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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영의 Nov 04. 2024

18. 연암이 남의 책을 베낀 까닭은?

-금료소초(金蓼小抄)

 총 3권으로 이루어진 <열하일기 읽기>의 끝이 하루 이틀 눈앞에 있다. 무려 75일 동안의 일이었으니 대장정이다. 이 금료소초가 마지막에서 두 번째로 오랜 시간 나를 기다려온 챕터다. 자, 그런데 여태껏 잘 읽어온 챕터 중에서 가장 기상천외 엽기적인 글이 오늘의 금료소초다. 주욱 읽어 내려가면서 가장 마음에 와닿는 부분에 머무르기로 마음을 잡았다. 의학이 덜 발달했던 시대에 환자를 위해 최적의 치료 방법을 찾느라 악전고투했던 선조들의 애로를 공감하는 마음으로 읽어야 할 터이다. 


연암은 열하의 윤가전에게 의학서 추천을 부탁했다. 연암이 찾는 의학서는 경험방이다. 윤가전(尹嘉銓)은 “일본(日本) 판각으로 하란원에서 나온 책 《소아경험》을 먼저 추천한다. 하란이란 네덜란드이다. 네덜란드는 홀란드 지역을 중심으로 번성하였기 때문에 흔히 홀란드라고도 한다. 중국은 네덜란드를 "화란(和蘭)"이라고 부르는데, 일본에서는 하란(荷蘭)이라고 했다. 하란원은 하란의 교회이다. 네덜란드는 무역에 주력하는 나라로 <하멜표류기>의 하멜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직원이었다. 하란의 교회가 어린이를 위한 의학서를 출판했고 그 책이 일본에 들어와 출판된 것이다.


윤가전은 서양의 《수로방》도 소개하며 기후와 풍토, 사람의 기품과 성질이 다르니 효험은 없더라는 말도 덧붙인다. 유럽의 처방을 그대로 쓴다면 조괄이 전쟁을 논하는 돌팔이 처방이 될 것이라는 말과 함께. 조괄(?~B.C.260)은 중국 전국시대 조나라의 장수이다. 그는 아버지가 쓴 병법서를 잘 외웠으나 전투 경험이 없었다. 아들을 잘 아는 아버지 조사가 극구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조괄은 장군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전쟁을 지휘하다가 패배하여 죽었다. 아무리 많은 책을 읽고 외우고 깨달아도 세상이 책대로 돌아가지 않는 법, 병법서를 통째로 외우고 책으로 병법을 배운 그를 윤가전은 병법도 모르는 조괄이라고 부른다.


<소아방>은 효과가 있었고 <수로방>은 없었나 보다. 어쨌든 연경으로 돌아와 유리창의 서점들을 뒤졌지만 하란원의 《소아방》도 서양의 《수로방》도 구할 수가 없다. 없는 것이 없는 유리창에서도 외국어 서적은 구하기가 어렵고 하물며 절판이 되었을 터이다. 그래도 빈손으로 돌아설 수 없는 연암은 다른 책도 떠들어 본다. 그리고 《향조필기-왕사진 지음》를 들추다가 《금릉쇄사》와 《요주만록》 발췌를 발견한다. 그것을 베끼고 초록(抄錄)하니, 〈금료소초〉다. 의서도 약재도 없는 산중(연암협)에 사느니만큼 여태껏 이질이나 학질에 걸리면 연암은 가늠으로 치료를 해왔다. 그게 맞으면 정말 다행이라, 자신의 경험방까지 덧붙인다. 


금료소초를 보니 가장 민주적인 질병이 이질이다. 이 병은 200개 미만의 병균으로도 사람에게서 사람에게로 감염되거나 음식에 의해 집단 발병한다. 환자는 설사와 고열, 고열과 복통을 앓는다. 송 효종과 당 태종, 70세의 증노공과 20대의 악가(鄂哥)가 이질에 걸렸다. 치료 방법은 각각 달랐다. 연뿌리를 더운 술에 섞어 마시거나 필발(한약재)을 젖에 달여 마시고 수매화를 납차(tea)에 마시거나 지렁이 수십 마리를 끓여 마셨다. 이 처방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탈수가 심한 이질에 수분을 넉넉히 공급하되 팔팔 끓여 살균처리까지 했다는 점이다. 이 중에서 지렁이 끓여 마시기가 연암의 경험방인데 영화 <설국열차>에서 바퀴벌레를 먹는 것에 비하면 지렁이는 약과라고 말하고 싶다. 


무사마귀〔武射莫爲〕에 대한 처방도 있다. 연암의 동생이 8·9세 때 얼굴에 무사마귀를 함빡 덮어쓰다시피 하였다. 백약이 무효였지만 가을 바닷물에 자주 씻으면 낫는다고 했다. 연암도 여남은 살에 얼굴이 함빡 쥐젖을 뒤집어썼는데, 눈시울과 귓가가 더욱 심했다. 더덕더덕 밥티가 붙은 듯, 거울만 들여다보고 울면서 화를 냈었다. 가을까지 기다릴 수 없어, 봄여름 염전의 물거품을 물에 타서 여러 번 씻고 말려서, 효과를 보았다. 이 방법으로 효험을 못 본 자가 없었다. 여기에 조선 사대부들의 심기를 거슬린 어휘가 나온다. 연암은 물사마귀를 수지-물 수(水) 사마귀 지(痣)-로 쓰지 않고 무(武) 사(射) 막(莫) 이(爲)라고 썼다.  소리나는 대로 한자를 가져다가 썼다고 지적받은 연암체였다!


난산(難産)을 다스리는 방법이 재미있었다. 1) 살구씨 한 알의 껍질을 벗기고 살구씨의 한 쪽에 날 일(日) 자, 다른 쪽에 달 월(月) 자를 쓰고 꿀을 묻혀 붙인다(어디에? 태아 때문에 산처럼 부른 배 위에다가?) 2) 볶은 꿀 환을 만들어 끓인 맹물 또는 술과 함께 환을 먹는다. 어떤 중이 전한 비방이다. 애 낳는 방법을 하필이면 중이 가르쳐주다니, 뭔가 앞뒤가 안 맞는다. 게다가 살구씨에 글자를 쓰는 것은 무엇인가? 삼신할미가 해산구완을 잘 하라고 응원하는 건가? 삼신할미가 글을 어디에서 배워 해독하겠는가? 꿀을 볶는다고 치자. 그걸 술과 함께 먹으라고? 산모에게 알콜을? 애가 술주정뱅이로 태어나면 어쩌려고? 행여나 알콜을 진통제로 쓰나? 


일리가 있는 처방이 있는가 하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처방도 있다. 손 싸매쥐고 아픈 사람을 지켜보려면 엄청나게 힘들었을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처방조차 때로는 위약 효과가 있을 수도 있었겠지. 그런데도 웃느라고 입 안에 있던 밥알이 벌처럼 뿜어 나오고 갓끈이 썩은 새끼줄처럼 끊어질 처방은 이것이다. 양기를 돕는 법. 가을 잠자리의 머리와 날개와 다리를 제거하고 몸통을 곱게 갈아 쌀 뜨물에 반죽하여 환을 만들어 먹으면 된다. 잠자리 환(?) 세 홉만 먹으면 아이를 낳고, 한 되를 먹으면 늙은이도 젊은 여자로 하여금 아양을 떨게 만들 수 있단다. 이걸 받아든 왕곡정이 얼마나 웃었겠는가. 실제로 한번 만들어봤을지도 모른다. 별별 형이상학적인 주제를 점잖게 나누더니 언제 그랬느냐는 듯 형이하학적인 주제를 아슬아슬하게 내미니, 두 선비의 웃음끝이 꽤나 길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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