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매의 선물

절대반지

by 김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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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살다 이렇게 두꺼운 반지를 받아본 건 처음이다. 돌반지스러운 순금 세 돈 짜리 반지. 이 뜬금없는 선물을 한 주인공은 다름 아닌 할매다.


뭔 날도 아닌데 갑자기 왜 이런 걸 주냐고 물으니 "왜 뭔 날이 아니야? 오빠가 결혼하잖아!" 하는 임 여사님. 오빠가 결혼하는데 나한테 반지를 왜 주냐고 하니까 오빠 장가간다고 있는 금붙이를 죄다 준 게 영 미안했단다.




사실 나도 좀 서운하긴 했다. 할매한테 뭐 받아먹을 생각 같은 건 당연히 해본 적도 없지만, 그래도 손녀딸은 아예 생각도 하지 않고 당연한 듯 자기가 가진 모든 걸 오빠에게 주는 그 마음이 약간 미웠다. 할매의 편애야 30년째 겪고 있으니 그러려니 하면서도, 그래서 반을 나눠주겠다는 오빠와 새언니의 제안도 단칼에 거절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서운함과 야속함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마음이 할매를 대하는 태도에도 알게 모르게 영향을 주는 순간도 있었다. 뭘 사다 드리려다가도 '에이, 그래 봤자 오빠 거 남겨 놓으라고 할 텐데 뭐. 어차피 난 안중에도 없는데 뭘 챙기냐. 오빠더러 사다 주라지.' 이렇게 유치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난 오늘 예상도 못 했던 할매의 깜짝 선물에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말도 안 되게 두껍고 촌스러운 반지지만, 바꾸고 싶단 생각이 안 들 정도로 소중하게 느껴졌다. 내 방에 있는 다른 반지를 자기 새끼손가락에 끼어보고 사이즈를 알아냈다는 할매. 그 마음이 고맙고, 또 미안해서 지금도 또 이렇게 눈물이 난다. 아까 할매의 얼굴에 서려있던 감정은 반은 미안함이었고 나머지 반은 사랑이었다.


나는 그 표정 하나로 족하다. 오빠만큼 예쁨 받지 않아도, 언제나 뒷전이어도 괜찮다. 그래도 사랑이니까. 사랑받고 있으니 더없이 감사하다.




이 마음을 잊지 않고 싶어서 산더미 같은 일도 잠시 미뤄두고 이렇게 글을 적는다. 사실 조금 전 할매가 방문을 열고 "숙제하려면 멀었어?"라고 물을 때까지만 해도 또 밥 먹으라는 소리겠거니 해서 쳐다도 보지 않고 "밥 안 먹어. 일 많아."라고 싸늘하게 대꾸했는데... 번쩍이는 거 하나 받았다고 갑자기 착한 손녀가 됐다 싶어 좀 겸연쩍기도 하다. 그치만 이건 정말로 반지 때문이 아니다. 마음 때문이지. 라고 적으니 왠지 꼭 물질만능주의자가 애써 스스로를 부정하는 기분이 든다만, 정말 아니다. 하긴 근데 뭐 마음 가는 데 돈 가는 법이니, 금을 받아서 마음을 느낀 것 같기도 하네.


아 모르겠다 아무튼! 고마워 할매. 절대반지 같은 이 어마어마한 아이를 어찌해야 할지는 조금 고민해볼게. 내 생각해줘서 너무너무 고마워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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