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벗이 있어 멀리 찾아오니
--유붕자원방래(有朋自遠方來)
나는 열하에서 돌아와 황포를 재회했다. 일곱 번 만났는데 그 때마다 황포는 친구들을 데려왔다. 모두 재주가 높고 운치가 맑아 글 한 자라도 향기롭지 않은 것이 없는 인물들이었다. 사신단 숙소의 붉은 난간에 기대어 나는 그들을 기다렸다. 말과 수레가 앞뒤로 잇달아 와 자리를 잡으면 흉금을 터놓으며 농담을 주고받았다. 이야기는 가랑비 내리듯 부슬부슬 분분하고 우담발화가 꽃피우듯 만발하다가 어지러이 지나갔다. 필담하느라 손목이 아작날까 봐 염려스러워도, 놓칠 수 없는 기쁨이야말로 어느 날인들 잊힐 리야.
해가 길던 날, 필담이 시간을 잊을 정도로 길어졌다. 필담 종이가 티끌 모아 태산이 될 무렵 도도하게 취기가 올라도 다들 자기의 필담 종이를 챙겼다. 내 행장을 점검하니 남은 건 열에 서넛뿐이었다. 그마저도 취하여 썼거나 어둑한 저녁 햇살에 쫓겨 갈겨 쓴 글씨였다. 나는 귀국하여 연암협 엄화계에서 어느 날 틈을 내었다. 여러 날 뒤적거려 비로소 글의 차례를 정하고 벗들과 주고받은 서신을 <천애결린집>으로 묶었다. 하늘 끝 곧 중국 땅에 있는 벗들을 이웃으로 삼았다는 뜻이다. 벗이 있어 멀리 찾아오니 어찌 아니 좋으랴. 벗이 있어 멀리 찾아가니 어찌 아니 좋으랴. 그중에 만주인 하란태의 글도 있다. 나는 짬을 내어 만주어 역관을 불렀다. 한 끼 식사를 나누며 하란태의 편지를 읽히며 나도 발음을 따라했다. 어느 나라 사람이든 벗의 말은 맑은 운치를 품은 향기를 풍겼다.
풍승건은 거인이다. 그에게는 과거시험 보는 데 필요한 《원류지론(源流至論)》을 부탁했었다, 《원류지론》은 과거시험의 문과 응시자에게는 필수 수험서이다. 교서(敎書)나 외교 문서의 전문적인 문장을 제대로 쓰는데 도움이된다. 나는 여행을 떠날 때 ‘식견이 천박하지만, 문학적 명성이 높은 벼슬아치’한테서 백 권 내외의 책을 구해 오라는 심부름을 부탁 받았다, 진즉에 과거를 포기한 내가 시험 교재를 구하려니 기분이 묘하기도 했다. 그런데 풍승건은 중국 내에서도 이 책은 구하기가 어렵다고 하면서 송나라 판본을 선뜻 내주었다. 내가 그의 고득점 수험서를 삥 뜯은 건 아닐까? 하는 의혹이 든다. 판본 중에서도 송대(宋代)의 목판본은 더 높이 쳐주기 때문이다. 종이는 누렇게 퇴색하여 볼품이 없이 뵈지만, 벗이 손때 묻혀 애지중지 공부하고 빈 곳마다 해설을 메모해 놓고 쪽지를 책갈피 삼아 끼워놨다. 마치 벗이 바짝 옆으로 다가와 낭랑하게 말해주는 느낌이 물씬 풍긴다.
선가옥이 내가 보낸 것에 감사하며 음식 두 쟁반과 껍질 깐 호도 한 바구니 그리고 꿀배 두 쟁반을 보내왔다. 아이가 아프다길래 조언을 좀 해줬는데, 내 처방대로 보살피지만 아직 효험이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마음 써준 것에 감사하다는 말이 참 애틋하다. 황포는 중국에까지 왔어도 마음껏 책을 구하지 못하는 내 마음을 실펴준다. 같은 문자를 쓰고 같은 윤리를 행하는 조선이 몇 겹의 통역을 거치는 나라에 비하면 형제보다 더 가깝다. 중국은 사방 천 리가 되는 곳이 백여 군데이고 북경에서 먼 곳은 2~3만 리나 되어 언어가 불통하는 곳이 많기 때문이라며 선비다운 공감을 해준다.
그 유세기가 화제를 하늘로 끌어간다. 대나무 대롱으로 하늘을 보고 하늘을 작다고 말하면 당연하다. 넓고 조용한 들판에서 눈을 부릅뜨고 보더라도 하늘이 하늘 되는 까닭을 구명할 수 없으며 높은 산꼭대기에 올라가 조망하더라도 하늘이 하늘 되는 까닭을 밝혀낼 수 없다. 이것이 어찌 하늘을 보는 이들이 모두 장님이라 그렇겠는가? ‘맞다. 우물 안 개구리’란 말이 맞다. 나를 둘러싼 환경이 곧 내 사고방식의 크기이기 때문이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좀 더 큰 우물로 늘리거나 좀 더 큰 우물로 옮겨 가야 할 것이다. 더더욱이 이 벽돌책을 마무리하며 나는 절실하게 느낀다. 어쩌면 나는 얻은 것 이외에도 더 크고 더 높은 것들을 놓쳤을 터이지만, 중국이라는 하늘을 내 그릇만큼, 내 우물만큼은 담아낼 수 있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