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년
며칠 전에는 두모마을 당산제가 있었다. 마을 한가운데에 있는, 마을의 가장 큰 어르신인 당산나무를 모시는 제사다. 남해에 처음 사업자등록을 낼 때 당산나무에 고사를 지내서 잘 됐나 하는 감사한 마음 반, 당산제 행사에 대한 호기심 반으로 사무장님께 미리 날짜를 여쭤봐놨다. 당산제는 일몰 시간에 시작한다고 했다. 미리 두모마을에 도착해 팜프라 친구들에게 인사를 하고 마을회관으로 넘어갔다. 이미 제사 음식 준비는 다 끝나있었다. 사무장님이 일러주는 아랫목에 엉덩이를 데우고 있으니 노곤노곤 따뜻한 기운이 온몸에 돈다.
조금 지나니 이장님이 오셨다. 마을회관 한편에 있는 사무실에서 한복으로 환복을 하고, 당산나무 금줄에 끼울 한지를 자르는 모습을 지켜봤다. 어느새 바깥에선 해가 뉘엿뉘엿 져가고 있었다. 트럭에 과일과 제사음식을 싣는 것을 도와드리고 얼른 걸어서 당산나무 맞은편에 있는 학교 운동장으로 갔다. 날이 추워서 그런지 어르신 몇 분만 나무 근처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황량해진 당산나무 가지에 커다란 보름달이 걸려있었다.
당산제 앞뒤로 1주일간 잔칫집이나 초상집에 간 사람, 그리고 생리 중인 여성은 참여하지 못한다고 한다. 부정을 탈까 봐 그렇다는데, 사무장님은 짐짓 진지한 말투로 몇 년 전에 당산제 전에 결혼식에 다녀온 사람이 당산제에 참여했다가 아들이 갑자기 죽었다는 말씀을 하셨다. 마을마다 이런 얘기 하나 둘쯤 있겠지. 민간신앙이지만, 남해에서는 여전히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필 당산제 일주일 전에 결혼식장에 갔다 온 일이 있어서 나는 멀리서 지켜보기로 했다.
당산제는 총 네 곳에서 제사를 올리는데, 가장 처음 올리는 곳은 산신이다. 팜프라촌 뒤편에 널찍한 바위가 하나 있는데, 거기가 산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이라고 했다. 밤이 되어 캄캄한데 병풍을 세우고 조명을 비추니 그곳만 희게 빛났다. 마을에서 가장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 한 분과 이장님만 한복을 갖춰 입고 제사를 지내고, 나머지 어르신들은 돕는 역할을 하고 계셨다. 멀리 있어서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초를 켜고 간단한 음식을 올리고 절을 한 다음에 축문을 읽는 듯했다. 그리고 내려와서 당산 할머니와 할아버지 나무에 한 번씩, 그리고 그 옆에 밥을 묻어두는 바위에 마지막으로 한 번. 총 네 번을 축문을 읊고 절을 올리는 등의 제사를 지냈다.
금줄을 맨 바위는 당산나무 바로 아래에 하나, 그리고 당산나무 옆에 하나가 있었다. 바위란 게 땅에 박혀 있으면 도저히 움직여질 것 같지가 않은 법이다. 바위 아래에 밥을 묻는다기에 대체 어떻게 묻나 했는데, 어르신이 한번 힘을 쓰니 바로 움직이더라. 마치 차력쇼를 본 듯한 기분이었다. 바위 아래 땅은 도끼로 파헤치는데, 옛날에 도끼가 귀한 물건이었어서 당산제에 썼다는 얘기를 들었다. 밥을 한지로 감싸서 아래에 묻은 후에 바위를 제자리에 돌려놓고 금줄로 동여맨다. 그리고 황토 흙을 사방에 두르고 맨 위에도 얹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당산제의 모든 절차가 끝나고 나서는 징을 쳐서 제사가 끝났음을 알렸다.
급히 이동을 해야 할 일이 생겨서 나오려는데, 사무장님이 음복을 하라며 가까이로 불렀다. 인천에서 제사 지내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흰쌀밥에 물을 만 것을 한 대접받았다. 겨울바람에 물이 거의 얼 듯이 시원해져 있었다. 일 년 간 덕분에 사업이 잘 자리 잡았다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릇을 비웠다.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당산 어르신. 사무장님은 상에 올린 음식이라며 꼬치와 떡을 한 아름 안겨주셨다. 덕분에 며칠 또 먹을 식량이 생겼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연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