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기고 싶은 이야기
"누가 대체 범인이야, 물어봐 어머니
엄마 저기 쟤야 하고
손가락 끝이 가리킨 것은 거울이었지"
─ 비오, '지나고 보면'
사랑 앞에서 작아지는 나, 사소한 말에도 방어적으로 반응하는 나.
그 끝에는 오래전부터 마주하지 못한 진짜 '범인'이 있었다.
가장의 역할을 내려놓은 아빠가 문제였을까,
나에게 아빠라는 상처를 건드린 친구가 문제였을까,
나의 비밀을 나눌만한 연인을 못 찾은 게 문제였을까.
아직도 아빠가 남긴 상처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내가 문제였다.
#1. 소개팅을 하고 3번쯤 만났을 때 상대방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처럼 가족들한테 지원을 많이 받고 자란 사람들은 남들한테 잘 베풀 줄 알더라고요."
평범한 말이었다. 나를 칭찬하고자 건넨 말이었다.
그런데 나는 대뜸 이렇게 쏘아붙였다.
"가족들 지원 많이 받고 자라셨어요? 저는 아니어서요."
#2. 결혼 전제로 만나자고 했던 누군가에게 원하는 조건을 물은 적 있다.
"그냥 화목한 가정에서 자랐으면 됐죠. 충분히 그렇게 자랐을 것 같은데."
'화목한 가정'이라는 단어에 나는 마음의 문을 닫아 버렸다.
늘 그랬다. 좋아하는 마음이 커지면 내 상처를 들킬까 전전긍긍했다.
어쩌면 '내 이상형 조건의 1순위는 경제적 여유가 아니다'라는 말도, 나의 상황을 방어하기 위한 변명이었을지 모른다.
내 비밀을 아는 사람들은 말한다.
누구나 말 못 할 비밀은 갖고 산다고. 비밀의 크기와 모습이 다를 뿐이라고.
그러니 내가 주로 작아지는 상황들, 이를테면 우리 아빠와 가족에 대해 주눅 들지 말라고.
머리로는 수백 번 이해했는데 실전엔 약하다.
결국 발목을 잡고 있는 건, 나 자신이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다.
부모님이 젊은 나이에 결혼했기 때문에 조부모님의 지원까지 받을 수 있었다.
동생들은 다니지 못한 사립 초등학교에 다녔다.
잘 먹고 잘 자라, 부족함 없이 배웠고, 지금의 내가 됐다.
마치 나는 지금의 내가 세상에 뚝딱 생겨나서 내 힘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만 같은 착각을 했다.
내가 가족들에게 받은 사랑을 망각한 채.
넷플릭스 드라마 '미지의 서울' 4화에서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사슴이 사자 피해 도망치면 쓰레기야? 소라게가 잡아먹힐까 봐 숨으면 겁쟁이야?
다 살려고 숨는 거잖아. 살자고 하는 짓은 다 용감한 거야.
왜 나는 나를 가장 지켜야 할 순간에 스스로를 공격하는 걸까.
남이 되어서야 알았다, 나의 가장 큰 천적은 나라는 걸.
내 상처를 할퀴고 있는 범인은, 결국 나 자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