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다움 찾기 프로젝트 1
산토건축에서 하는 일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지역 탐구로, 남해(지역)다움이란 무엇인지 탐구하는 것이지요. 남해를 비롯한 경남 지역의 물리적 공간과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를 관찰합니다. 두 번째는 건축과 인테리어 디자인입니다. 남해(지역)다움을 담는 공간을 디자인하고, 이를 통해 그 지역다운 경험을 제공하는 일입니다. 세 번째는 현상 기록입니다. 과거 혹은 현재의 사람과 공간에 대한 현상을 기록하고 송출합니다. 기록은 논문, 에세이, 사진 등의 매체로 기록됩니다.
이 세 가지 요소는 산토건축을 이루고 있는 항목들인데요, 지역을 탐구한 내용을 공간으로 담아내고, 그 과정을 기록함으로써 완성됩니다. 혹은 지역을 탐구한 것이 기록되기도 하고, 건축과 인테리어 설계로 번 돈을 지역을 탐구하는 데 쓰기도 하고요. 기록한 것을 바탕으로 지역을 다시 탐구하는 데 쓰거나, 공간 자체가 기록이 되기도 합니다. 삼각형을 이루는 이 세 가지 요소들이 상호작용하며 산토건축의 모토인 "지역을 탐구하고 건축에 담습니다"가 실천됩니다.
이중 첫 번째 항목인 지역탐구에 있어서, 작년에는 재밌는 작업을 많이 했습니다. 바래길 걷기는 남해탐구의 꽃이자 저의 삶의 활력소가 되어주는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고, 재작년에 논문으로 써냈던 귀촌청년들의 탐구를 스스로의 경험과 엮어내어 책으로 펴내기도 했습니다. 12월 중순에는 처음으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남해다움을 이미지로 그려보는 작업을 했습니다. 이른바 '남해다움 찾기 프로젝트'입니다.
'남해다움 찾기 프로젝트'는 산토건축에서 진행하는 지역성 탐구 프로젝트입니다. 건축, 예술, 문화, 환경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지역을 함께 탐구하고 다채롭게 표현합니다.
첫 번째 시리즈인 <내가 사는 남해집>에서는 전지홍 작가와 함께 '나의 남해다움'을 이야기하고, 그 경험을 그림으로 담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 전지홍 작가는 길 위에서 감각한 서사를 동양화 기반의 지도 회화로 옮기며, 우리 시대 풍경을 너르게 살피는 작가입니다. 작가와 함께 ‘남해’의 감각을 함께 나누며 각자의 공간에 깃든 시간과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했습니다.
2025년 12월 13일, 해풍이 쌀쌀하게 불고 비가 조금 내리는 겨울날 저녁 7시, 남해읍 산토건축 사무실에 11명의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바로 전주 팔복예술공장 레지던시에 계신 전지홍 작가님, 프로그램을 신청해 주신 남해 이웃 여덟 분, 멀리 전남 함평에서 온 친구 하나, 그리고 깍두기 0.5세 아기가 하나입니다. 엄마와 아들, 할머니와 엄마와 딸, 이렇게 2대와 3대 가족이 함께해서 더 뜻깊은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전지홍 작가님과 작가님의 작품을 소개한 후에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가장 먼저 하는 작업은 작가가 집 모양으로 잘라온 나무를 정성껏 사포질 하는 것입니다. 사포질을 마치고 나면 나무 테두리가 둥글둥글 부드러워지지요. 그 후에 종이를 대고 집 모양을 본뜬 뒤, 그 위에 그리고 싶은 이미지를 스케치합니다. 그 후 미니 화판에 먹이 번지지 않기 위한 천을 대고, 스케치를 깐 뒤 한지를 덮고 고정합니다. 전지홍 작가님이 가져오신 한지는 직접 만든 한지와 수집한 한지가 섞여 있어서 종이에 따라 질감이 다른 것도 재밌었지요. 한지가 얇았기 때문에 별다른 장치 없이도 아래에 있는 스케치를 먹으로 본뜨기 쉬웠습니다.
미술재료마다 특성이 다른 것을 알고 계신가요? 먹은 한번 마르고 나면 잘 번지지 않기 때문에, 진한 선을 먼저 그리고 그 위에 색칠을 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먹과 동양화 전용 물감을 활용하여 각자의 색깔을 한지 위에 펼쳐봅니다. 주어진 형태는 집 모양이라 할 수 있는 오각형의 나무토막이었지만, 각자가 그 안에 그려낸 '내가 사는 남해집'은 정말 다양한 빛깔과 형체를 띠고 있었습니다. 같은 집에 사는 사람들끼리도요.
약 한 시간이 지나고, 모두 그림을 완성하고 다시 자리에 모였습니다. 단순히 실내 공간만 담은 것뿐 아니라, 자기 자신을 둘러싼 다양한 관계와 자연환경을 담은 게 눈에 띕니다.
배지영 님은 짙은 푸른색 배경에 반짝이는 반딧불이와 새, 그리고 남해의 자생초를 담아 그림을 그렸습니다. 남해에 처음 왔을 때 아름다운 빨간 꽃이 피어있는 자생초가 자신을 반겨주는 느낌을 받으셨다고 해요. 별도 반딧불도 반짝반짝 빛나는 가을밤을 자유롭게 나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권영이 님은 크리스마스를 나타내는 초록색과 빨간색 리본으로 화면을 4등분해서 그 안에 남해의 모습을 그려냈습니다. 며칠 전 집 근처 찻집 오실재에서 크리스마스 선물 포장을 도왔는데, 그때 사용한 리본을 표현하셨대요. 남해의 유자, 독일마을, 바다와 섬, 그리고 크리스마스 눈사람의 모습이 정겹습니다.
이아진 님은 고양이를 여섯 마리나 키우고 있는데요, 이들과 함께 살아갈 드림하우스를 그려보았습니다. 아름다운 노을이 지는 창가 너머로 섬과 배가 보이고, 하늘과 바다가 만난 수평선이 흐릿해 보여 더 아름다웠습니다. 고양이들은 풍성한 수직공간과 여러 푹신한 공간에서 편안하게 자리를 잡고 있고요.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딸 이로와 남편, 이아진 님 이렇게 셋이 고양이를 정말 사랑하는 모습이 그려지는 집입니다.
오유나 님의 생활권은 전남 함평군과 영광군인데요, 이 두 도시의 모습과 남해의 모습을 함께 담았습니다. 이 그림에는 일상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요소가 있어서 좋았습니다. 본인이 일하는 우체국, 영광군의 원자력발전소와 풍력발전소, 남해의 해수욕장과 함평의 갯벌, 방 안에 있는 리클라이너 소파와 책꽂이까지. 그야말로 오유나 님이 사는 세상이 한 폭의 그림 안에 담겼네요.
김진선 님도 삶 속의 많은 것들을 한 폭에 담아냈습니다. 세한도의 둥근 창에서 영감을 받은 동그란 문양과 찻잔, 차, 다실 등의 요소들이 추상화처럼 담긴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오실재라는 찻집을 운영하며 다양한 서적을 통해 동서양의 차를 공부하는 김진선 님의 일상이 보였고, 차를 대하는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최은미 님은 유기묘와 유기견을 위한 집을 그려냈습니다. 고양이를 위한 수직공간과 강아지를 위한 숨을 공간이 함께 있는 모습이 재미있습니다. "돌보는 것이 남해다운 것"이라는 명언을 남겨주신 최은미 님은 길냥이들을 위해 물을 잘 챙겨주기를 당부하셨습니다.
정보름 님은 세 가족의 모습을 화폭에 꽉 채워 담아냈습니다. 위에서부터 서열 순서대로 그린 이 가족그림은, 고양이, 보름 님, 그리고 남편을 그렸습니다. 평소에 캘리그래피를 하면서 선을 많이 써보기 때문에 이번 그림은 최대한 선을 쓰지 않고 색깔로 표현해 보았다고 합니다. 어쩐지 아래로 갈수록 행복해지는 모습에 덩달아 미소가 지어지는 작품입니다.
박기람 어린이는 남해의 풍경을 담아냈습니다. 남해의 푸른 바다와 산, 그리고 맑은 태양이 떠있는 모습입니다. 재밌게도 콜라주 기법으로, 흰 한지를 구름 모양으로 잘라내어 위에 덧붙였습니다. 풍요로운 자연 속에서 자라나고 있는 남해의 어린이가 생각한 남해의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안설별 님은 직접 운영하고 계신 숙소에서 가장 좋아하는 창가의 모습을 그려냈습니다. 창밖에는 다랭이마을 풍경이 펼쳐져 아름답습니다. 창가를 가운데 두고 사방으로 책장이 있는 모습을 보고 꼭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최근에는 그림 작업실도 완성하셨다고 하네요.
9명이 그린 그림 속의 요소들을 한번 살펴보았습니다. 가족, 동물 등의 관계를 표현한 것이 4개, 자기 자신을 표현한 것은 2개, 일상을 다양하게 담아낸 것이 6개, 자연환경을 그려낸 것이 6개, 실제로 있는 공간은 3개, 상상 속의 공간은 2개였습니다. 남해 사람들은 단순히 현관 안쪽만 자기 집으로 생각하지 않고 마을 전체, 나아가 남해 전체를 자신의 집으로 생각한다고 글을 쓴 적이 있었는데요. 이렇게 그림으로도 남해 사람들이 생각하는 집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어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남해다움 찾기 프로젝트는 새해에도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남해다운 모습을 찾고 표현해 내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다음 시간에 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