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진 않아도 일단 버티는 중입니다

조용히 나를 일으켜 세운 시간들

by 왼손별
나만의 방공호에서 충전을 마치고,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그런데 뭐부터 해야 하죠?


몸은 참 정확하다.

고민이 많아 잠을 잘 못 잤더니 얼굴에 뾰루지가 올라왔다.

뾰루지를 짜면 안 된다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손은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아직 건드리지 않아야 할 때였다.

그럼에도 최선을 다해 뾰루지를 짜냈다.

결과는, 코 옆에 생긴 커다란 흉터였다.

예측된 결과였다.


약국에서 일하시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흉터 없애는 연고 뭐가 좋아요?"

"왜? 어디 다쳤어?"

"여드름을 짰는데, 흉터가 너무 크게 남았어요."

"그건 피부과 가야 돼."

"알죠. 근데 피부과 비싸잖아요. 좋은 연고 좀 추천해 주세요."

"여드름 흉터는 잘 안져. 이제 나이도 있으니 더 안 지겠다. 빨리 피부과 가 봐."

"피부과 가면 레이저 치료를 받으라 하겠죠. 한 번에 없앨 수 없으니 여러 번 받으라 할 거고. 그럼 돈이 얼만데. 돈 쓰기 싫으니까 좋은 연고 추천해 달라고 엄마한테 전화한 거잖아요!"

또, 엄마가 뭘 잘못했다고 신경질을 내버렸다.

빨리 회복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정상으로 돌아오고 싶은 나의 욕심 때문이었다.


다음 날 엄마는 집 우편함에 연고를 두고 갔다.

그리고 매일밤 연고를 열심히 발랐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가르마 바꿨네? 예쁘다."

기분을 전환하기 위해 사소한 것부터 바꿔 나갔다.

잘 자기 위해 운동을 했고,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아침 묵상을 했고, 감정을 비우기 위해 글을 썼다.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면서 나를 채워갔다.


내가 채워지니, 당연히 했어야 하는 것들이 떠올랐다.

친할머니·할아버지 찾아뵙기.

결혼이 엎어지고, 그 이후로 안 뵀으니 약 3년 반을 친할머니댁에 안 찾아간 거였다.


"우리 첫 손녀, 왜 이제 왔어."

할머니는 나를 우연히라도 보고 싶어서, 내가 일하는 회사 근처를 돌아다니셨다고 했다.

몇 번이나 회사 주변을 서성이셨다고 했다.

연락을 하면 부담이 될까, '잘 지내라' 마음속으로 빌기만 하셨다고 했다.

"넌 여전히 예쁘구나. 너 태어났을 때 온 동네가 난리난 거 말했지?"

할머니의 오래된 레퍼토리가 시작됐다.

내가 태어났을 때 너무 예뻐서 동네 사람들이 줄줄이 딸을 낳았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

"할머니가 보니까 너만치 예쁘고, 똑똑하고, 가족들한테 잘하는 애를 못 봤어. 그러니 절대로 어디 가서 기죽지 말어.

지금 당장 힘들다고 아무나 만나지 말고, 충분히 재고 따져.

누가 아빠를 뭐라 하거든 다 할머니 잘못이라고 해."

할머니의 걱정을 덜어주고 싶어 나는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할머니, 저 좋다는 사람들 줄 섰어요!"

그 말에 할머니, 할아버지, 나는 소리 내어 웃었다.


나라는 세상이 무너질까, 내 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나를 채워주고 있었다.

그러니 툴툴 털고 일어나자.

그리고 일단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해 나가자.



글을 쓰며 마음을 위로해 준 노래 한 곡을 남깁니다. 키드 와인(Kid Wind) - '있어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