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도 없이 뛰기 시작한 마음
설렘은 20대의 감정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어느 날, P가 나타났다.
서로 너무도 달랐지만, 그래서 더 끌렸다.
이 감정 괜찮을까?
#1. P와 나는 술자리에서 우연히 만났다.
우리는 서로 닮은 배우를 찾아내며 가까워졌다.
"몇 살이에요?"
P는 나보다 5살이 어렸다.
"저는 그쪽 마음에 드는데, 번호 줄 수 있어요?"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만, 그의 핸드폰에 내 전화번호를 눌렀다.
"우리 내일 만날까요? 선약 취소할게요."
기다리게 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바로 다음 약속을 잡는 게 좋았다.
#2. 다음 날 우리는 다시 만났다.
P와 나는 MBTI 네 글자가 모두 달랐다.
"저는 누가 뭐라 하면 이렇게 생각해요. '알 바야?'"
"와, 너무 부럽다. 저는 누가 뭐라 하면 일주일 이상은 곱씹어요."
"무슨 생각을 하는데요?"
"어쨌든 그 사람도 나를 위해서 해준 말이잖아요. 왜 그런 말을 한 걸까, 나는 뭘 고쳐야 할까, 뭐 이런 생각들?"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시네요."
나는 P의 쿨한 면모가 좋았다. P는 나의 따뜻함을 좋아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점에 끌렸다.
나는 줄곧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1등이 되고자 노력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1등이 못 됐을 때 크게 좌절한다면, P는 노력을 줄이고 2등의 길을 걷고자 하는 사람이었다.
어쩐지 P의 삶의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P와 대화를 하고 있으면, 애쓰면서 사는 나에게 "괜찮다"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3. "책 읽는 거 좋아하나 봐?"
P가 내 가방 속에 있는 책을 보며 말했다.
"나도 이 책 읽었어. 나는 철학 관련한 책을 좋아해."
최근 들어 책을 읽는 이성을 만난 게 오랜만이라 신기했다.
책 읽는 취향이 비슷해서일까, P와 대화하는 재미에 빠져들었다.
#4. 우리는 매일 밤 통화했다.
용건 없는 전화를 싫어하던 내가 침대에 기대 2시간을 넘게 떠들었다.
"이제 끊어야 해. 나 잘 시간이야."
"아, 30분만 더 하자! 30분만 시간 좀 내주세요."
나의 루틴을 깨는 일인데도 웃음이 났다.
그렇게 우리는 새벽 1시까지 대화를 이어갔다.
P와 시간을 보내면 머릿속에 가득 찼던 걱정과 고민들이 사라졌다.
#5. "우리 바다 보고 오자!"
계획형 인간인 내가 즉흥적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목적지가 없는 여정도 꽤 매력적이라는 걸 알게 됐다.
여행을 다녀온 뒤 나는 다이어리에 이렇게 적었다.
나는 20대의 나보다 30대의 내가 좋았다. 감정의 기복이 그리 크지 않고,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내 취향을 알아가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채울 수 있는 일상이 평온하고 행복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마음이 또 뒤숭숭해졌다.
좋아한다는 게 이런 건가. 아니면 내가 아직 어른이 덜 된 걸까.
2년 전 나는 사랑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늘 그 사람을 생각하는 것'
그리고 언젠가부터 내 머릿속이 P에 대한 생각으로 지배되기 시작했다.
30대 중반에도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구나.
신기했다. 그런데 왜인지 조금 무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