데 마지막 관문에서 대뜸 캘빈 클라인 쇼핑백이 나왔다. 그가 회사에서 인센티브를 받은 기념으로 건넨 선물이었다.
A는 5년 동안 연애를 쉬었다고 했다. 우리는 두 번째 만남에 양평을 갔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는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저를 알아보는 중이겠죠." 내가 답했다.
"맞아요. 그런데 이제 생각을 끝낼게요. 다음번엔 우리 연인으로 만나요."
솔직하면서도 서툰 그의 고백이 좋았다. 나는 꽃이라도 주면서 고백하라고 대답을 유보했고, 그다음 만남에 우리는 연인이 됐다. 그러면서 그는 사실 돈 주고 꽃을 사는 게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오글거리는 말보다는 실질적인 행동으로 보여주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에게서 받은 로맨틱한 선물은 없다. 다만 나를 위해 매일 밤 머리맡에 물을 놓아준 것,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흠뻑 젖은 나의 구두를 손수 빨아준 것, 말없이 나의 시트를 따뜻하게 데워준 것들이 그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이상형을 물어볼 때 나는 늘 다정한 사람이 좋다고 말한다. A와 B, 둘 중 누가 더 다정한 걸까?
위의 글은 내가 A와 헤어지고 나서 적은 글이다.
이별 후 글을 쓰면 좋은 점은 과거 내 감정을 선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는 거다. 3년을 만난 사람과 3개월을 만난 사람을 일직선상에 두고 생각했구나. 전 연인에게 꽤나 진심이었구나.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글쓰기를 취미로 두면 좋은 점은 복잡하고 힘든 마음을 정리할 수 있다는 거다. 눈물로도 쏟지 못한 감정을 문장으로 한껏 토해내다 보면 어느새 괜찮아진 나를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