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에 연락 온 전남친, 그리고 그의 엄마

우연처럼 시작된 재회, 악몽처럼 끝났다

by 왼손별
결혼을 약속했던 사람이 있었다.
헤어진 지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를 떠올리며 울던 밤이 많았다.
얼마 전, 그 사람에게 연락이 왔다.
나는 다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혹은 또 다른 상처의 시작일까?


"H 오빠는 연락 없어?"

나의 결혼을 누구보다 응원하는 친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H. 3년을 만나 결혼까지 결심했던 사람이었다. 얼마 전까지도 내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다. 친구들이 언젠가 H와의 결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를 물어봤다. 나는 이렇게 답했다.

"이 오빠랑 있으면 이전 남자친구들이 전혀 생각 안 나.
결혼을 결심하고 한 번쯤은 '다른 사람 더 만나볼 걸' 아쉬울 수도 있잖아?
이 오빠를 만나는 동안은 그런 생각이 전혀 안 나더라.
송강이나 박보검이 나를 좋다고 해도 난 오빠를 선택할 거야."


치열하게 싸우다가도 눈 한 번 마주치면 웃음이 나는 사람이었다.

퇴근 후 삼겹살 먹고 싶은 타이밍이 통하는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에겐 차가워도 나에게만은 따뜻한 사람이었다.

집에 있는 게 좋은 내향적인 사람이었지만 나와는 곳곳을 여행했다.

우리는 서로를 가족, 그 이상으로 의지했다.

그렇게 사랑했던 우리도 헤어졌다.

결혼식을 두 달 앞두고.


"H 오빠도 힘들게 지낸 것 같더라고."

헤어진 지 3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서로를 그리워했다. 나는 H와 헤어지고 1년 간 H에게 주기적으로 연락을 했다. 그는 매번 받아주지 않았는데, 헤어지고 3년이 지난 후에 연락이 왔다.

더 노력하지 않고 떠나서 미안했다고, 많이 후회했다고, 보고 싶다고, 다른 인연을 못 만나고 있다고.

나 역시 그의 문자를 받았을 때 연애를 하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여전히 그를 그리워했기에 어쩌면 재회의 신호라고 생각했다. 결국 우린 돌고 돌아 다시 만날 인연이라고 믿었다.


"H와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아닐지 고민 중이야. 한 달 뒤쯤 만나볼까 해."

친구에게 H와의 관계에 대해 털어놓을 때였다.

운명의 장난처럼 전화가 걸려왔다.

H의 엄마였다.

1시간을 통화했다.

통화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 파혼의 귀책사유는 나에게 있으니 사과와 해명을 들어야겠다는 것.
- H가 여전히 힘들어하고 있으니 둘이 다시 만나는 게 좋을지 나를 만나 본 뒤 판단하겠다는 것.

전화를 끊고 생각했다.

"아, 나 잘 헤어졌던 거네."


H 엄마의 전화를 받고 몇 주간 힘든 시간을 보냈다. 처음엔 H와의 재회가 시작도 못한 채 불발됐다는 게 속상했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다시 생각해 보니 H의 엄마에게 오히려 감사했다. 덕분에 내 이상형 리스트에서 H는 완전히 사라졌다. 재회를 위한 불필요한 감정 소모도 하지 않게 됐다. 이제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다른 이성들을 만나고 있다. 헤어진 지 3년 만에 H와 나는 완전히 이별을 한 셈이다.


아이유 '아이와 나의 바다' 첫 소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아물지 않는 일들이 있지."

H와 내가 서로에게 준 상처는 어쩌면 평생 아물지 못할 수 있다. 그저 묻어두고 사는 거겠지.

그럼에도 상처를 묻을 용기를 갖게 됐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가끔은 자의로 끊어낼 수 없는 관계를 대신 잘라줄 악역도 필요하다.



글을 쓰며 마음을 위로해 준 노래 한 곡을 남깁니다. 아이유 - '아이와 나의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