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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영의 Nov 27. 2024

29. 책을 만드려고 태어난 나라

-장흥루판

  옛날 중국에서는 비단이나 대나무 조각, 나무 조각에 글씨를 새겼답니다. 비단은 비싸고 대나무나 나무 조각은 글자를 많이 쓰기 어려운 데다가, 엄청나게 무거워서 대량으로 운반하기도 힘들었지요. 그래도 기록은 해야 되니 대나무 조각 몇십 장을 가죽끈으로 엮은 편죽(扁竹)이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그 대쪽들에 옻칠로 글씨를 니, 책(冊)이라는 글자는  모양을 본뜬 것이었습니다. 시대극을 보면 여전히 둘둘 말린 대나무로 만든 작은 김 발 같은 것을 펼치며 책이나 편지 같은 것을 읽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옛날 중국에서는 한 책을 읽기 시작하면 백 번, 천 번 읽었습니다. 그러다 보면 대 조각들을 엮은 가죽끈이 사람의 손때를 서 끊어지곤 했습니다.  선비는 새 끈을 가져와 대 조각들을 다시 꿰어 엮어야 했습니다. 공자 만년에 역경을 애독하는데, 한 번 공부를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인물답게 가죽끈을 세 번이나 새로 엮으며 주역을 읽었습니다. 위편삼절(韋編三絶)지요. 위편삼절은 책을 열심히 읽되, 책 한 권을 거듭거듭 외울 때까지 읽는다는 입니 다. 사기(史記)의 공자전에 나온 말로, 배움을 향한 뜨거운 열의를 보여주는 사자성어입니다.      


옛날 한나라에서는 한무제가 하동을 순행하는 와중에 책 다섯 상자를 잃었습니다. 서적 수집에 심혈을 기울이던 무제는 무척 상심했습니다. 진시황이 분서갱유를 단행하여 반체제적인(?) 책들을 태워버린 것과는 달리 무제는 유가 경전 외에도 제자백가의 사상서, 기술서를 가리지 않고 모았습니다. 판본이 없던 시대라 필사본이었을 겁니다. 복구불가죠. 그런데 천만다행으로 신하인 장안세가 틈틈이 그 책들을 외워두었던 것입니다. 그가 책들을 낭랑하게 암송하자 받아쓰기 책을 죄다 복구답니다. 몇 백 쪽짜리 벽돌책은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명색이 책인데 다섯 상자의 책을 외웠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내 그럴 법하다고 수긍하는 것은 지난해에 본 뮤지컬 때문입니다.      


옛날 유럽에서는 한때 자국어 성경을 소지한 자는 책을 빼앗기고 죽임을 당해야 했습니다. 생명을 걸고 남몰래 성경을 배부하던 이들은 마침내 기가 막힌 꾀를 생각해 냅니다. 성경 66권 중에서 한 권을 자기의 이름으로 삼고 자기 이름의 성경을 통으로 외우기로 한 것입니다. 모두 합쳐 회원 66명이 필요한 대장정입니다. 책을 외우더니 마침내 그 책이 되어 버린 사람들을 다룬 그 뮤지컬의 제목은 그책(The Book)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세 살짜리가 천자문을 외우는 시대였으니 책 다섯 상자를 외우는 게 뭔 대수겠습니까.      


옛날 한나라에서는 위대한 시대가 도래합니다. 환관인 채륜(50~121년경)이 나무껍질, 삼베 조각, 헌 헝겊, 낡은 그물 따위를 사용하여 종이를 만든 것입니다. 채륜의 성을 딴 채후지입니다. 105년에, 물건을 만드는 재능이 있고 학문을 좋아하던 그가 글을 쓸 수 있는 종이를 만든 겁니다. 대나무나 나무 조각 그리고 비단에 쓰는 것에 비하면 가볍고 글씨를 많이 쓸 수 있으며 값이 저렴하다는 어마어마한 이점이 있었습니다. 이제 종이에 글을 쓰는 풍습이 널리 퍼져 문자의 기록을 수월하게 만들어 줬습니다. 당연히 문화는  점점 더 발전니다. 일일이 손으로 필사하여 종이를 엮어 책만들집니다.      


옛날 후당때에는 판본 즉 판각본(板刻本)’을 새기기 시작했습니다. 후당(923~936)은 오대십국시대의 나라입니다. 역사책에 오대십국시대라 이름만 스쳤는 그 중의 후당이 의미깊은 일을 한 것입니다. 후당의 명종 임금은 오랑캐 출신으로 문맹이었습니다. 하지만 재위하는 동안(930~933) 구경(九經-주역·시경·서경·예기·춘추·효경·논어·맹자·주례)을 모조리 판각해냅니다. 장흥 연간에 판각하여 이름이 장흥루판니다. 후당은 글을 읽지도 못하는 황제가 읽지도 못할 아홉 개의 경서 판본-장흥루판을 만드려고 세워졌다가 다 만드니까 없어진 나라입니다.  르기는 몰라도 인쇄의 역사에서는  뚜렷한 업적을 남겼음에 틀림없는 13살짜리 단명국가였네요.


옛날 청나라에서는 사고전서(四庫全書)를 만들었습니다. 사고전서는 천하의 서적 16만 8천여 권을 모아 건륭 연간(1736~1795년)에 간행한 중국 최대의 학술서적 전집입니다. 건륭 38년(1773)에 사고전서의 귀중본을 뽑아 취진판을 또 인쇄니다. 그 편찬의 총책임자는 건륭제의 육황자(六皇子) 영용이고 부책임자는 호부시랑 김간이었습니다. 김간은 특히 글자 새기는 일을 감독하며 나무 활자를 개량하는 업적을 세웠습니다. 연암이 무령현에서 소식만 들은 서학년의 차남 조신도 《사고전서》의 서사원(書寫員)으로 북경에 있었습니다.  오랑캐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가 출판문화를 대대적으로 진흥시켰던 겁니다.


옛날 청나라에서는 사고전서를 편찬하던 김간이 호부시랑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호부시랑이 또 있습니다. 복장안입니다. 열하에서 매화포 불꽃놀이를 마친 황제와 반선이 짧은 회동을 가지는데 그 자리에서 반선에게 차(茶)를 올리고 있었지요. 물론 황제 호부상서 화신이 독차지하고요. 아하, 청나라는 고관에 만인과 한인 씩 임명한다더니 진짜로 고관이 두 명이군요. 호부시랑에 만인 복장안과 한인 김간 그리고 예부상서에 만인 덕보와 한인 조수선, 매사에 이런 식입니다. 만주인 위주겠지만 노련한 한인들의 재능도 넉넉하게 잘 사용했던, 나름 글로벌 마인드를 가진 청나라였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중국이 중화(中華)인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한자가 사라지지 않으면 중국은 반드시 망한다”고 들은 기억이 납니다. 그 소리를 들은  언제인데 1930년 이후 한자가 사라지지 않도 중국은 망하지 않고 현재까지 재합니다. 실제로 중화를 가능하게 하는 힘은 한자와 한자 문화라고 합니다. 소리글자인 한글이 소리(sound)형이라면 뜻글자인 한자는 그림(image)형입니다. 한자는 말하기보다 쓰기가 더 나은 글자이자 많은 뜻을 담을 수 있는 암호같은, 한글 못지않은 문화유산일 수 있습니다. 한자를 담기에 좋은 방향으로 바뀌어온 인쇄의 역사를 짧게 더듬으며 강대국이 단순히 인구 수만 많다고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봅니다. 물론  인구가 기본이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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