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잘 버텼다는 작은 증거
[서른여섯, 이상형 찾기] 지난 이야기
3년 반을 만나 결혼을 약속했던 사람과 헤어졌다. 미련을 놓지 못하다가, 헤어진 지 3년 반 만에 우리는 진짜 이별을 했다.
어느덧 내 나이는 서른여섯. 평생을 함께하고 싶은 사랑을 찾고 싶었다. 그런데 이상형을 모르겠다.
소개팅도 하고, 인연이 닿은 사람들과 여러 번 만났지만, 쉽게 마음을 열지 못했다.
그러다 오랜만에 설레는 상대가 나타났다.
그런데 왜 이렇게 겁이 날까?
이상형을 찾는 것보다 중요한 건 나의 상처로부터 자유로워질 일이었다.
다시금 나를 정비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는 요즘이다.
#1. 8년 지난 뒷담화
전 직장 동료들을 만났다. 우리는 전 직장에서 프리랜서로 일했다.
서로의 근황을 나누던 우리는 별안간 A 선배 이야기를 꺼냈다.
"이제야 말하지만, 나 A 선배 너무 싫었어."
"헐! 언니 저도요. 저 A 선배한테 사무실 한복판에서 대차게 혼났던 거 알아요? 정말 별 거 아닌 이유였는데, 사람들 다 들리게 혼나니까, 마치 제가 일을 엄청 못하는 사람이 된 기분이었어요."
"그랬어? 나한테는 '아무도 안 보는 기사 누가 쓰냐'라면서 비웃었던 거 있지?"
"그 선배 다른 정직원 후배들한텐 평판 엄청 좋았잖아요. 근데 우리는 은근히 무시하는 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은근히가 아니라 대놓고였지."
8년 전 이야기였다.
당시에도 우리는 충분히 친했지만, A 선배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었다.
그땐 누구를 욕할 힘도 없었다. 우리는 탈출을 꿈꾸며 그저 자리를 버틸 뿐이었다.
누군가를 비난하기보다 개인의 성장에 집중했던 거다. 우리는 그런 서로를 기특해했다. 그리고 다음번 모임엔 '더 좋은 어른이 되자'라고 다짐하며 헤어졌다.
그날 밤, 집에 와서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우리가 힘들었던 과거를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서로가 꾸역꾸역 버텨낸 힘 덕분이었다.
#2. 루틴이 좋은 점
"장대비를 뚫고 오신 여러분들 환영합니다."
월수금은 수영을 가고, 화요일은 교회에서 제자 훈련을 들었다.
비가 오나 꽃이 피나 황금연휴 기간이나, 약속한 자리에 나갔다.
그러면 선생님이나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시곤 한다.
이런저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있기로 한 자리에 나온 게 대단하다고.
난 그저 생각의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 일이었다.
정해진 시간에 운동을 하고, 아침마다 묵상을 하고, 밤에는 글을 적었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듯, 운동·묵상·글쓰기는 어느새 나의 루틴이 됐다.
그러다 보니 회복력이 꽤 좋아진 나를 발견했다. 상처 위에 굳은살이 생긴 기분이랄까.
'큰일 났네. 나 점점 더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것 같은데?'
자존감도 올라왔다.
#3. 모두 다 같은 아마추어
고등학교 3학년 때 만난 친구들 모임에서 노래방에 갔다.
친구 한 명이 드라마 '슬기로운 전공의 생활' OST로 나왔던 '아마추어' 노래를 불렀다.
그리다 갑자기 친구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나도 아이들한테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데, 꼭 혼내고 나서 후회를 해."
친구의 말에 한 명씩 삶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내 앞에 있는 누군가도, 나와 모습만 다를 뿐, 열심히 버티는 중이었던 거다.
그러니 누군가를 비난하지도, 부러워하지도 말기로 했다.
일이 잘 안 될 때도 너무 자책하지 말며, 반대로 삶이 잘 풀릴 때도 그리 자만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오늘을 성실히 살아가자.
그러다 보면 언젠가 웃으면서 이렇게 말할 수 있겠지.
“그때 우리, 잘 버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